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연수 깡그리 묵살"... 농협하나로마트 정규직 전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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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속연수 깡그리 묵살"... 농협하나로마트 정규직 전환 논란
  • 배소라 기자
  • 승인 2019.05.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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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연차 상관없이 2018년 7월 이후 근무자만 정규직 기회 부여
하나로마트서 2018년 1월까지 일한 비정규직 직원 "불공정" 주장
농협경제지주·하나로유통 "범농협일자리위원회서 결정된 사안" 난색
전문가들 "인건비 확보 안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정규직 전환 추진"
사진=이기륭 기자

2016년부터 2018년 1월까지 2년간 대구 지역 소재 하나로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 A씨는 지난 2017년 5월 ‘농협은행, 하나로마트 등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2만명 가운데 52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농협 측의 발표를 듣고 환호했다.

그러나 그 환호는 1년 뒤, 긴 한숨으로 바뀌었다.

A씨는 7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2017년 5월 당시 기사를 보고 정규직 전환 기회가 생겼다는 희망으로 하나로마트에서 땀을 흘리며 일했다”며 “그런데 이후 2018년 1월 갑작스럽게 비정규직 계약이 만료됐고,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도 제외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하나로유통이 계약을 해지한 것은 물론 기회마저 박탈했다는 주장이다.

A씨는 “기준일 당시 고용 상태만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을 정하다보니 10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일한 분들도 정규직 전환대상에서 빠졌다”며 “2018년 7월 23일 이후 재직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만 (정규직 전환대상에) 해당 된다면 단 몇 개월만 근무하고도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농협경제지주가 근무 연차에 상관없이 2018년 7월 23일 이후 근무자에 대해서만 일괄적으로 전환 기회를 주면서 기준일 이전에 근무했던 비정규직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근속년수가 아무리 높아도 2018년 7월 23일 이후부터 근무하고 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전환의 기회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신세계의 경우 2007년 백화점과 이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 500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꿀 당시, 근무 기간에 관계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홈플러스도 지난해 장기 근속한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당시 계산원과 판매·진열 사원 등의 비정규직은 2400여명 가운데 근무 기간이 만 12년 이상 된 직원은 약 500~600명으로 추산됐다.

A씨는 “기준일 당시 고용 상태만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을 정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라며 "면접 기회라도 공정하게 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하나로마트 운영사인 농협하나로유통 측은 “범농협일자리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따랐을 뿐”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7일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하나로유통은 최근 무기계약직이라는 직군을 만들고 비정규직 530명을 정규직화 하기 위한 채용을 마무리했다. 하나로유통은 2018년 7월 23일 이후부터 현재 근무하는 비정규직에 한해서만 채용을 진행했다.

정규직 전환 면접 기회마저 박탈당한 A씨는 하나로유통에 ‘억울하다’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인해서 정규직 전환에 배제된 점 양해 부탁드린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농협하나로유통과 농협경제지주 측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날짜를 정한 것이 아니라, 지난해 7월 범(汎)농협일자리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따랐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농협하나로유통 관계자는 “억울한 분들이 있을 수 있지만 기업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정규직 전환대상을 정한 것이며 하나로유통뿐만 아니라 작년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일부 농협 법인들이 동일하게 2018년 7월 24일 이후 재직 중인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응시 자격을 부여했다”고 해명했다.

농협경제지주 관계자 역시 "2018년 7월 범농협일자리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한 법인만 단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범농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여러 법인들이 동시에 같은 기준일을 가지고 채용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계열사를 포함해 384명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농협경제지주의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지적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규직 전환대상을 축소한 것에 대해) 법률적인 책임은 없지만, 경제지주 차원에서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5~10년에 걸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규직 전환 사안은) 정부 주도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할 때부터 예상된 문제였다"라며 "관련 예산 확보가 어렵다면 '시점' 보다는 '경쟁'을 통해 정규직 전환 대상자를 선발해야 할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농협중앙회는 2017년 농협은행, 하나로마트 등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2만명 가운데 5245명을 우선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는 당시 비정규직 5245명을 2017년 40%, 2018년 30%, 2019년 30% 전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전환 대상을 40%인 1917명으로 줄였다. 이에 비정규직 직원들 사이에선 "희망고문만 당했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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