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증거' 없는데 '인멸' 했다는 삼바 공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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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 '증거' 없는데 '인멸' 했다는 삼바 공소장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6.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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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삼바 증거인멸’ 공소장이란 이름의 함정①
증거인멸로 임직원 8명 구속... 범죄구성요건 충족 불확실
檢 “지난해 5월5일 대책회의 직후 삼바 증거인멸 착수”
지난해 5월 삼바 초점은 '고의' 아닌 ‘분식회계 존재 여부’
‘고의 분식회계’ 의결은 지난해 12월, 시점 불일치 모순
삼성바이오 측이 공장 바닥을 뜯고 분식회계 자료를 숨겼다고 보도한 방송 화면. 사진=뉴스 캡처.
삼성바이오 측이 공장 바닥을 뜯고 분식회계 자료를 숨겼다고 보도한 방송 화면. 사진=뉴스 캡처.

얼마 전 서초동에서 평소 존경하는 변호사 한 분과 식사를 하면서 두런두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 변호사는 일선 지검 차장을 여러 차례 역임했습니다. 검찰 출신이다 보니 대화가 자연스럽게 대기업 수사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이 분이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증거인멸이란 죄목이 이렇게 사용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원래 증거인멸은 본죄에 대해, 그 본죄와 관련이 있는 증거를 은닉하거나 훼손하는 경우 처벌을 하는 건데. 본죄는 윤곽도 나오지 않았는데 무리한 측면이 있어요.

우리끼리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성요건 즉 범죄가 성립하는지... 모호한 부분이 있어요.”

이 분이 말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 수사’입니다. 

지난해 2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사건 전담 수사팀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송경호 부장검사)는 이름난 ‘특수통 칼잡이’를 대거 차출하며 몸집을 크게 키웠습니다.

검찰은 재배당을 통해, 일부 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이재용 부회장 관련 고발 사건도 특수2부에 넘겼습니다. 민주당과 정의당 일부 국회의원,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친 정부 성향 정치인과 시민단체 등이 의심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 의혹’도 함께 살펴보라는 것이 검찰 수뇌부의 주문이었습니다.

삼성바이오 수사팀에서 ‘삼성 전담 수사팀’으로 위상이 높아진 중앙지검 특수2부는 3월에 들어서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특수2부의 삼성 수사는 지금까지 ‘증거인멸’에 집중됐습니다. 본죄 혹은 본안이라 할 수 있는 ‘분식회계 의혹’보다는 증거인멸 수사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습니다. 

검찰의 증거인멸 수사는 본안에 앞선 기초 다지기로 볼 수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지나친 ‘수사 정보 흘리기’(리크)가 이뤄지면서 비난을 초래했습니다. 수사 정보 유출에 맛을 들인 검찰이, 언론을 줄 세우고 여론을 호도(糊塗)한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비뚤어진 정치적 신념 혹은 ‘단독 기사’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검찰이 흘리는 수사 정보를 앵무새처럼 받아적은 기자와 언론사의 태도도 안타깝지만 왜곡된 언론계의 현실을 은근히 이용한 검찰의 행태는 비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검찰發 리크 기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가 나오고 ‘본죄에 대한 수사는 언제하느냐’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삼성바이오 수사 흐름에 변화가 일어난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증거인멸 수사 확대... “검찰, 판 너무 벌렸다” 지적도

이달 초 삼성전자 사업지원TF팀 사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정점으로, 증거인멸 수사는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 수사에 집중한다는 말인데, 검찰 안팎에서는 “판을 너무 벌려놨다”는 쓴소리가 적지 않게 들립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포장된 검찰발 리크 기사로,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돼 검찰이 구체적인 혐의점을 잡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중앙지검 내부 사정에 밝은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도 비슷합니다.

지금까지 검찰이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는 죄목은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혹은 증거인멸 교사입니다. 본죄라 할 수 있는 분식회계 혐의로 시선을 돌리면 검찰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것이 없습니다.

고작 나온 것은 “삭제된 파일에서 이재용 부회장 육성 통화를 확인했다”는 정도인데, 이것도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습니다. 육성 통화 내용을 확인했다는 것이지 그 안에 분식회계를 지시했다거나 혹은 그렇게 해석할만한 무엇이 있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삼바 증거인멸 무더기 구속... 범죄 구성요건 성립 여부 따져봐야

지금까지 검찰이 증거인멸 내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신병을 확보한 삼성그룹 임직원은 8명. 삼성바이오 보안 담당 직원 안모 대리부터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까지 구속된 사람들의 직위와 직책도 다양합니다.

단일 사건에서 증거인멸 죄목으로만 무려 8명을 구속했으니 판을 벌려도 제대로 벌린 셈입니다.

검찰과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증거인멸 행위를 분식회계의 유력한 정황’으로 볼 수 있을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위에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가 지적한 것처럼, 이 사건 삼성바이오 수사에서 드러난 증거인멸 정황이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지입니다.

‘직원들이 노트북과 서버 외장하드 등을 숨기고, 전산자료에서 ‘JY’가 포함된 파일을 삭제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증거인멸과 관련돼 검찰이 언론에 흘린 설명에는 모순(시점 불일치)이 있습니다.

◆증거인멸 구성요건 ‘타인에 대한 공소 제기 예상할 수 있어야’

형법이 정한 ‘죄’는 보호법익에 대한 침해 정도에 따라 ‘결과범’(침해범)과 ‘위험범’(위태범)으로 나뉩니다. 특정한 결과가 발행해야 비로소 범죄가 성립하는 범죄가 ‘결과범’(침해범)입니다. 살인죄, 강도죄, 절도죄 등 우리가 아는 범죄는 결과범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어떤 ‘행위’만 있어도 처벌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과 발생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험범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속하는 죄는 구체적인 특정 행위가 있어야 처벌하는 구체적 위험범과 형법 각 조문이 정한 행위만 있으면 범죄가 성립하는 추상적 위험범으로 구분됩니다.

증거인멸죄(형법 제155조)는 추상적 위험범으로, 구성요건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은 범죄의 성립 여부나 징계사실의 유무, 기소 여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수사 개시 전 행위도 포함됩니다. 다만, 행위자는 ‘타인에 대한 공소의 제기가 있을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형법 기본서와 법조문의 해석을 보면, 본죄의 특정 여부는 구성요건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를 이유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하려면 적어도 본죄가 어느 정도 특정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 검찰 출신 법조인들의 대체적인 반응입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의 본죄는 자본시장법 및 외부감사법 위반입니다. 분식회계 사건이 발생하면 피고인들은 대부분 위 두 가지 법령의 적용을 받습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피고인들도 자본시장법 혹은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순수하게 증거인멸죄의 구성요건을 기준으로 하면, 행위자(삼성그룹 임직원)는 분식회계를 이유로 삼성바이오 등 기업의 대표이사나 이재용 부회장 등이 기소될 것을 예상하고, 분식회계와 관련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했어야 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증거인멸을 이유로 영장 청구까지 가려면, 본죄가 어느 정도 특정이 돼야 한다는 추가 조건이 붙습니다. 더 쉽게 설명하면 분식회계에 대한 혐의 입증이 상당한 정도로 이뤄졌을 것을 요합니다.

◆검찰 “증거인멸 정황, 이재용 부회장 알고 있었을 것”

검찰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팀 소속 임원과 재경팀 부사장 등을 구속하면서 증거인멸교사죄를 적용했습니다. 구속된 안모 대리 등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윗선’으로 이들을 지목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검찰은 아주 구체적인 증거인멸 교사 정황을 언론에 밝혔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이사,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소속 임원 등은 지난해 5월5일 어린이날,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증거인멸을 모의합니다. 검찰은 이날 회의 내용이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지상파 방송은 “삼성이 지난해 5월5일 회의에서 증거를 없애기로 결정한 뒤 5월10일 해당 내용을 최고경영진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이 매체는 10일 회의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TF팀 사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등이 참석했다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삼성 측은 위 보도에 대해 “지난해 5월10일 회의는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두 기업의 판매현황, 의약품 개발 상황 등 중장기 사업추진 실태를 검토한 자리였다"며 검찰 주장만을 받아 쓴 보도에 유감을 표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檢 “5월5일 증거인멸 대책회의”... ‘고의 분식회계’ 의결은 지난해 12월, 시점 불일치

검찰은 5월5일 대책회의 이후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검찰의 시각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삼바 분식회계 의혹은 지난해 5월5일을 전후해, 직원들이 기소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경과가 진행됐어야 합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증권선물위원회가 ‘고의 분식회계’를 의결한 때는 그해 11월14일 입니다.

지난해 5월은 금감원이 ‘1차 감리 결과’를 증선위에 보고한 시점입니다. 당시 금감원 감리의 초점은 ‘분식회계의 고의성’이 아니라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의 공시 누락’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과 6월, 삼바 분식회계 논란은 고의가 아니라 그 존재 여부가 쟁점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시기 분식회계를 ‘고의’로 단정 지은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검찰이 지목한 지난해 5월5일 대책회의를 기점으로 할 때, 분식회계는 논란의 대상이었을 뿐 고의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정을 고려하면, 증거인멸죄의 구성요건을 액면 그대로 적용해도 ‘공소 제기 예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2편에서 계속)

※ [편집자 주]

본지는 최근 삼성바이오 검찰의 공소 사실과 상반되는 증언 및 자료를 일부 입수했습니다. 현재 그 내용의 팩트 확인을 위한 검증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검증이 끝나면 본 [시경25시] 코너를 통해 기사화 할 예정입니다.

검찰을 출입하는 법조기자들은 ‘공소장’을 바이블처럼 맹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소장은 검찰이 공소유지를 위해 만든 자료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공소장에는 객관적이지 못한 검찰의 심증이 마치 사실처럼 각색돼 담기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공소장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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