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신 마케팅 트렌드 ‘F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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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신 마케팅 트렌드 ‘FBI’
  • 정규호 기자, 박진형 기자
  • 승인 2017.0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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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Fun), 정보(Big Data), 통합(Integration)

소비 패턴이 변하면서 이에 따른 마케팅 트렌드가 급속히 바뀌고 있다.

10원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격표를 따져보던 소비자가 ‘시간’과 ‘경험’, ‘즐거움’이 포함된 상품을 고르기 시작했고, 기업은 ‘얼마를 샀냐’ 보다 ‘얼마 동안 있었느냐’(Fun)와 ‘무엇을 샀느냐’(Big Data)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생산부터 판매, 배송에서 사후 서비스까지의 모든 마케팅 과정이 통합(Integration)되면서 생산, 도매, 유통, 소비라는 시장 4단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쇼핑몰에 축구장과 동물원이 들어서고 홈쇼핑에는 토크쇼가 추가되고 있다. 껌 종이는 편지지로 바뀌었고, 코카콜라 페트병은 꽃다발로 변신했다. 멸업(滅業) 되다 시피 했던 뽑기방과 코인노래방은 1~2년 사이에 되살아났고, 교통카드는 자녀들에게 ‘용돈 테크’를 교육시키는 수단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모기업) 회장은 “옷은 정보”라며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의류업체가 아닌 ‘구글’과 ‘아마존’을 꼽았다. 1,400억 원의 투자를 받은 화장품 스타트기업 ‘미미박스’ 대표는 성공의 이유로 “소비자들의 화장품 구입 패턴 정보”라고 설명했다.

유통기업이 직접 생산과 유통, 판매에 뛰어들어 만든 PB상품(Private Brand Products)은 '값 싼' 상품에서 '거기에 가야만 살 수 있는' 상품이 됐다.  

소비의 트렌드는 바뀌자 예상치 못한 곳에서 경쟁 상대가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의 경쟁 상대는 더 이상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아니다. 야구장, 축구장, 놀이동산, 페스티벌이다. 누가 더 많은 ‘즐거움’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즐거움이 있어야 소비자가 오고, 오래 머물러야지 매출이 오른다는 것이다.

경기장과 페스티벌에서 발생하는 소비의 현상을 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지난해에 야구장을 다녀간 관람객은 총 736만 명(한국야구위원회 기준)이다. 관람객들이 ‘2인1닭’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368만 마리의 치킨이 소비됐다. 축구장에서는 105만 마리(K리그 기준)가 팔려나갔다. 농구장을 더하면 500만 마리는 가뿐히 넘는다.

지난해 대구에서 개최된 ‘치맥 페스티벌’에서는 단 5일만(7월27일~31일)에 무려 40만 마리(60억 원)의 치킨이 팔려나갔다.

최성남 (사)치맥산업협회 국장은 “치맥과 행복지수가 비례한다는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행사 기간 동안 치맥을 통해 사람들은 큰 즐거움을 느낀 것”이라며 “다음 행사 참여 수는 기존(110만 명)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 된다”고 설명했다.

대구에서 개최된 ‘치맥 페스티벌’에서 단 5일만(7월27일~31일)에 40만 마리(60억 원)의 치킨이 팔려나갔다. 사진=(사)치맥산업협회

다른 조건을 모두 제외하고 지난해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과 대구 치맥 페스티벌(5일간)에서만 540만 마리의 치킨이 ‘즐거움’을 통해 소비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닭 생산량의 5.4%(2015년 9,883만 마리, 자료 통계청)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락 페스티벌인 ‘울트라 코리아’의 역대 관객 수도 2012년 7만5,000명에서 2016년 15만 명으로 늘면서 식음료 매출도 급증했다. 울트라 코리아 김태욱 홍보팀장은 “식음료 매출은 매년 40%씩 증가하고 있고, 2016년도의 경우 첫 해(2012년)에 비해 2배(200%) 이상 증가한 상태다”며 “F&B 매출이 관객수 증가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락의 ‘즐거움’을 해치지 않도록 단가 조절을 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우리의 경쟁자는 야구장과 놀이동산입니다.”라고 밝히 이유도 이 같은 통계와 무관치 않다.

정 부회장이 1조 원을 투자해 지난 9월9일 정식 오픈한 ‘스타필드 하남’의 누적 방문객 수는 1,150만 명(2월12일 기준). 하루 평균 7만1,000명이 꼬박꼬박 방문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의 방문객 수(연간 1,600만 명)는 가뿐히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스타필드는 개업할 때부터 영화관, 노래방, 놀이동산, 물놀이장 시설 등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넣었다. 스타필드 안에서 모든 것을 즐기라는 정 부회장의 전략이다.

김영호(45) 씨는 “남자들은 금방 옷을 사는데 여자들은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백화점을 잘 안 가게 되요. 그런데 하남필드에는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각종 운동 시설과 아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동산(스포츠 몬스터)도 있어 오더라도 지루하지가 않아요.”라고 말했다.

신세계가 하남에 건설한 스타필드 ‘엔터테인먼트’ 시설에서 어린이가 야구 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하남 스타필드.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용산역 현대아이파크몰 옥상에는 ‘풋살장’이 있다. 이용료는 2시간에 평균 9만원이다. 다른 층에 입점해 있는 매장의 객단가와 비교해보면 공짜의 가까운 이용료다.

모든 시간대가 10분 안 에 마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쇼핑에는 관심이 없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아이파크몰 염창선 팀장은 “굳이 쇼핑과 관련이 없는 소비자이더라도 유동인구 조성, 신규 고객 유입, 랜드마크 형성 등의 의미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다”며 “온라인에 시선을 빼앗긴 고객도 되찾아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남성고객이 소비주체로 떠오르고 있어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 위한 시설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서수원점도 ‘풋살장’을 지난해 5월 오픈했다. 홈플러스 이동준 몰·리빙팀장은 “풋살구장 오픈 이후 매장 방문객이 전보다 10% 이상 늘었다”며 “연간 누적 기준 5만 여 명의 신규 고객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대아이파크와 홈플러스는 쇼핑몰에 '풋살장'을 개설해 유동인구 조성, 신규 고객 유입, 지역 랜드마크 등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홈플러스.

전통시장도 ‘FBI’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광주 대인예술시장은 매주 토요일 마다 작가들의 예술품 전시회를 개최하고, 장흥 전통시장은 ‘주말 관광시장’ 형태로 개장했다. 단순 판매시장에서 풍물체험, 짚풀공예, 다문화 음식, 국가별 이색상품, 다양한 공연 등을 실시하고 있다.

부산국제시장은 첫 상설 야시장을 시작했고, 제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해안 방면으로 이중섭거리, 횟집이 밀집된 칠십리 음식특화거리, 천지연 폭포, 새연교(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다리)와 연결시켜 ‘관광로드’를 개척했다. 대구 중구 방천시장은 대구 출신 가수 고(古) 김광석 벽화거리를 조성했다. 이밖에도 서울시는 수 백 만명이 몰리는 ‘푸드트럭 페스티벌’, ‘밤도깨비 야시장’ 등의 푸드트럭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에 ‘푸드트럭존’을 조성했다.

나대균 주무관은 “푸드트럭은 다채롭고,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는 음식들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공연과 콜라보로 연출도 할 수 있어 ‘공연과 푸드트럭’이라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들이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공연 문화와 잘 어울리는 푸드트럭을 입점시키고 있다. 사진=서울시.

즐거움을 느끼는 소비는 비단 대형쇼핑몰과 전통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은 평범한 음료수와 흔한 껌 종이에도 ‘즐거움’이라는 콘텐츠를 담으며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지난 9일 ‘코카콜라 리본 패키지’를 출시했다. 라벨 안에 달린 끈을 잡아 당기면 라벨이 예쁜 리본으로 변한다. ‘마시는 콜라’에서 마음을 전달하는 ‘선물 콜라’로 변신했다.

웅진은 지난달 17일 ‘사장껌’, ‘부장껌’을 출시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을 위해 사장과 부장을 ‘씹는다’(뒷담화)는 의미가 담겨 있다. 껌 종이도 편지지로 변신하고 있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괜찮아’, ‘기운내’, ‘졸지마’ 등의 메시지가 적혀져 있었다면 올해는 말풍선 이미지가 그려져 있어 그 안에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평범한 음료수와 흔한 껌 종이에도 ‘즐거움’을 담고 있다. 사진=시장경제신문.

‘즐거움’은 사라져가던 ‘뽑기방’과 ‘코인노래방’도 되살렸다.

전국 4대 뽑기방·코인노래방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에 따르면 최근 1~2년 사이에 가맹점 수가 급증했다.

프랜차이즈 코인노래방 가맹본부인 세븐스타는 “매년 10여건 씩 가맹점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고, 뽑기방 가맹본부인 엔터나인은 사업 1년 만에 가맹점 수가 22개로 늘었고, 올해 45개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의 인형 뽑기방은 2016년8월 147곳, 12월 880곳, 2017년1월에는 1,164곳으로 크게 늘었다.

대학생 김유나 씨(23)는 “1,000원으로 3~4곡의 노래를 맘껏 부를 수 있고 애매하게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장소로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고, 이창석(43) 씨는 “퇴근길에 가끔씩 들린다. 몇 천원으로 일상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엔터나인 대표는 “청소년 입장에서 500~1,000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아이템은 PC방이 유일하다. 2030대 청년들도 2만원을 주고 1시간 동안 노래방에서 노는 시절은 지났다. 즐거움은 찾아야 하고, 가성비를 따지다보니 산업이 급성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원하고 있고, 기업은 어떤 즐거움을 원하는지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FBI’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사회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웬만한 즐거움으로는 욕구를 채울 수 없어 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소비자들 원하고 있다”며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 문화 시설이 결합된 대형 쇼핑몰의 등장은 이 같은 소비자와의 욕구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의 소비는 일반적으로 구입하는 생필품 소비는 줄이고 작은 사치를 부릴 수 있는 특정물품에서 소비를 많이 하는 유형으로 변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90년대에 20-30대 젊은 층들이 집보다 차를 먼저 구매하겠다는 소비풍조에서 소비의 지불가능액이 더 줄어든 현재 세태를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도 자신의 사회 계층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만족을 위한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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