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멋대로 의료자문, 조사원 불법운영까지... 막가는 KB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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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멋대로 의료자문, 조사원 불법운영까지... 막가는 KB손보
  • 배소라 기자
  • 승인 2019.04.1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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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보, 자문의 소견서 만으로 '보험금 미지급' 논란
전문가 "자문의 소견서가 보험금 삭감 수단으로 악용"
별도 의료자문 동의서 없이 V자 체크... 사후조작 가능
손해사정사회 미등록 조사인 쓰고도 태연히 "문제없다"

KB손해보험이 의사 소견서는 무시한 채 보험사 자문의사의 자문 소견서만 인정하겠다며 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있어 '보험사 횡포' 논란에 휩싸였다. 심지어 KB손보는 손해사정사회에 등록되지 않은 조사자(보조인)에게 보험금 지급 관련 업무를 위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인 A씨는 지난 2017년 12월 아파트 단지 횡단보도를 걷고 있던 중 자동차에 치여 다리를 다쳤다. A씨는 전방·후방 십자인대와 내부 측부인대 파열을 입고 수술을 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다리에 강직과 무릎 관절이 흔들리는 동요 장해가 생겼다.

일산 Y정형외과의원은 동요 측정결과 12.5mm가 넘는다고 진단했다. 파주 M병원에서도 11.5mm의 동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일산 Y정형외과의원에서 받은 후유장해 평가서를 가해자 측 자동차 보험사인 DB손해보험과 A씨가 보험을 든 한화생명, 메트라이프, KB손보에 제출했다. 

가해자 측 자동차 보험사인 DB손보는 제3의 병원(H대학병원)을 방문해 동요가 10mm 넘는지 확인하자고 했다. 후유장해도 필요없고 10mm 이상 동요가 있는지 소견서만 필요하다고 했다. 이후 A씨는 제3의 병원에 가서 전·후방과 내측부인대를 검사했다. H대학병원은 이를 평가해 건측 대비 합산 10.05mm로 측정하고 소견서를 내줬다.

소견서를 받아 본 DB손보는 "후유장해 29%에 대해선 지침 기준이 11mm 이상이어야 29%를 인정하기 때문에 10.05mm에 대해선 비율을 3분의 2 수준인 19.3%으로 합의하자"고 했다. A씨는 이에 동의했다.

A씨가 가입한 개인보험 가운데 한화생명, 메트라이프는 "다리의 3대 관절 중 1개 관절 기능에서 뚜렷한 장해가 보인다"며 보험금 지급을 인정했다.

◇ "계약자 동의도 없이 의료자문 받아 보험금 지급률 삭감" 주장

반면 KB손보 측은 H대학병원의 소견서를 인정할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KB손보의 지침 기준은 10mm 이상 동요가 있을 때 10%를 지급한다고 돼 있다. 

KB손보는 A씨의 항의가 계속되자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먼저 KB손보 측은 A씨의 동의도 없이 의료자문을 받아와 지급 기준인 10% 가운데 5%만 인정하겠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는 DB손보에서 조정한 비율을 적용해 3분의 2 수준인 7% 정도를 주겠다고 했다.

A씨는 "KB손보 측은 자문병원에 환자를 데려가지도 않고 자문을 받아왔다"며 "환자도 보지 않고 강직 상태를 평가한 것은 엄연히 보험 사기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환자의 강직 장해를 의사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평가하겠다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과연 올바른 보험사의 보상평가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KB손보는 DB손보가 지정한 제3의 병원 소견서를 인정하지 않고, 자사가 원하는 다른 병원을 가자고 A씨에게 강요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A씨는 "DB손보와 제3의 병원에 갈 당시, 여기서 받은 소견서를 제출해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KB손보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말이 달라졌다"며 "이는 KB손보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밥상을 차려줄 병원을 찾겠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질타했다.

◇ 한화생명·메트라이프는 보험금 지급... KB손보만 의료자문 고집 

KB손보 약관을 확인한 결과, 피보험자와 회사가 피보험자의 장해지급률에 대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때에는 피보험자와 회사가 동의하는 의료법 3조에 해당하는 제3의 병원을 정하고 그 제3병원의 의견에 따를 수 있다. 다만 A씨가 타 기관(DB손보가 지정한 제3의병원)에서 받아온 소견서가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A씨는 KB손보가 정한 제3의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조정결정서 제2009-74호를 살펴보면, 동일 사고에 대해 타 보험에서 장해보험금을 지급한 점을 이유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나와있다. 다시 말해, KB손보 측과 또 다른 제3의 병원을 가서 의료자문 받을 필요없이 DB손보와 제3의 병원에서 받아온 소견서로도 충분히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생명과 메트라이프가 보험금 지급을 인정한 것과는 달리, KB손보는 특정 기준을 내세우며 또 다른 의료자문을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 별도 의료자문 동의서 없어... V자 체크 형식이 문제 

▲KB손해보험의 의료자문 동의 체크 항목(3번째).

이 과정에서 A씨는 "KB손보 측이 소비자의 동의도 없이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전문의의 소견을 물어 진단서처럼 활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A씨는 "의료 자문에 대한 설명을 듣지도 못했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의료자문을 왜 받았느냐고 따졌다"며 "그러자 KB손보 측은 본인 동의를 받았다며 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자문 문제를 놓고 양측 사이에서 마찰이 생긴 이유는 KB손보의 의료자문 동의서가 허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의료자문 동의서에 본인이 서명을 해야 하지만, KB손보는 별도의 의료자문 동의서도 없이 V자로 체크만하면 되는 식이다. V자 체크는 보험 가입자 본인이 썼는지 확인하기 어려워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A씨는 "조사자가 관련 항목은 체크할 필요 없이 밑에 사업체명과 서명만 적으라고 했다"면서 "저는 V로 체크한 적이 없는데 나중에 서류를 보니 '청구 건의 손해사정업무와 관련된 제3의 기관에 의료자문 및 법률자문' 항목에 V자로 체크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 의료자문 건수, 전체 손보사 중 KB손보가 가장 많아

자료=국회입법처

의료자문제도는 보험사가 의료기관 전문의에게 의료심의, 장해평가 등 자문하고 소정의 비용을 지급하는 구조다. 보험 분쟁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했다. 하지만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실시하면 절반 이상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생명·손해보험 의료자문 현황(2018)'에 따르면 보험사의 의료자문 건수는 2014년 5만4399건, 2015년 6만6373건, 2016년 8만3580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자문을 의뢰한 건 중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은 경우는 약 60%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체 손해보험사 중에서 KB손보(8381건)가 의료자문을 가장 많이 한 것으로 조사됐다.

◇ 전문가들 "자문의 소견서로 보험금 미지급... 보험사 사기" 지적

전문가들은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자료만으로 소견을 확인하는 의료자문을 보험사가 마치 진단서처럼 활용하는 것은, 진단서 교부 시 의사의 직접 진찰을 강제한 의료법 제17조1항을 위반하는 위법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원 오세헌 보험국장은 "보험사 자문의 소견서가 보험사들이 제멋대로 보험금을 거절하거나 삭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며 "약관 어디를 들춰봐도 자문의 소견서를 가지고 보험금 지급을 판단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의 주된 업무는 보험금 지급인데도 보험금 지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행위는 계약위반이고, 불공정한 것"이라며 "자문의 소견서를 이유로 정당한 보험금을 부당하게 지급하지 않는 행위는 보험사기와 반대되는 '보험사 사기'"라고 강조했다.

◇ 손해사정사회 미등록 조사자에게 위탁 업무 맡겨 

KB손보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취재 결과 KB손보가 손해사정사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조사자(보조인)에게 보험금 지급 관련 업무를 위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6-12조 제2항에 따르면 손해사정업자가 보조인(조사자)을 활용하고자 할 때에는, 등록 전 법 제178조의 규정에 의한 손해사정사협회에 보조인(조사자)의 현황을 신고해야 한다. 조사자는 손해사정사 자격증이 없어 문제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이처럼 법률을 개정한 것이다.

A씨는 "KB손해보험이 위탁업무를 맡긴 손해사정업자의 조사자는 손해사정사회에 등록돼 있지 않으니 해당 조사자를 변경해 달라고 KB손보 측에 요청했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며 "KB손보가 법을 어겨가면서 조사자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손해사정사협회를 취재한 결과 "해당 조사자는 협회에 등록돼 있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같은 문제들과 관련해 KB손보 관계자는 "A씨가 의료자문 동의서 작성시 의료자문 동의에 체크하고 자필 서명한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보조인은 손해사정협회에 등록이 되지 않으며 보조인도 적법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짧막히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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