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론만 가득...이재용 '부정한 청탁' 존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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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론만 가득...이재용 '부정한 청탁' 존재했나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5.1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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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대법원 상고심 주목...“승계현안 인정할 직접 증거 없어”
‘승계현안 및 부정한 청탁’... 삼바 분식회계-이 부회장 사건 ‘연결고리’
위 쟁점에 대한 상고심 판단 따라 두 사건의 성격 달라져
1심 결과론적 해석, 항소심 ‘증거재판주의’ 원칙 강조
시점 불일치.. 합병 결의, 대통령 독대보다 시점 앞서
합병비율 불공정 주장, 엘리엇-일성신약 사건 하급심 재판부 ‘기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특수2부, 부장 송경호)이 삼성그룹 옛 미래전략실 출신 삼성전자 현직 임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른바 ‘승계현안 및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을 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8일, 삼성바이오 회계처리 관련 증거를 인멸하거나 교사한 혐의로 삼성전자 사업지원팀 임원 A씨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이 이들에 대한 영장을 발부한다고 해서, 이것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삼성바이오 회계처리와 관련해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주요 관계자들의 신병 확보는 검찰에게 적지 않은 소득이다.

앞서 같은 혐의로 삼성바이오 관계회사(바이오에피스) 소속 임직원 2명을 구속한 검찰은, 신병을 확보한 피의자들을 상대로 보강수사를 벌인 뒤 구체적인 소환 대상자 선별 및 이 사건 쟁점 정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이 사건과 이재용 부회장 뇌물 등 혐의 사건과의 관계는 언론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 뇌물 등 혐의 사건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인 ‘승계현안 및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승계현안 내지 승계작업의 구체적 의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및 이 부회장 뇌물 등 혐의 사건의 성격은, ‘승계현안 및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여기서 말하는 ‘승계현안’ 내지 ‘승계작업’이란, 삼성그룹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 혹은 경영권 승계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부연하면, 금융당국이 분식회계라고 판단한 2015 회계연도 재무제표 작성 당시(2016년 4월), 이 부회장의 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 필요성이 있었는지, 나아가 이를 위해 일련의 승계작업이 존재했는지를 뜻한다.

◆참여연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는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의 출발점”

승계현안의 존재를 긍정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삼성바이오 사건과 이 부회장 뇌물 등 혐의 사건은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고,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단일 사건이다. 따라서 삼성바이오 사건 수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가중처벌도 필요하다는 태도를 취한다.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안이 연결돼 있으므로 상고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해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데 적극 동의한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처음 제기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당과 정의당 일부 의원 등이 위 주장을 지지한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 1심 재판부도 위 견해와 같은 시각을 드러냈다.

이들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단순한 회계 부정으로 보지 않고,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한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범행으로 인식한다. 이 경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는 이 부회장 승계작업을 위한 첫 단추이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전제 조건이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신문DB

◆승계현안 인정할 직접증거 없어... ‘의심들 때는 피고인 이익으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승계현안 내지 승계작업이 있음을 입증할 만한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추론과 정황만을 가지고 ‘소설’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 반론의 기본 시각이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를 시작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엮고, 이를 통해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는 주장은, 추론과 의심할만한 정황에 기대고 있을 뿐 달리 이를 뒷받침할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 반론의 요지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형사 사법의 대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반론은 설득력이 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항소심 재판부의 이 부분 판시이유는 이렇다.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이것은 결과를 놓고 볼 때 그런 효과가 확인된다는 것이고, 이런 사정이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성을 갖는 승계작업이 존재함을 바로 인정할 수는 없다.”

승계현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논리법칙상 부정한 청탁도 인정할 수 없다. 부정한 청탁을 주관적 범죄구성요건으로 하는 ‘제3자 뇌물죄’ 역시 성립할 수 없다.

항소심은 이런 법리를 근거로 동계영재스포츠센터에 대한 삼성의 후원을 무죄로 봤다. 참고로 동계스포츠센터에 대한 후원을 유죄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제3자뇌물죄가 성립해야 한다.

◆1심 재판부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은 부정,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은 긍정”

이 사건 1심 판결의 적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판시 내용에 논리적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승계현안 및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고 이를 위한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봤다.

“이 사건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 루트가 합쳐지고 짧아졌다. 그것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합병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배구조개편 작업의 일환으로 행한 것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1심 판결과 결과론적 해석의 오류

위 판시내용은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승계현안의 존재를 긍정했음을 시사한다. 재판부는 ‘합병 이슈’를 ‘개별 현안’의 하나로 인식했다. 

모순은 여기서 불거진다.

1심 재판부의 논리를 따르면, 이 부회장은 개별 현안(합병 성사)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고, 막연히 ‘대통령이 알아서 편의를 봐 줄 것’이란 기대감만을 갖고 뇌물을 준 사람이 된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개별 현안이 존재하고 대통령과의 독대 기회를 얻은 기업 총수가, 당해 현안에 대한 청탁 없이 막연한 기대감만을 갖고 뇌물을 줬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매우 어색하다. 미리 결론을 정해 놓은 뒤 여기에 맞는 논리를 붙여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들게 하는 대목이다.

합병을 개별현안이라고 인식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다분히 결과론적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합병의 결과 이 부회장이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실제 승계현안이 존재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의 결과론적 해석의 오류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결과를 봤을 때 그런 효과가 확인된다는 것이고, 그런 사정만을 가지고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성을 갖는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바로 인정할 수는 없다.”

-2018년 2월5일, 서울고법 항소심 판결 중 일부. 

◆합병 결의는 7월17일, 대통령 독대는 7월 25일...‘시점 불일치’의 모순

1심 재판부 판단의 또 한 가지 의문은 ‘시점의 불일치’이다.

1심 재판부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개별 현안이라고 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2015년 7월17일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확정됐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2차 독대는 같은 해 7월25일 있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 부회장의 포괄적·묵시적 청탁을 인정하려면 두 사람 사이의 독대는 적어도 합병 결의 전에 있었어야 했다.

합병비율 산정 시점 역시 문제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1:0.35)은 2015년 5월 결정됐다. 금융기관이 분식회계라고 판단한 삼성바이오의 2015 회계년도 재무제표가 작성된 시점은 2016년 4월이다.

◆앨리엇 vs 삼성물산, 일성신약 vs 삼성물산...법원 “합병비율 적법” 

두 회사의 합병비율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적법하게 산정됐음은 법원도 인정하고 있다.

2015년 7월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낸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엘리엇이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제기한 ‘합병비율 불공정’ 주장을 ”근거가 없다“며 일축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이사회 결의일이자 합병계약체결 하루 전인 2015년 5월25일을 기산일로 해 합병비율 및 합병가액을 산정했다“며, ”그 기준이 된 주가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행위나 부정거래행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닌 이상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2017년 10월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는, 구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무효 청구소송 1심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제일모직-삼성물산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적법하게 산정됐고, 그 기준인 주가가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로 형성됐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도 없다”고 판결이유를 설명했다.

위 두 판결은 하급심이지만, ‘합병비율의 적법성’이란 같은 사안에 대해 재판부가 일치된 견해를 밝혔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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