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만 쳐다보는 '반도체 극일(克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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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삼성만 쳐다보는 '반도체 극일(克日)'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7.3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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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되는 韓... 외교적 접점 찾는 노력 선행돼야
반도체 생산 10% 줄면 GDP는 0.4%씩 감소...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
일본 방문뒤 귀국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일본 방문뒤 귀국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장마네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일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직후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이는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영향이 산업계 전반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부회장의 말대로 불연 듯 찾아온 장마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2일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화이트국가에서 제외되면 일본정부가 규정한 전략물자인 폴리이미드와 고순도 불화수소, 레지스트 등 3가지 핵심소재는 물론,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850여개 품목이 90일 정도 소요되는 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수출 허가가 난다. 비록 완전한 금수 조치라고 보긴 어렵지만, 소재 수급에 있어 불확실성이 더해졌다는 점은 분명한 악재다. 

일본은 지난 2004년 한국을 아시아에서 유일한 ‘화이트국가’로 지정한 이래 산업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지속해왔다. 일본은 품질 높은 소재를, 한국은 경쟁력 있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윈윈’ 관계를 이어온 셈이다. 

그러나 수출규제가 현실화된 지금은 단기간에 대체가 어려운 소재를 쥐고 있는 일본이 ‘갑’의 위치에 섰다. 해당 소재들의 수요가 대부분 한국에 몰려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도 일정부분 타격이 불가피하겠지만, 그보다 더 치명타를 입게 되는 것은 반도체 산업의 비중이 높은 한국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국산 소재 개발에 나서겠다고 난리법석이다. 연간 1조원을 투자해 소재·부품 분야를 육성하겠다고 한다. 소재 국산화는 분명 반길만한 일이지만,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엔 역부족이다. 개발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거니와, 성공 여부조차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 글로벌 메모리 가격 하락세는 지속되는 추세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반도체 가격 상승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28단 1Tb TLC 낸드플래시. 사진=SK하이닉스
128단 1Tb TLC 낸드플래시. 사진=SK하이닉스

◆ 업황 악화에 반도체 감산 선언한 SK하이닉스… 삼성전자의 선택은?

SK하이닉스는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급감하는 반도체 수요와 일본 수출규제까지 겹치면서 결국 감산이라는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매출액 6조4522억원, 영업이익 637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매출은 38%, 영업익은 89% 줄어든 ‘어닝쇼크’다. 우리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으로 불리는 반도체가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제 눈길은 삼성전자에게로 쏠린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7년과 2010년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D램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폭락하던 당시 삼성전자는 감산을 하지 않는 과감한 전략으로 버텼고, 결국엔 최후의 승자가 됐다. 현재 글로벌 D램 시장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3등분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42.7%이며, SK하이닉스가 29.9%, 마이크론이 23%를 점하고 있다.  

삼성전자측은 아직 감산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과 같은 전례 없는 악재가 등장한 만큼, 감산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세계는 한국을 우려의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10% 줄어들 경우, GDP(국내총생산)가 0.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도 반도체 수출 급감으로 인해 올해 한국의 GDP 성장률이 2009년 이래 가장 낮은 2.0%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들을 종합하면 한국은 ‘장마’가 아닌 ‘태풍’과 마주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같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차분하고 냉정한 분위기에서 일본과의 외교적 접점을 찾는 일일 것이다. 얽히고설킨 규제들을 없애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도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진정한 극일(克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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