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수사 근절" 약속, 삼성전자서비스만 예외라는 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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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수사 근절" 약속, 삼성전자서비스만 예외라는 檢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3.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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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검찰총장이 금지한 악습... 지금도 구태 여전
지난해 2월 삼성전자 사업장 압색, ‘영장주의 위반’ 정황 뚜렷
영장에 적시된 제한, 현장에서는 안 지켜... 눈에 보이는 대로 쓸어 담아
증거수집의 위법성... 판결 확정 때까지 지속될 주요 쟁점
사진=시장경제신문 DB

2009년 9월29일, 김준규 검찰총장은 대전고검에서 전국 검사장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차동민 대검차장, 한상대 서울고검장, 노환규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33명이 참석했다.

이날 검사장간담회의 주제는 ‘수사패러다임 변화, 검찰 본연 임무 집중, 새로운 검찰문화 정립’ 등 3가지였다. 간담회가 끝난 뒤 대검은 그 결과를 언론에 배포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별건(別件)수사’를 금지하겠다는 검찰의 ‘약속’이었다.

김준규 총장과 전국 검사장들은, 피의자를 기존 혐의가 아닌 별도 혐의로 수사 내지 구속하는 ‘별건 수사’의 위법성을 확인하고, 이를 근절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검사장들의 ‘별건 수사 금지 선언’은 신선했다.

해방 이후 관행처럼 굳어진 오랜 구악(舊惡)을 검찰 스스로 끊어버리겠다는 대국민 약속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특정 피의자를 수사하면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다른 혐의로 영장을 받아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별건 수사 혹은 별건 구속은 사라져야 할 ‘적폐’임에 분명하다.

최근 불거진 강원랜드 비리 의혹 수사팀의 항명 사태 역시 ‘별건 수사’에 제동을 건 대검 수뇌부의 결정에서 비롯됐다.

별건 수사가 지탄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방법이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데 있다. 실정법 위반의 문제를 넘어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검찰은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저인망식 소환 조사, 평균 12시간이 넘는 밤샘 조사를 통해 피의자와 참고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구태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사건 혐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을 주고,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유죄의 예단을 갖게 하는 것 역시 검찰이 오랫동안 쓰고 있는 악습(惡習)이다.

‘별건 수사’의 위헌성은 '적법절차에 반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 입증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과 연결된다.  

‘별건 수사’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현안 중 하나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관계법 위반 사건이다.

[편집자 주]

‘위법 수집 증거능력 배제의 원칙’과 ‘독수독과이론(毒樹毒果理論)’ 
 
‘위법 수집 증거능력 배제의 원칙’은 강학상의 이론이 아니라 우리 법률과 대법원이 인정한 소송법상의 기본 틀이다. 형사소송법은 2007년 법률 개정으로 308조의2를 신설, 위 원칙을 명문화했다.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대법원도 같은 해 11월 ‘위법 수집 증거능력 배제의 원칙’을 인용하는 기념비적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제주도청 지사실에 대한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다툰 이 사건 판결이유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법리를 확립했다.

“절차 조항을 따르지 않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이며 확실한 대응책은 이를 통해 수집한 증거, 이를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를 유죄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대법원 2007.11.15. 2007도3061호.

특히 대법원은 위 판결이유를 통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능력을 부정한 것은 물론이고 그 파생증거(2차적 증거)의 능력마저 부인하는 ‘독수독과이론’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독수독과이론(Fruit of the poisonous tree, Früchte des vergifteten Baumes)은,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毒樹)에 터 잡아 2차 증거(파생증거)를 얻었다면, 그 파생증거 역시 독과(毒果)이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법리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처음 제시된 이론이지만 다양한 예외가 허용된다는 점에서, 형소법 제308조의2가 명문으로 규정한 ‘위법 수집 증거능력 배제의 원칙’과 실효적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검찰, MB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 수사 중 ‘싹쓸이 압색’ 

삼성전자서비스와 모기업인 삼성전자, 두 회사의 전현직 임원 등 검찰이 기소한 피고인만 32명에 이르는 이 사건은, 이달 5일 여섯 번째 속행 공판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지시를 받아 노조설립을 조직적으로 방해했으며, 해당 직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 노조원 사찰 등 각종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검찰 수사 결과의 요지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는 물론이고 삼성그룹 전체로 수사를 확대해 다른 계열사에서 유사한 행위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회사 측 변호인단은 “증거수집 자체가 위법하게 이뤄졌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해선 안 된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이 말하는 위법한 증거 수집의 이유는 이렇다.

이 사건 발단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이다. 지난해 2월8일 검찰은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 수사 도중 삼성전자 본관 및 사업장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본 혐의’(다스 소송비 대납)와 관련 없는 문서와 자료도 대량 압수했다. 검찰은 이들 문서에서 이 사건 혐의를 포착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영장이 적시한 범위를 벗어나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장에 따르면 압수수색 대상은 작성일자가 2008년 1월1일부터 2011년 12월 31일까지인 문서로 제한돼 있었으나, 검찰은 이런 기준을 사실상 무시하고 싹쓸이 압색을 진행했다.

검찰의 압색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308조의2를 정면에서 위반했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삼성전자서비스 홈페이지. 화면 캡처

◆재판부 “검찰 과실 인정하지만, 위법한 증거 수집은 아니다” 

검찰은 압수수색 도중 회사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몰래 빼돌리는 직원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등 문서를 은닉 혹은 훼손하려는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에, 변호인단의 항변은 이유 없다고 맞섰다.

올해 1월 7일 이 사건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증거수집의 위법성과 관련된 양측의 의견을 듣고, 검찰 측의 ‘절차상 과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압수수색 당시 영장에 기재된 시간과 장소 등에 대한 제한 범위를 위반했다는 변호인 측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검찰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재판부가 증거수집 위법성 관련 판단에서 검찰의 주장을 지지한 이상, 이 문제가 1심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검찰 수사 행태에 면죄부가 주어졌다고 볼 일은 아니다.

◆끝나지 않은 ‘별건 수사’ 비판... 압색과정의 정당성도 문제

이 사건 수사의 단초가 본래 혐의와 관계가 없었다는 점, 즉 ‘별건 수사’를 둘러싼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2월 압수수색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법조계 안팎의 비판 역시 사그라들지 않았다.

검찰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몰래 반출하려고 한 삼성전자 직원을 현장에서 체포한 사실을 예로 들며, 회사 측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당시 검찰은 해당 직원이 차량에 보관한 물건이 압수수색 물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검찰의 이런 행위는 영장주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검찰이 ‘광범위 압수수색’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한 또 다른 정황-삼성전자 직원들이 메신저를 통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주장-역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삼성전자 직원들이 메신저를 통해 각 지역 사업장의 압수수색 사실을 공유했고, ‘책상 위 서류를 전부 치우고 잠가라’, ‘모두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등의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압수수색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검찰의 이런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는지 공감할 수 있다.

통상 우리 검찰의 압수수색은 무자비하다.

변호인이 밝힌 것처럼 법원이 영장을 통해 허가한 압수수색 대상에는 일정한 제한이 붙는다.

예를 들어 ‘20XX년 1월 1일부터 20OO년 12월 31일까지 사이에 작성된 문서 중 재무팀 자료’, ‘20OO년 3월부터 20△△년 9월20일 사이에 작성된 임원 인사 관련 자료’와 같이 특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검찰은 영장에 따라 압수수색을 마친 뒤 대상 문서 리스트를 작성, 회사 담당자에게 교부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지극히 형식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위와 같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눈에 띄는 모든 문서를 수거한다. 컴퓨터 파일도 마찬가지다.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노트북이나 데스크 PC 본체를 통째로 압수하곤 한다. 심지어 작성 중인 문서까지 모두 쓸어 담은 뒤, ‘필요하면 검사실로 와서 복사해 가라’고 통보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압수수색이 들어오면 일단 서류를 숨기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압수수색을 직접 당한 ‘당사자 관점’에서 사건을 되짚어본다면, 직원들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증거인멸의 증거라고 볼 수 있을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별건 수사 및 이에 터잡은 증거수집의 위법성 문제는 이 사건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논란이 될 사안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6월19일부터 같은 해 11월22일까지 공판준비기일만 무려 10회 열렸다. 본 공판은 지난해 11월27일부터 올해 1월8일까지 다섯 번 진행됐다. 그 사이 사건 병합이 잇따르면서 피고인 수는 32명으로 늘어났다. 제6회 공판은 5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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