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교수 "국민 집사가 국민 허락없이 '의결권 행사' 自家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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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교수 "국민 집사가 국민 허락없이 '의결권 행사' 自家決定"
  • 오창균, 정규호 기자
  • 승인 2019.02.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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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경영개입 쟁점과 전망' 20일 바른사회 토론회
"과연 국민이 국민연금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했는가?"
"국민연금 지배구조, 백지 상태에서 다시 설계돼야"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국민연금 정책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국민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바른사회시민회의가 '3월 주총, 국민연금 경영개입 쟁점과 전망'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국민연금 정책토론회는 발제와 토론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패널이 각자의 전문적 영역을 바탕으로 쟁점을 정리·분석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의 근간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 배경과 제도의 본래 목적, 국내 현실과의 충돌,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 비판 등 다양한 쟁점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관치수단화를 경계한다, 한진KAL 적극적 주주권 행사 사례분석'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 사회적 비난과 법적 처벌, 주총 아젠더의 혼돈(混沌)

조동근 교수는 한진칼(KAL) 사례를 중심으로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을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했다.

조동근 교수는 먼저 문제의 뿌리인 조현아 땅콩 회항(2014년 12월 5일)과 조현민 물컵 투척(2018년 4월 15일) 사건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사회적 비난·법적 처벌·주총 아젠더를 혼돈(混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덕과 법이라는 층위(層位)가 다른 문제임에도 주주총회를 통해 조양호 일가를 응징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사회적 비난과 법적 처벌은 엄연히 공적 영역이지만 주주총회는 이해관계자의 사적자치 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해관계자인 주주 이외의 '제3자 관여'는 범주의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조동근 교수는 "조양호 일가에 대한 응징은 사회적 비난이든 법적 처벌이든 공적영역에 국한돼야 한다"며 객관적인 시각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문제를 제기했다. "오너 갑질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을 특정할 수 있는가?"

조동근 교수는 "오너(owner) 리스크는 재벌 공격의 선봉에 나선 좌파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라고 비판했다. 이어 "좌파들은 오너 갑질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추락시켰다고 입을 모으지만 주장은 있되 논거는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2014년 12월 5일 이후 대한항공·한진칼의 주가 추이를 제시했다. 실제 사건일 이후 대한항공 주가는 떨어졌지만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주가는 2015년 5월까지 오히려 상승했다. 조동근 교수는 "주가를 결정하는 수없이 많은 변수를 차치하고 오너의 갑질이 주주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좌파의 주장은 너무나 무딘 칼(刀)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조동근 교수의 분석은 계속됐다. 그는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를 분석하며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이 대한항공의 경쟁사인 반사이익을 가져다준 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시아나항공이 지속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지 못했다면 오너 갑질에 의한 기업가치 훼손 주장은 설득적이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2018년 4월 15일 조현민 물컵 투척 사건을 기준일로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도 동반하락했는데 이는 오너의 갑질이 주주가치를 하락시킨 것이 아니라는 또 다른 반증이며 두 항공사의 원래 주가 역시 비슷한 등락 패턴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친(親)정부 성향 세력의 주장과는 달리 두 항공사의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 대목이다. 조동근 교수는 "오너 일가의 갑질이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은 논거를 갖추지 못한, 그렇게 믿고 싶은 값싼 예단(豫斷)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조동근 교수는 "조양호 회장의 진퇴 여부는 경영성과에 기초해 이해당사자인 주주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놔둬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조양호 회장이 재판이 확정된 후 정관변경을 해도 늦지 않으며 국가권력의 대리인인 국민연금이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진그룹의 경영성과가 경쟁업체에 비해 낮고 그것이 경영판단 실수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공권력인 정부가 주총에서 오너 갑질을 문제 삼아 조양호 회장과 다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설명이다.

조동근 교수는 이러한 다툼은 대한민국 헌법 제126조에 반(反)할 소지가 크다고 했다. 헌법 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는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연임을 막기 위해 정관을 변경하는 것이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에 따른 것인지를 냉철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국민연금 정책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 "국민이 국민연금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했는가?"

다음으로 조동근 교수는 지난달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에서 내놓은 발언을 주목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은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서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했다.

조동근 교수는 이에 대해 "국민은 국민연금에게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해 달라고 위임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그랬다면 국민은 수탁자인 국민연금에게 위임내용을 제한·변경하거나 수탁자를 해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의 논거는 국민연금법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법 어디를 보더라도 경영 개입을 위한 의결권행사를 명시적으로 주문한 조항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조동근 교수는 "결국 스튜디어십 코드 도입은 국민연금의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역할을 자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셀프 도입은 일종의 자가발전(自家發電)"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스튜디어십코드 도입은 기금운영위원회 고유의 권한인가"라고 되물었다. 지난해 7월 23일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기금운용위원회의 결정으로 스튜디어십 코드를 도입한 것이 정당성을 갖춘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다.

조동근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규정한 국민연금법 제102조를 조목조목 분석한 뒤 "딱히 스튜디오십 코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호를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결국 소관부서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했으니 스튜디어십 코드 도입은 정당하다고 주장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선택한 것은 정당하다는 독선이 아닐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동근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대리인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통한 경영개입은 엄밀한 의미에서 위법이며 국민연금이 갖는 주주권은 재무적 중립 투자자로서의 그림자 주주권(shadow vote)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 정책토론회 발제 자료 발

#. 공적연기금의 집사 참칭(僭稱)의결권 지배구조 기울어진 운동장

조동근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한계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연기금은 경영권에 관해 구체적 협의를 할 수 있는 구조로 구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기금운영을 책임지는 조직으로서의 최소한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기금운영위원회는 대표성과 공공성에 중점을 둔 '정치위원회' 성격을 띄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영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또 위원을 임명하기 때문에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연직 위원이 많기 때문에 전문성을 높일 수도 없다. 조동근 교수는 "그런 위원회가 합리적 근거에 기초해 주주로서의 의결권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했다.

해외의 경우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연금운영을 주도하고 있지만 공적연금관리독립법인(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을 설치하고 있다. 그리고 GPIF 운영위원회 11인은 모두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공단(California Public Employees’ Retirement System)은 최고의사결정기관으로 위원회 13인을 두고 가입자에 의해 선출된 6인, 임명에 의한 3인, 법의 직권에 의해 지명되는 당연직 이사 4인으로 구성했다. 위원장은 위원들의 투표로 선출되도록 돼 있다. 일본과 미국은 대표성과 공공성보다는 가입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스튜디어십 코드 도입으로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위원회는 14명 위원 가운데 9명이 정부와 산하 연구기관 추천이거나 노동계 인사로 구성됐다. 14명 중 9명이 찬성하면 모든 의안은 통과된다.

조동근 교수는 "연금기금운영위원회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등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지배구조가 정치권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뒤집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을 허용하면 '연금사회주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민연금 운영 수익률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조동근 교수는 "2018년 10월 국민연금은 큰 투자 손실을 입고 손실액 15조원을 기록했는데 기금 운용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민연금이 초유의 마이너스 운영수익률을 기록할 때 국민연금이 스튜디어십 코드 도입에 모든 걸 걸었다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동근 교수는 "스튜디어십 코드 도입이 국민연금의 운영수익률 제고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기관투자자가 집사라는 완장을 차고 기업에 관여하면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수익이 개선돼 국민연금의 운영수익률이 제고 될 것인가? 스튜디어십 코드 도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요술지팡이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연금사회주의와 주주행동주의를 우려한다"

조동근 교수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연금사회주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금사회주의'란 민간기업의 주요 주주가 된 공적연기금이 정치권의 영향을 받아 경영에 관여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미국과 같은 해외 선진국과는 달리 대규모이자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동근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기금에 대해 절대적 영향력을 갖는 정부는 자신이 추구하려는 목표를 기금을 통해 실행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기업 오너의 갑질을 응징하겠다는 주주권 행사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투자유형별 전반적인 성과가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은 '환경(E), 사회책임(S), 지배구조(G)' 관련 사회적 책임 투자를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주도하게 되면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은 임계치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동근 교수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정치 슬로건을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연금사회주의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가 반(反)재벌정서와 결합하면 재벌개혁 등의 관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으며 이는 변질과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특히 조동근 교수는 스튜디어십 코드 도입과 관련해 주주행동주의를 경계했다. 특히 "주주행동주의 순기능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해외투기자본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역작용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안정적인 균형추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국민연금이 스튜디어십 코드를 운운하는 것은 자본시장을 교란시킬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동근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조인 영국 재무보고위원회 2010년 발표를 인용하며 "당시 스튜디어십 코드 도입은 결코 공적 연기금을 1차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치권은 이를 오해하고 공적연기금의 행동규율로 스튜디어십 코드를 오인(誤認)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제기한 문제는 스튜어드십 이론이었다. 조동근 교수는 "집사는 선(善)하고 이타적인가"라고 청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잠시 후 그는 "스튜디어십 코드 SC 이론은 첫 번째(최종투자자·기관투자가) 관계에서 기관투자가에게 집사의 지위를 부여하고, 두 번째(기관투자가·회사 경영자) 관계에서는 경영자를 대리인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SC 이론은 최종 투자자와 기관투자가 사이에는 '집사 이론'을 기관투자가와 회사 경영자 사이에는 '대리인 이론'을 차등 적용하고 있지만 이는 정확한 설정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관투자가는 개인 또는 법인들의 여유자금을 주로 유가증권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법인형태의 투자자이기 때문에 따라서 사적(私的) 목표를 가진 기관투자자가 청지기란 보장은 없고 오히려 복(複)대리인 관계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조동근 교수는 "한국의 국민연금은 모든 국민이 강제로 들어야 하는 노후 개보험(皆保險)이고 국가독점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청지기로 여기는 것은 그 자체가 견강부회이며, 집사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같이 국민연금이 여론동향에 편승해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면 치명적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끝으로 조동근 교수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은 갑 속에 든 칼이어야 하지,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칼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굳이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겠다면 상법, 회사법, 공정거래법 등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백지상태에서 다시 설계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이 기금 운영수익률을 제고시키기 위해선 민간 자산운용사와 경쟁하고 그 성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동근 교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낀 것으로 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문제의 핵심인 국민연금 의결권에 대해선 "국민연금이 적극적 의결권 행사의 물꼬를 튼 이상 정부의 국민연금을 통한 민간기업 경영 개입을 제어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 한도를 5%로 제한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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