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둔 남대문시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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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앞둔 남대문시장 가보니...
  • 박진형 기자
  • 승인 2017.01.19 11: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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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감소, 소비심리 위축... "죽을 맛"
남대문시장 초입 정경. 예년에 비해 시장이 한산해 보인다. ⓒ 시장경제신문DB

“설 대목인데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장사가 잘 되면 이렇게 파리만 날리겠습니까?”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갈치골목에서 10년 넘게 수산물을 팔았다는 진성수(71·여) 씨의 푸념이다. 진 씨는 “김영란법과 광화문 집회 때문에 장사에 영향을 받는다”며 “새벽 2시에 나왔는데 장사가 안돼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남대문시장은 한산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앞두고 활기가 넘칠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전처럼 많지 않았다. 한 상인은 “남대문 시장을 즐겨 찾던 유커와 일본인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사람들로 북적대던 시장 통에 손님이 줄면서 설상가상 한파까지 덮쳐 더 휑하다”고 전했다.

시장 통에 위치한 한 분식점에 방문했다. 침체돼 있는 시장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 곳곳에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한때 맛집으로 소문이 나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이는 '과거의 영광'에 불과할 뿐이었다.

식료품상인 김승권(29) 씨는 “최대한 싸게 팔아서 손님을 끌어보려고 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며 “선물 세트를 한 개도 팔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그의 매장에 진열된 스팸과 참치 캔, 샴푸 등 익숙한 설 선물세트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인근 상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시장 물건을 보세요. 백화점과 대형마트보다 훨씬 싸고 덤도 많습니다. 왜 다들 대형마트만 가려고 드는지 속상합니다.”

상인들의 불만은 한국소비자원의 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전국 전통시장과 백화점, 대형마트 370개 매장에서 제수용품이 가장 싼 곳은 전통시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4인 가족이 명절 선호 제품을 모두 구매(25개 품목)할 경우 ▷전통시장은 19만3,504원 ▷백화점 29만2,680원 ▷기업형마켓 23만5,782원 ▷대형마트 21만3,323원으로 조사됐다.

과일을 파는 박양려(57·여) 씨는 “지난 구정에는 미리 과일 선물세트를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올해는 예약이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예년과 다르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착잡하다고 했다. 그는 “명절을 낀 새 주가 되면 지금보다 사정은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걱정만 하고 있지 않을 거예요. 다음 주에는 예약이 밀려들어올지 모르는 것 아녜요?”

한국은행의 ‘2016년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을 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 심리가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극도로 위축됐단 얘기다.

설 명절에 수요가 많은 25개 가공·신선식품의 가격은 전통시장이 가장 쌌다. ⓒ 한국소비자원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 실효는 글쎄?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장사가 안 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죽을 맛”이라고 한탄했다. “외국만 봐도 전통시장 근처에 대형마트를 못 짓게 한답니다. 남대문시장을 보세요. 이미 여러 대형마트가 들어섰고 더 세워질 수도 있습니다. 생존권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상인의 말처럼 실제 남대문시장 주변에는 롯데마트 서울역점과 하나로마트 서대문점, 우리농산물할인마트 등이 성업 중이다. 이렇듯 불황과 대형마트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신음하는 시장 상인들을 위해 정부 차원의 여러 지원책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제정됐지만, 전통시장 매출 신장에는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은 의무휴업이 처음 시행된 2012년 전국 전통시장 매출액은 20조1,000억 원이었고 이듬해 19조9,000억 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또 시장에서 사용하도록 지난 2009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온누리상품권은 이른바 ‘현금깡’으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청은 작년까지 온누리 상품권 누적 판매 금액 2조4,000여억 원 중에 9억1,000만 원이 현금깡으로 바꿔치기 됐다고 밝혔다. 특히 설과 추석 등 명절을 전후로 현금깡은 더욱 기승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 상인은 “보여주기식 지원책이 너무 많다”며 “근본적인 지원 방안을 상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방안 마련의 필요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남대문시장 일부 상인들은 초저녁임에도 장사를 접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텅 빈 식당도 상당수였다. 수년째 이어진 경기 하락으로 얼어붙은 소비심리와 실효성 없는 정부 지원책, 대형마트와의 힘겨운 경쟁 등으로 전통시장 상인들의 설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새해에는 전통시장이 살아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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