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중기청에게 내려준 '하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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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수첩] 중기청에게 내려준 '하늘의 선물?'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7.0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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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수첩]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하 공단)이 추진한 ‘전통시장 화재공제 사업’에 천운(天運)이 따랐다. 사업은 잘 안 됐는데, 오히려 득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통시장 상인들의 화재보험 가입율은 25% 내외다. 4명 중 3명은 화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입하지 못했다.

민영 보험사들이 시장 점포의 높은 화재율을 이유로 상인들의 보험 가입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중기청은 민영보험 상품보다 최대 63% 저렴하고, 전통시장 상인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화재공제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6일부터 본격적인 가입을 받았다. 전국을 돌며 사업 설명회도 가졌다. 정부는 열심히 홍보하라며 10억5,000만 원의 운영비도 지원했다.

하지만 13일 기준으로 4명의 상인이 가입했다. 사업 초기 홍보 부족으로 가입율이 높지 않을 것으로는 기대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비판에 맞서야 했다.

무엇보다 공제 사업에 ‘자본금’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 큰 문제였다. 자본금이 없다는 것은 화재가 나도 보상할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입 후 시장에 불이라도 나면 정부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애꿎은 상인들만 보험료를 내고,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 질 수 있었다. 결국 화재가 나지 않길 바라면서 자본금이 모아지길 기대해야 하는 도박과 같았다.

그런데 이틀 후 일이 터지고 말았다. 15일 새벽 2시께 여수수산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25곳 중 116개의 점포가 화재 피해를 봤다.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설을 앞두고, 물량을 대량 구입해 놓은 것이 피해를 키웠다. 피해액은 최소 50~70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행히 여수수산시장 상인들의 화재 보험 가입률은 125곳 중 100여개나 됐다. 더 다행인 것은 확인 결과 여수수산시장에는 중기청의 화재공제에 가입한 상인이 없었다.

여수의 한 상인에게 화재공제 사업에 대해 물었다. “뭐라꼬예? 화재공디요? 우린 그런 거 안팝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쉬움 대신 안도감이 맴돌았다.

만일 여수수산시장 상인이 중기청의 화재 공제에 가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중기청과 공단은 당장 60억 원을 어디서 구해 올 텐가.

지난해 발생한 대구 서문 시장의 피해규모는 1000억 원대가 넘는다. 가입자가 이들이었다면 어떻게 보상금을 마련해 올 텐가.

다른 사업비를 댕겨 올 수도 없다. 전통상인 특별법에 따르면 공제 사업비와 타 사업비는 혼용할 수도 없다. 보험 사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결국, 집문서(정부 자산)라도 내놔야 할 판이었다. 상인들이 중기청의 공제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오히려 천운(天運)이 됐다.

하지만 다시는 이러한 운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졸속 사업은 더더욱 안 된다. 중기청이 이번 천운을 발판으로 하루 빨리 공제 자본금을 마련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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