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 '검찰發 리크 기사'가 위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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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검찰發 리크 기사'가 위험한 이유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5.27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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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삼성바이오 檢 수사방식과 언론보도의 문제점 
‘삼바 수사진행 상황’ 단독 보도 일부 특정매체만 쏟아내
‘수사팀 관계자’ 등장하는 리크(leak)기사... 검찰 입장만 대변  
美 뮬러특검, 2년 넘도록 리크 없어... 기자도 수사질문 자제

23일 오후, 삼성전자가 아래와 같은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삼성전자 보도자료] 
부탁드립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전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측성 보도가 다수 게재되면서, 아직 진실규명의 초기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유죄라는 단정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관련 임직원과 회사는 물론 투자자와 고객들도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저희는 진실규명을 위해 수사에 성실히 응하겠습니다.
진행 중인 수사와 관련해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내용도 간단하고 분량도 얼마 안 되는 심플한 형태의 자료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자료를 통해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수사 관련 기사를 작성할 때, ‘진위 여부에 대한 검증을 거칠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검찰발 기사가 무차별적으로 보도되면서, 유죄라는 단정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삼성전자 측의 판단입니다.

삼성은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양산되면서, 임직원과 회사는 물론 투자자와 고객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있다며, 거듭 ‘수사와 관련해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리한 보도의 자제’를 호소했습니다.

삼성은 그 동안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일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삼성이 출입 언론사 전체를 상대로 ‘검증되지 않은 기사의 자제’를 요청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 삼성을 궁지로 내몬 밑바탕에는 이른바 ‘검찰發 리크(leak) 기사’가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서울중앙지검.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리크 기사는, 취재원이 기자에게 누설한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기사를 말합니다.

검찰이나 경찰이 리크를 하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심증은 있지만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가 없는 경우입니다. 관련자 진술, 압수수색, 통신기록 열람, 금융계좌 추적 등을 통해서도 ‘그림’이 될만한 물건이 나오지 않을 때 주로 사용되는 카드가 리크 기사입니다.

수사팀은 리크를 통해 민감한 수사 정보를 기자에게 흘립니다. 이때 유출되는 정보에는 팩트도 있지만, 수사팀의 심증도 반영됩니다. 결정적 증거가 없을 때 자주 이용되기 때문에 유출되는 팩트도 의혹 내지 정황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크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상대방과의 신뢰관계가 그것입니다.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돈독한 신뢰관계가 없으면 리크는 불가능합니다. 리크는 취재원과 기자의 ‘공생’을 전제로 합니다.

수사팀의 심증이 신문 지면 혹은 방송을 통해 기사화되는 순간, 심증은 ‘의혹’으로 진화합니다. 이 ‘의혹’은 선정적일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다른 매체가 최초의 리크 기사를 따라 쓰고, 의혹이 의혹을 낳는 과정을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면, 수사팀이 언론에 공식적으로 등장합니다.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해 흐지부지 끝날 사건도 이런 과정을 통하면 새로운 생명력을 얻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아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사건 관계자에 대한 줄소환, 검찰 현관 앞에서 이뤄지는 포토타임, 이어지는 밤샘 조사.

이쯤 되면 수사팀이 다소 무리한 영장을 청구해도 여론은 호의적입니다.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도 비난은 그것을 기각한 영장담당판사와 법원을 향합니다. 수사팀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가 없습니다.

수사팀이 리크를 하는 두 번째 경우는, 여론의 동향을 살필 필요가 있을 때입니다. 

사회경제적으로 비중이 높은 사건, 혐의를 받는 대상이 정재계 거물인 경우, 기타 다른 이유로 수사팀이 부담을 느낄 때 리크 기사를 이용합니다. 수사팀은 리크 기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주밀하게 살핀 뒤 수사의 방향, 소환 대상자의 범위, 수사 목표를 설정합니다.

리크 기사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묻힐뻔한 사건을 되살려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할 무리한 수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기능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언론이 유무죄를 판정하고 단죄하는 경우입니다. 리크 기사로 형성된 여론이 제동 장치 없이 확대 재생산된다면 기소와 공판을 통해 규명돼야 할 유무죄 판단이,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바이오 수사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전형적인 리크 기사입니다.

거의 매일 일부 특정 언론이 수사 진행 상황을 담은 단독 기사를 내는 현상을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 단독기사가 유독 일부 특정 매체에 집중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언론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초점을 맞춰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재감리에 나서고,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최종 의결을 위한 전체회의를 진행한 때이기도 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이때부터 유독 삼성바이오 관련 단독을 많이 낸 매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현 정부 친화적이며, 친노조 색채가 매우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대기업’이란 표현보다 ‘재벌’이란 표현을 즐겨 쓰고, 노골적인 반기업 정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 수사 관련 단독기사는 대부분 이들 특정매체가 생산하고 있습니다.

밤잠 설쳐가며 며칠째 ‘뻗치기’를 하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료를 분석해 만든 특종기사를 폄훼해선 안 됩니다. 이런 기사는 어떤 경의를 표해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현재 나오는 일부 특정 매체의 검찰발 단독기사는 소위 말하는 ‘뻗치기’를 통해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수사팀 관계자’가 등장하거나 ‘알려졌다’ ‘전해졌다’ ‘~~했다고 한다’ 등의 모호한 표현이 들어가는 이들 기사는, 검찰발 리크 기사가 분명합니다.

검찰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일부 기자와 매체만을 상대로 수사 정보를 유출하고, 이를 통해 특정 매체가 단독기사를 양산하는 시스템은 그 자체가 청산돼야 할 적폐이자 구태입니다.

언론을 통해 영웅으로 포장되길 원하는 검사와, ‘특종’이라는 욕망 혹은 ‘정치적 이념’에 매몰된 기자가 손을 맞잡으면, 그 다음 모습은 더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죄(형법 제126조)를 언급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이보다는 수사기관과 언론의 직업윤리에 기대는 것이 그나마 효과적일 것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맡은 뮬러 특검은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리크’를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인상 깊은 건 특검 취재진의 태도입니다. 기자들은 뮬러 특검에게 수사 진행과 관련된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사가 시작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리크’를 해줄 취재원을 찾는데 혈안이 되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언론학을 전공한 황근 교수(선문대 언론광고학부)는 ‘삼성바이오 수사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금의 특종 시리즈는 정권 초부터 있었다. 적폐사건 수사 특종을 일부 언론이 계속 내고, 그 기사를 근거로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검찰이 이를 받아서 수사를 확대하는 매커니즘이다.

언론과 정보원 사이는 너무 멀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가까워도 안 된다. 정보원과 기자가 너무 밀착하면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는 공생관계가 만들어진다. 지금의 삼성바이오 관련 기사 역시 이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언론은 정보원과의 밀착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의 가장 큰 문제는 필터링이 안된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 필터링, 즉 여과가 돼야 사실관계 파악이 되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둘 사이가 너무 가까우면 필터링을 기대할 수 없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종의 여론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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