"삼바 인멸증거 특정, '짐작'으로 충분"... 檢의 황당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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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인멸증거 특정, '짐작'으로 충분"... 檢의 황당 논리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9.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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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인멸 증거 뭔지 특정 요구’, 檢 “이미 충분히 특정”
檢 “회계부서 작성 문서, 본죄인 분식회계와 관련성 짐작”
변칙논리 앞세워, 재판부 석명(釋明) 요구에 사실상 ‘불응’
증거인멸죄 구성요건 형해화... 全직원 ‘잠재적 범죄자’ 취급
‘분식회계 의혹’ 수사 공전(空轉) 반증... 삭제됐다는 자료, 증거제출도 못해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인멸된 증거의 특정]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 인멸 사건 공판에서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증거인멸죄는 원칙적으로 타인의 형사사건 내지 징계사건을 '본죄'로 하며, 훼손 내지 은닉한 증거가 본죄와 관련이 있음이 입증된 경우에만 범죄구성요건을 충족한다. 따라서 증거인멸사건에서 '특정'은 범죄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주 열린 4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인멸된 증거의 특정’을 검찰에 요구했다. 재판부가 요구한 ‘특정’은 인멸된 자료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당해 증거가 본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입증하라는 의미이다. 당시 재판부는 증거 특정과 함께 "(증거 인멸) 교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 의해 이뤄졌는지 정리해 달라"고도 했다.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5차 공판준비기일은 직전 공판에서 재판부의 석명(釋明) 요구가 있었던 터라, 이에 대한 검찰 측 답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검찰은 “이미 증거를 충분히 특정했다”며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놨다. 표면적으로는 재판부 요구에 대한 답변 형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은 사실상 ‘불응’에 가까워, 이 점에 대한 재판부 판단이 공판 전체 흐름을 결정짓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삭제된 자료를 생산한 부서를 기준으로 ‘본죄’와의 직무관련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논리를 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소속 임직원이 회사 컴퓨터에서 삭제한 자료를 살펴보면 그 생산자가 대부분 회계 혹은 기획 담당 부서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부서 업무는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이 있다고 ‘짐작’할 수 있으므로, 이미 (인멸 증거는) 특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

◆검찰의 희한한 논리... 증거인멸죄 구성요건 무시, 처벌 범위 자의적 판단

검찰의 논리를 따르면 '본죄와의 관련성'은 사실상 무제한 확장되며, 이는 특정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증거인멸죄 구성 요건 중 [타인의 형사사건 혹은 징계사건] 부분이 형해화돼, 처벌 범위가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엿가락처럼 늘거나 줄 수 있다.

검찰의 논리는 우리 헌법과 형법이 받아들일 수 없는 초법적 발상이란 점에서 우려가 크다. 근대 형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에 반함은 물론이다.

이런 식이면 분식회계 의혹을 받는 기업 소속 임직원 중 어떤 문건이든 수정 혹은 삭제를 한 사람은 증거 인멸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본죄와의 관련성이 사실상 무제한 확장되기 때문에 문건을 고치거나 삭제하거나 엑셀파일 등을 수정한 임직원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변호인단은 “삭제된 증거 대부분이 회계와는 관련이 없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삭제된 자료가 2000건이 넘는다고 하는데 자료 대부분이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특정’은 별론으로 하고 증거로 제출은 해야 한다”고 검찰을 압박했다. 이어 변호인단은 “(검찰이) 삭제된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지 않으면 범죄사실 입증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수사 진행 중’을 이유로 변호인단이 요구한 자료를 당장 증거로 제출하기 어렵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와 별개로 검찰은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본죄'에 대한 판단과 관계없이 증거인멸죄 성립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검찰, 삭제 자료 증거제출 지연... 분식회계 수사 공전(空轉) 반증

위 주장의 당부는 별론으로 하고, 검찰이 수사 중이란 이유로 [인멸자료의 증거제출]마저 미룬 사실은, 본죄인 분식회계 의혹 수사가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수사가 성과를 내고, 혐의(자본시장법 및 외부감사법 위반)를 입증하기에 충분한 단계에 이르렀다면 인멸자료의 증거제출을 미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 증거 인멸 수사 역시 찜찜한 구석이 많다.

검찰이 삼성전자 및 삼성바이오, 삼성바이오에피스 소속 임직원 8명을 증거 인멸 내지 그 교사 혐의로 무더기 구속하고, 삼성바이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장면을 언론에 공개한 시점이 지난 5월임을 고려하면, 이날 검찰이 보인 행태는 부자연스럽다.

검찰은 압수수색 후 법조기자단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여러 차례 '삭제된 파일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이 진행 중이고, 일부 의미있는 성과가 나왔다고 했다. '삭제된 파일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의 육성녹음을 확인했다'는 리크(leak)가 대표적이다. 일부 親검찰 매체는 이를 바탕으로, '이 부회장이 분식회계에 직접 연루됐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정황증거가 발견됐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압수수색 후 4개월이 넘도록 '수사 중'이란 이유를 붙여, 인멸된 자료의 증거제출을 미루고 있는 검찰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재판부 “분식회계 수사 상황 지켜볼 필요 있어... 심리 가급적 내달 안 마무리”

검찰은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판단이 증거인멸죄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수사가 개시된 것을 알면서 자료를 일거에 지웠다면, 자료가 설사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관련 판례에 따라 증거인멸 및 은닉 혐의가 확립된다.”

변호인단은 “법원이 증거인멸죄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는데 그 뒤에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 무죄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하며, 검찰 주장의 모순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분식회계 혐의가 유죄인 경우에만 증거인멸이 되느냐, 아니면 본죄와 무관하게 범죄가 성립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공론이 오간 것 같다”며 “분식회계 사건을 어느 정도 지켜봐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멸 증거 특정]을 둘러싼 양 측 공방과 관련해서는 "검찰과 변호인 측에서 각각 변론을 진행하면 재판부가 판단하겠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선고는 나중에 하더라도 심리는 다음 달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9월25일을 시작으로 10월 2일, 8일, 15일, 28일 공판을 진행하겠다. 법정(法廷) 사용과 (피고인) 구속기간 제한의 문제를 감안해 빠르게 진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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