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디지털 성장통 앓는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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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디지털 성장통 앓는 전통시장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6.12.30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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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상인들이 굳게 닫혀 있는 전통시장 점포들 사이에서 불을 켜고 운영을 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길음시장을 비롯, 전국의 적지 않은 전통시장에서 신·구 상인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시장에 뿌리를 내리고 온 상인들과 새로 유입된 젊은 상인들이 사사건건 부딪치며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5일 길음시장에 5개 매장이 일제히 문을 열었다. 매장은 이른바 ‘청년가게’다.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된 20~30대 자영업자들을 전통시장에 유입시켜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취지였다. 청년가게만의 도전정신과 신선한 아이템, 에너지 등은 쇠락해 가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전통시장 청년가게들'을 테마로 취재를 시작했는데,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청년 상인들은 취재를 반기지 않았다. 이들은 “기존 상인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지쳐 있다”고 말했다. 갈등이 곪을대로 곪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불과 보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오후 6시 길음시장. 대부분의 점포 문이 닫혀 있고, 얼마남지 않은 상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후 6시. 한창 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시장 점포들이 굳게 닫혀있다.

▶ ‘화사한 점포로 리모델링’ 그리고 피해 보상금 요구

길음시장은 쇠락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남은 이들은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시장 일부 지역은 손님의 발길이 끊겨 흡사 스릴러 영화에 나올법한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지자체는 시장활성화를 위해 젊은 피를 수혈했다. 장사가 여의치 않은 상권이 선택됐다. 지자체는 이곳에 입주하는 청년들의 안착을 위해 월세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미 입주한 5개의 청년가게 외에 5개 매장을 추가 모집할 예정이다. 

파스톤 텔의 화사한 점포 외관과 아기자기한 디스플레이는 전면 유리를 통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칙칙한 공간 속에서 화사한 점포들은 더욱 빛이 났다. 그러나 기존 상인들 중 몇몇은 이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청년상인에 따르면 업종 선택부터, 영업시간, 점포 외관 색깔 심지어 매장 내 촛불 사용 여부까지 의견 대립의 주제가 되고 있다. 일부 상인은 청년 가게의 리모델링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먼지와 영업 방해로 피해 보상금을 요구했다.

기존 상인들도 이런 행위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았다. 한 상인은 “2주면 끝날 공사가 한 달 동안이나 이어졌다. 먼지가 심하게 날리다 보니 주위 점포 상품에 하자가 생겼고, 이로 인해 피해 보상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비원이 늦은 저녁 시간까지 운영하고 있는 점포에 무단으로 들어와 손님에게 빨리 나가라고 하는 등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상인회 관계자는 "경비원이 무단으로 점포에 들어가 손님에게 나가라고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 하지만 손님이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고, 촛불 같은 화재를 일으킬만한 원인이 있어 예방을 하는 차원의 대응이었다. 시장 관리를 위해선 원칙상 서로가 양보하면서 지켜줘야 할 부분도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길음시장은 과거에 화재를 겪은 바 있다. 점포 운영에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화재 예방 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기류가 상인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 상인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처지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존 상인과의 갈등을 외부에 표현하지 않으려한다. '추천 맛집', '이색 점포' 같은 취재에 대해서도 자칫 기존 상인들과의 갈등 문제를 언론이 알게될 까봐 거절하고 있을 정도다.

▶청년 상인 선배들 “기존 상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대책 마련해야”

선배격인 다른 전통시장의 청년가게 상인들은 정부 정책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울시의 경우 커리큘럼에 따라 입주 2~3개월 전부터 기존 상인들과 만남을 가졌고, 마케팅 교육도 같이 받았다. 이벤트도 함께 했고, 청소도 같이 하는 등 장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런 활동은 실제 갈등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길음시장에 자리잡은 한 청년가게의 모습.

한 청년 상인의 업종은 빵집이었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 프랜차이즈 유명 빵집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기존 빵집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만을 가질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육과정을 통해 양 점주들은 대화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같은 빵을 팔고 있지만 종류가 다르므로 서로의 상권을 크게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에게 없는 빵을 소비자를 찾는다면 양측의 점포를 추천해주기로 약속했다.

또 다른 상인은 "청년들에게 몇 달 간 보증금이랑 임대료 무료로 지원해 줄테니깐 와서 장사 좀 해달라는 식의 소모적인 정책보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다른 청년 상인은 현재 길음시장에 상태에 대해 ‘성장통’이라고 말한다.

“점포 활성화를 위해 분명히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계획했던 만큼 매출은 오르지 않을 겁니다. 지인 찬스를 통해 인건비 정도는 찍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끝날 때까지 마련해야 하는 보증금과 월세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매출이죠. 매출을 올리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도 할 거예요. 때론 옆 점포에 피해를 주기도 하죠. 갈등은 보통 이렇게 시작되요. 저도 겪었고, 다른 청년상인들도 겪었어요. 그런데 잘 생각보면 옆에 있는 점포들은 이미 이런 과정을 견뎌내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운영하고 있어요. 성장통인셈이죠. 함께 성장하는 조력자로 시선이 바뀌는 순간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길음시장 상인회 회장과 길음시장 청년가게 사업 단장인 김창길 대표는 "현재의 상인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조만간 다른 전통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선배 청년 상인과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부터 공동 마케팅 교육, 홍보, 이벤트도 진행할 것"이라며 "갈등은 있지만 겨울이 지나고 장사가 잘되는 시기가 찾아오면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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