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째 혈세로 연명 중인 제로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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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째 혈세로 연명 중인 제로페이
  • 오창균 기자
  • 승인 2019.06.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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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로 온갖 지원 남발... 전문가들 "제로페이 활성화 쉽지 않아"
소상공인들은 "그냥 카드나 현금으로 결제하면 안되나요?" 반문
제로페이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이기륭 기자
제로페이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이기륭 기자

정부·여당의 대대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제로페이를 둘러싼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현금이나 카드 지불 시스템에 비해 결제 과정이 까다로운 탓에 일반 시민은 물론 혜택 대상인 소상공인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논란은 벌써 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현장 마케팅이나 소비자 유인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지난해 야심차게 제로페이 정책을 꺼내든 박원순 서울시장은 10일 오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와 제로페이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박원순 시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노총이 대변하는 노동자들의 삶과 한상총련이 대변하는 소상공인의 삶이 연대함으로써 카드 수수료와 임대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정부·청와대는 이날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해 소상공인법을 검토하고 현행 전통시장 추가 소득공제한을 100만원에 제로페이 사용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특히 민주당은 제로페이 캠페인단을 구성해 다음주부터 국민에게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제로페이를 이용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미국 뉴욕 왕복항공권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제로페이 이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독려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간편결제 등 새로운 결제방식이 가능한 단말기를 무상 보급하는 경우는 부당한 보상금(리베이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동안 카드단말기 무상 제공은 여신전문금융업법상 리베이트에 해당돼 엄격히 금지됐다. 이번 유권해석을 두고 업계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로페이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를 풀어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여당이 요란할 정도로 제로페이 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선 시큰둥한 반응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취재진이 직접 서울 중구 인근에 위치한 상가와 편의점을 둘러본 결과 대부분의 소상공인들은 "(제로페이에 대한) 관심은 조금 늘었지만 그렇다고 (제로페이로) 결제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한 달 동안 제로페이 결제 건수는 10건이 채 되지 않았고 (제로페이로) 결제를 하려다 시간이 너무 지연된 탓에 그냥 카드를 내밀고 마는 시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대문의 한 상점 관계자는 제로페이 결제가 가능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냥 현금이나 카드로 하면 안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지난달 29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의도 인근 편의점에서 열린 제로페이 시연식에서 어플리케이션 사용법을 두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은 그대로 전파를 탔고 이인영 원내대표는 멋쩍은 듯 "사용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현장을 지켜본 취재기자들은 결제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지적을 쏟아냈다.

전문가들 역시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제로페이가 온전히 활성화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재연 선임연구위원은 지급결제시장에서 다양한 시장참여자의 수요와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정부가 특정 지급결제수단을 효율적인 수단으로 선택해 활성화를 유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재연 선임연구위원은 "제로페이와 체크카드의 소득공제 혜택 비율 차이가 10%에 불과하고 소득공제규모가 최대 300만원으로 제한돼 있어 사용 유인 면에서도 효과성이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전자지급결제수단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지급결제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시장 참여자의 용도에 맞는 지급결제수단이 적절한 가격으로 제공되고 왜곡 없이 경쟁적이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간편결제 업체 사이에선 수수료나 마케팅 비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로페이 수수료율이 체크카드 수수료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데도 정부의 눈치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프로모션에 참가하는 업체가 적지 않다"고 하소연 했다.

이미 시장에선 제로페이 정책의 실패가 뚜렷하지만 정부는 가맹점을 늘리기 위해 열심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로페이 결제 건수는 6만1,790건, 결제금액은 13억6,058억원에 그쳤다. 서울시 목표금액의 0.015%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공무원을 동원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달부터 전국 4만3,000여 편의점, 74개 프랜차이즈 가맹점, 대보유통이 위탁운영 중인 25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제로페이 결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휴게소는 전국 195개로 확대하고 KTX 역사(367개)에도 이달 말까지 제로페이 결제가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제로페이 가맹점 확보·홍보지원 예산으로만 무려 60억원을 편성했다. 제로페이 할인으로 인한 서울의 공공시설 수입 감소분은 연간 3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혈세는 이렇게 줄줄 새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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