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셀프 화재규명 못믿겠다"... 빌라 입주예정자들 격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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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셀프 화재규명 못믿겠다"... 빌라 입주예정자들 격앙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9.05.2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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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동탄 신축 고급빌라 화재 놓고 건설사-입주예정자 대립
화재 후 안전진단~보강공사 진행했으나 입주예정자들 ‘불신’
일부 입주예정자 “중흥건설, 안전진단업체 공모” 주장도
화재 발화 지점 놓고 소방서, 건설사 측 서로 다른 입장
중흥건설 “입주예정자들 요구로 화재 발생 층 모두 보강”

분양가가 수억원에 이르는 건설 중인 고급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발생 후 이뤄진 보강공사가 안전진단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의문투성이로 진행된다면 입주예정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최근 경기 화성 동탄의 한 빌라단지 공사 현장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져 입주예정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논란의 현장은 중흥건설이 경기 화성에 짓고 있는 ‘타운하우스’이다.

이곳 입주예정자들은 “중흥건설이 소방서가 판단한 발화 위치와 다른 지점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근본적인 안전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중흥건설은 “일부 세대의 지나친 보상 요구와 지속적인 민원제기로, 필요 이상의 보강공사를 하고 있다”며 상반된 입장을 나타냈다. 기자는 제보를 바탕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취재했다.

빌라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건 3월14일이다. 이날 11시50분 ‘테라하우스’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근 주민의 발빠른 대처로 화재는 발화 시작 30~40분 만에 진압됐다.

화재를 진압한 화성소방서는 공사장 인부가 버린 담배꽁초가 공사자재(스티로품)에 옮겨 붙어 화재로 이어진 것으로 결론내렸다. 중흥건설은 이후 별도 업체를 선정해 안전 점검, 보강 계획을 진행했다.

그러나 일부 입주예정자들은 중흥건설의 화재 점검과 보강 계획이 의문투성이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유는 4가지이다.

첫 번째, 소방서와 중흥건설은 최초 발화 위치를 다르게 보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화성소방서 화재현장조사서’에 따르면, 발화 지점은 건물의 '가운데' 부분이다. 이와 달리 중흥건설은 건물 ‘왼쪽 끝’을 발화지점으로 지목했다.

입주예정자들은 건물 가운데 부분을 발화지점으로 인정하면, 시료 채취를 비롯해 보강공사비가 대폭 늘어나기 때문에, 건설사 측이 발화지점을 건물 가장자리로 지목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입주예정자 B씨는 “소방서의 결론을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곳에서 시료를 채취해야 하는데, 중흥은 발화 지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의 시료를 채취했다”며, “안전 점검 업체가 중흥건설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내려 준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중흥건설의 의뢰로 화재 발생 건물에 대한 안전 진단을 실시한 업체 관계자는 “소방서 자료는 못 봤고, 최초 발화 지점은 건설사가 알려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최초 발화 지점은 보고서 나온 곳(왼쪽 끝)이 맞다. 불이 가장 크게 났다. 소방서가 잘못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중흥건설 역시 “불은 왼쪽 끝에서 났다. 소방서가 잘못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화성소방서는 "4호라인에서 좌측으로 퍼져나갔다고 당시 인부가 말했다"며 건설사 측과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왼쪽)중흥이 조사한 발화 지점, (오른쪽) 소방서가 조사한 발화 지점.
(왼쪽)중흥이 조사한 발화 지점, (오른쪽) 소방서가 조사한 발화 지점.

두 번째, 안전 점검 보고서의 화재 온도 결론이 진단 과정과 매우 상이해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안전진단 보고서’를 보면 화재 당시 온도는 500도까지 올랐고, 이로 인해 콘크리트 벽과 천정에 5~10mm의 폭렬(화재로 인해 패인 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폭렬이란 콘크리트가 가열을 받아 표면이 급격히 파열되는 현상을 말한다. 콘크리트 성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보고서 제2장 현장조사 페이지를 기준으로 하면, 화재지속시간에 따른 콘크리트 파손 깊이는 다음과 같다.

800도는 0~5mm 깊이 손상 유발. 
1000도는 15~25mm 깊이 손상 유발.
1100도는 30~50mm 깊이 손상 유발.

보고서의 다른 페이지에는 ‘화재가 발생할 경우 보통건물의 화재 온도는 700~1200도에 이른다...(중략)... 심하면 건축물이 붕괴되기도 한다’는 내용도 있다. 

다른 페이지에는 “점검을 위해 채취한 콘크리트가 분홍색으로 변질됐는데, 분홍색은 당시 화재의 온도가 300~600도였다는 근거”라는 내용도 있다.

중흥건설의 의뢰로 보고서를 작성한 업체가 밝힌 기준(콘크리트의 변색상황과 수열온도의 관계)에 따르면 300도는 그을림, 300~600도는 분홍색, 600~950도는 회백색, 950~1200도는 담황색, 1200도 이상은 콘크리트가 녹는다.

업체는 “채취한 콘크리트 시료를 보면 안쪽 23.34mm 깊이까지 분홍색으로 변색됐으므로, 당시 화재 온도는 300~600도 범위 내”라고 설명했다.

안전 보고서 결론과 과정의 차이 정리
안전 보고서 결론과 과정의 차이 정리

입주예정자 A씨는 “500도 결론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설명이 안 된다. 폭렬 깊이를 5~10mm로 결정 짓고, 조사를 하다보니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안전진단 업체 관계자는 “개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논문 자료를 인용하다 보니 오해를 불러일으킨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중흥건설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보통건물의 화재온도는 700~1200도에 이른다’라는 문구는 일반적인 개요 사항일 뿐”이라며, “콘크리트 변색정도와 콘크리트 폭렬 현상 외관조사 및 콘크리트 중성화 자료를 볼 때 화재 발생 당시 온도는 500도라고 추정했다”고 덧붙였다.

세 번째, ‘철근’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보강 공사를 실시한 점을 고려할 때, 중대한 하자를 숨기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안전진단 보고서’를 보면 ‘화재 발생으로 인해 철근의 성능 저하 현상은 없는 것으로 검토됐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화재 구조 보강 시공계획서’에는 철근콘크리트 보강 공사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화재 구조 보강 시공계획서’를 보면, ‘슬라브 탄소 섬유 보강’이라는 작업 계획이 기재돼 있다. ‘슬라브 탄소 섬유 보강’은 철근콘크리트 기능을 보강하는 작업이다. 탄소 섬유라는 재료를 붙여 결과적으로 철근콘크리트의 기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입주예정자들은 “안전보고서 결론에 따르면 폭렬 깊이는 10mm, 분홍색으로 변질된 철근콘크리트 깊이는 23.34mm이다. 2개를 더하면 당시 콘크리트는 33.34mm 깊이까지 손상됐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곧 당시 화재가 콘크리트 안쪽에 있는 철근에도 손상을 줬다는 말이 된다”고 강조했다.

보강공사를 맡은 업체 측은 “철근에는 문제가 없었다. 중성화로 콘크리트 강도가 떨어져서 보강한 것이다. 슬라브 탄소섬유는 콘크리트를 보강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반박했다.

중흥측은 건물 화재로 철근에는 문제가 없지만 콘크리트 10mm가 폭렬로, 23.34mm가 중성화로 콘크리트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입주예정자들은 철근까지 손상을 입은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자인=조현준
중흥측은 건물 화재로 철근에는 문제가 없지만 콘크리트 10mm가 폭렬로, 23.34mm가 중성화로 손상을 입어 보강 공사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입주예정자들은 철근까지 손상을 입은 것으로 봐야한다며 정확한 진단과 보강 공사를 요구하고 있다. 디자인=조현준

끝으로 입주예정자들은 중흥건설과 안전진단업체가 보고서 조작을 공모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입주예정자들은 3월23일 중흥의 초청으로 화재 현장을 찾았다. 3월23일은 안전진단업체가 점검을 시작한 날(과업기간 3월 23일~4월 20일)이다.

입주예정자들은 건설사가 발화지점이라고 지목한 지역을 답사했는데, 당시 공사장 인부들이 최초 화재 지점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폭렬이 일어난 부분은 시멘트 같은 물질로 채워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안전진단을 하기 전부터 폭렬 피해 지점이 시멘트로 채워졌는데, 폭렬의 깊이를 어떻게 5~10mm로 파악했느냐는 것이다.

안전진단업체 측은 “3월23일 과업을 수행하기 전에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5~10mm의 폭렬을 육안으로 확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폭렬을 5~10mm로 결정했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날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왼쪽)중흥이 주장하는 발화지점 폭렬의 모습. (왼쪽)3월23일 옵티마가 같은 지점을 촬영한 모습.
(왼쪽)중흥이 주장하는 발화지점 폭렬의 모습. (왼쪽)3월23일 옵티마가 같은 지점을 촬영한 모습.

안전진단 전 폭렬 자리를 보강한 이유에 대해 중흥건설은 “당시 육안으로는 (콘크리트에) 문제가 있는 지 몰랐다. 때문에 구조보수보강공법 선공정인 레진몰탈로 폭렬 부위를 선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흥건설은 “시공사 입장에서는 화재가 난 지역만 보강공사를 하면 된다. 그러나 입주예정자들이 민원을 많이 제기하다 보니 화재가 발생한 층 모두를 보강 중”이라며 의혹 제기를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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