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폐수 제로"... 美텍사스 무방류 水처리 발전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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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오폐수 제로"... 美텍사스 무방류 水처리 발전소를 가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9.09.1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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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국 텍사스, 폐수 무방류 시스템 발전소 탐방기
폐수 가져와 발전에 쓰고, 다 쓴 물은 흙으로 변화시켜 매립
헤이즈‧과달루페‧판다 템플 발전소 “환경단체 반대 시위 없어”
2001년 건설된 헤이즈 가스발전소. 사진=시장경제DB
2001년 건설된 헤이즈 가스발전소. 사진=시장경제DB

[편집자주] 

미국 서남부의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 혁신으로 ‘산업발전’과 ‘환경오염’이라는 명제를 ‘대립’에서 ‘양립’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은 ‘물이 오염되므로 무조건 발전하지 마라’는 근본주의 환경운동자들의 논리와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UN에 따르면 한국은 ‘물 스트레스 국가’다. 하지만 낙동강 벨트라고 불리는 경상도 지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물 부족’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규제를 따르면서도 가장 효율적 발전을 하고 있는 해외운영 사례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미국 서남부 텍사스에 위치한 무방류 폐수처리 발전소를 찾아 우리 수(水)처리 시스템의 나아갈 길을 짚어봤다.

“텍사스는 물 부족 지역이기 때문에 하수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무(無)방류 폐수(水)처리시스템(ZLD, Zero Liquid Discharge)을 채택해 발전소를 짓는다면 텍사스에서 사업허가를 받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반대로 유(有)방류 폐수처리시스템으로 사업을 하려면 주(州) 정부로부터 엄격한 관리를 받아야 한다”

- 텍사스 헤이즈 발전소 관리자 부르스 카스니츠.

지난 8월 27일 방문한 텍사스 헤이즈 발전소 직원들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헤이즈는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을 갖춘 가스발전소로 2001년부터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발전소는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발전기 열을 식히기 위한 물, 발전용 터빈을 돌릴 때 오작동을 막기 위해 쓰이는 정화수 등 쓰임이 많다. 헤이즈 발전소와 같이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을 채택하면 소요되는 물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폐수를 사용한다고 해서 오염된 물을 그대로 쓰는 것은 아니다. 폐수에는 칼슘, 마그네슘 등의 성분이 포함돼 있어 철 구조물을 부식시킬 위험이 있다. 때문에 폐수를 정화해 사용한다. 발전소는 정화된 폐수를 기화시켜 수증기를 얻고, 사용하고 남은 수증기는 다시 물로 환원해 재사용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종국적으로 남는 것은 수분함유율 15%미만의 슬러리(slurry, 흙과 같은 형태) 뿐이다. 발전소는 이 슬러리를 인근에 매립해, 오폐수 방류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이 시스템은 오폐수 발생의 걱정 없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구촌 곳곳의 물부족 국가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발전소에서 쓰이는 물은 정화, 농축, 기화, 환원 단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흙과 비슷한 슬러리 상태로 변한다. 이 물물질은 찰흙과 비슷한 촉감을 갖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발전소에서 쓰이는 물은 정화, 농축, 기화, 환원 단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흙과 비슷한 슬러리 상태로 변한다. 이 물물질은 찰흙과 비슷한 촉감을 갖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특히, 폐수와 수돗물 중 어느 것을 쓰느냐, 얼마만큼 정화했느냐, 정화는 어떻게 하느냐, 결정체는 어떻게 만드느냐 등 공정 과정 변화에 따라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의 질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미국은 여러 종류의 무방류 수처리시스템을 오랫동안 운영해왔다. 헤이즈 발전소만 하더라도 벌써 20여년의 운영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는 다양한 폐수 사용의 결과값과 최적의 결과값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텍사스 만큼 물이 부족한 국가가 아니다. 좋게 말하면 물이 넉넉하고, 나쁘게 말하면 물 규제가 텍사스 보다 느슨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0~1700㎥ 규모의 수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물 부족 국가’가 아닌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내리는 물의 상당량이 토양에 저장되지 않고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어가 효용성이 떨어지며,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피해가 갈수록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부터 물을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물 부족국가’로 강등될 수 있다. 실제로 낙동강 유역의 가뭄과 인근 산업단지 수질 오염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헤이즈 발전소의 무방류 수처리 시스템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헤이즈 발전소는 필요한 물의 75%를 인근 강에서 끌어온다. 나머지 25%의 물은 하수를 이용한다. 원수의 오염도가 높기 때문에 정화를 한 뒤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헤이즈가 75%나 되는 물을 강에서 수급하는 이유는 멀리서 하수를 끌어오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헤이즈는 ‘결정화 설비’에서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설비는 발전에 사용한 물을 증발‧농축시키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고체폐기물은 녹이면서 나머지는 결정화하는 것이 주 기능이다.

끓인 물의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트리고 있는 설비. 사진=시장경제DB
끓인 물의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트리고 있는 설비. 사진=시장경제DB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과달루페(Guadalupe) 발전소다. 이곳은 텍사스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발전소로 알려져 있다. 전기 이온화(EDI)라는 기술을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에 적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EDI란 전기를 이용해 담수만 담는 기술을 말한다. 물에는 음이온, 양이온이 있는데, 전기를 주게 되면 2개의 이온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고 이 과정을 거쳐 물을 정화한다.

과달루페는 발전에 필요한 물을 100% 하천에서 조달한다. 가져온 물은 정화하고, 끓이고, 농축시키고를 반복해 사용한다. 끓일 때 발생한 수증기도 물로 응축시키고, 정화한다. 최근 하천의 수질과 EDI 등의 기술이 좋아져 물을 최대 10회 재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판다 템플(Panda Temple) 발전소다. 2014년부터 운영에 들어간 이곳은 텍사스 주에서 가장 젊은 가스발전소다. 이곳은 2개의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최신식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을 보유한 만큼 정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판다 템플은 강물 50%, 하수 50%를 혼합해 사용 중이다. 판다 템플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에서 정화된 물의 TDS(Total dissolved solid, 총용존고형물)는 98%가 ‘10mg 미만’이다.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에서 가장 핵심 장비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인 컨센트랙터(Brine concentrator, 증발 농축 설비). 사진=시장경제DB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에서 가장 핵심 장비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인 컨센트랙터(Brine concentrator, 증발 농축 설비). 사진=시장경제DB

TDS란 물속에 녹아있는 칼슘‧마그네슘‧칼륨‧염소‧황산‧탄산이온 등 유기물질의 총량을 뜻한다.

국제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수질은 TDS 농도에 따라 분류되는데, 담수는 0~1000 mg/L, 기수 1000~1만mg/L, 염수 10~10만mg/L, 고염수 10만mg/L 이상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판다 템플은 하천의 물을 증류수 수준으로 정화해 발전소에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은 결정체(슬러리) ‘차별화’다. 앞서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의 마지막 공정은 ‘결정체’라고 밝힌 바 있다.

판다 템플은 이 결정체 매립 방식이 다르다. 먼저 땅을 얇고 넓게 판다. 그리고 그 공간에 사용을 다한 물을 흘려보낸다. 텍사스의 기후는 고온건조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물은 마르고, 결정체는 침전된다. 물(강물 50%, 하수 50%)의 98%는 정화해 사용하고, 2%는 이렇게 흙과 같은 ‘결정체’로 자연건조시켜 매립하는 것이다.

판다 템플 관리자 트렌트 심슨은 “값비싼 증발농축기로 슬러리를 만들어 땅에 매립하는 것 보다 자연적으로 말려 침전된 슬러리를 파내 매장하는 게 더 경제적이다”고 밝혔다.

구글 어스로 살펴본 판다 템플 발전소의 모습. 이곳은 다른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과 다르게 물을 자연건조해 슬러리를 만들고 있다. 발전소 옆에 초록색은 물, 하얀색은 결정체로 바뀌고 있는 모습. 사진=구글 어스 캡처
구글 어스로 살펴본 판다 템플 발전소의 모습. 이곳은 다른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과 다르게 물을 자연건조해 슬러리를 만들고 있다. 발전소 옆에 초록색은 물, 하얀색은 결정체로 바뀌고 있는 모습. 사진=구글 어스 캡처

상지대 서용찬 교수는 지리적, 기후적으로 볼 때 텍사스는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을 운영하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물 값이 계속 올라가는 상황에서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은 매우 필요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텍사스는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을 운영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기후는 사막이 존재할 정도로 고온건조하다. 땅은 우리나라보다 3배나 넓은데, 인구는 절반도 안된다. 강수량도 연간 500mm여서 결정체 관리도 쉽다. 결정체에서 중금속도 나오지 않아 매립에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땅이 작기 때문에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을 짓기 위한 부지와 결정체 매립지 확보가 매우 어렵다. 짓더라도 장비의 밀집도가 올라가고, 그만큼 운영 변수도 많아진다. 무엇보다 기후가 문제다. 한국은 고온다습해 건조한 슬러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한국형’ 무방류 폐수처리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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