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治 수단화 된 국민연금, 정부 지배구조 바꿔야"
상태바
"官治 수단화 된 국민연금, 정부 지배구조 바꿔야"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2.22 0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연금 경영개입 쟁점과 전망' 20일 바른사회 토론회
조동근 교수 “국민연금, 해지펀드처럼 행동해선 안돼”
황인학 박사 "민간기업 경영개입 전, 정치적 독립부터”
박진식 변호사 "문형표가 직권남용이면 박능후도 마찬가지”
전지현 변호사 “나라마다 도입목적 달라... 독립성 확보해야”
‘3월 주총, 국민연금 경영개입 쟁점과 전망’을 주제로 한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정책토론회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렸다.

스튜어드십코드의 본래 목적과 제도의 특성, 해외 사례 등을 심층 분석하면,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국민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비판이 학계·법조계 인사들로부터 제기됐다.

전문가들의 이런 견해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3월 주총, 국민연금 경영개입 쟁점과 전망’ 토론회에서 나왔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당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데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실증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스튜어드십코드가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경영개입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기금의 전문성 부족,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구조적 한계,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가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과 충돌하는 현실 등을 지적하면서, 정부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강행 방침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박진식 변호사(사법연수원 33기), 전지현 변호사(연수원 41기) 등 5명이 패널 겸 발제자로 참여했다. 토론회 사회는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맡았다.

조동근 교수 “국민연금이 해지펀드처럼 행동해선 안 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사진=시장경제DB

조동근 명예교수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결정한 국민연금의 판단에 쟁점 별 질문을 던지면서 발제를 시작했다.

조 교수는 “이번 발제는 한진칼의 사례를 중심으로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언회는 이달 1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KAL)에 ‘최소한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의결했다. 국민연금은 ‘정관변경을 위한 주주제안’을 통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막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조동근 교수는 “이른바 오너 갑질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을 특정할 수 있느냐”며 국민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대표적 오너 갑질 사례인 ‘땅콩회황과 물컵 투척’을 ‘사건일’로 보고 그 이후의 대한항공, 한진칼의 주가 흐름을 살펴볼 때, ‘오너 갑질에 의한 기업가치 하락’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조 교수의 지적이다.

조 교수는 “오너 갑질이 기업가치를 떨어트렸고 이로 인해 주주가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논거를 갖추지 못한, 그렇게 믿고 싶은 ‘값싼 예단’(cheap talk)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교수는 국민의 노후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연금을 관리해야 하는 국민연금이 본래 목적을 망각하고,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해지펀드와 같은 행태를 보이려 한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조 교수의 발언.

“(국민연금의 압박에) 기업이 배당을 늘리고 유휴자산을 매각해 현금흐름을 개선하면 주가는 오르지만 그 혜택은 현재의 주주에 국한된다.

한진칼을 압박해 대한항공 주가를 끌어 올렸다면, 국민연금은 ‘주주행동주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공적연기금이 헤지펀드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조동근 교수는 국민이 국민연금에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위임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조 교수는 “국민연금 경영권 개입의 논거는 국민연금법에서 찾을 수 없다”며, “스튜디어십코드는 국민연금의 영향력 제고를 위해 기금운용위원회가 ‘셀프 도입’한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국민연금기금의 취약한 지배구조는 조동근 교수로부터도 지적을 받았다.

조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최소한의 ‘독립성과 전문성’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금기금운용위원회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등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지배구조는 정치권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조동근 교수는 스튜어드십코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정치권과 언론은 스튜어드십코드를 공적연기금의 행동원칙으로 오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제도가 처음 탄생한 영국에서 스튜어드십코드는 공적연기금이 아닌 민간투자기업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자율규범적 성격이 강하다.

조 교수 역시 ‘집사론’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조 교수는 “집사는 선(善)하고 이타적이고 전지(全知)한가”라고 반문하면서 대부분 기관투자자들은 그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기관투자자는 ‘의결권 자문사’의 서비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스튜어드십코드는 뜻하지 않게 ‘외국계’ 의결권자문사의 배만 불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 교수는 “그들(의결권자문사)은 한국의 ‘국익’에 관심이 없다”며, 제도의 역기능을 꼬집었다.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에 참여한 한국지배구조연구원이 의결권자문업을 영위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조 교수는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자신이 코드를 만들고 코드 이행을 감시하면서, 자신의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것은 이행충돌방지 원칙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거듭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개입을 논의하기에 앞서 연기금 의사결정기구가 정치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먼저라고 조언했다.

“국민연금은 스스로 ‘청지기’를 자임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으로부터 노후자금의 관리를 위임받은 선한 ‘금고지기’로서의 집사 노릇에 충실해야 한다. 수탁자산의 안정적 관리와 운영수익률 제고 그 이상의 기금운영 원칙은 없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부터 잘못됐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백지상태에서 다시 설계돼야 한다. 현재 기금운용위원회는 ‘정치위원회’의 성격이 짙다. 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재설계가 필요하다.”

황인학 박사 “국민연금, 민간기업 경영개입 전에 정치적 독립부터 이뤄야”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사진=시장경제DB

기업지배구조 및 연기금 정책 관련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황인학 박사는 지난해 전격 도입된 스튜어드십코드가 안고 있는 내재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제도 강행이 초래할 역기능에 주목했다.

황 박사는 ”한국 주식시장의 가장 큰 손이며 정부가 관리·운영하는 국민연금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채택하고 (민간 기업의) 경영관여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하자 역기능에 대한 우려와 순기능에 대한 기대가 충돌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고 운을 뗐다.

황 박사는 “영국이 최초로 이 제도를 도입한 배경은 기관투자자가 행동주의를 통해 상장회사의 부재지주 경영 및 단기주의 경영행태를 시정하기 위함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단기주의 주범이기도 한 기관투자가에게 집사의 지위를 부여한다고 무엇이 달라질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곁들였다. 그러면서 그는 “단기 매매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산업적 특성과 기관투자자 내부의 자산운용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제도 효과가 없거나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황 박사는 스튜어드십코드와 관련해 널리 알려진 ‘집사론’에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주체인 기관투자자를 고객의 집사로 볼인지 아니면 대리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황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주주-경영자 관계에서처럼 ‘고객-기관투자자 관계’는 잠재적 이해 상충 문제가 있는 ‘주인-대리인 관계’로 보는 것이 정상이다. 신탁법 등이 기관투자자에게 수탁자 책임을 지운 것도 이 때문이다.

집사 이론과 대리인 이론 중 어느 쪽이 더 현실에 적합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후자(後者)가 통설이다. 집사 이론은 비영리기관이나 종교단체 또는 소규모 가족회사에 적용 가능한 주변부 이론.”

그는 “기회만 있으면 이익 실현을 위해 민활하게 움직이며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접근하기 힘든 각종 금융기법을 동원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가에게, ‘아무런 제도적 보완 조치 없이’ 집사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순진하거나 이상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황 박사는 경영참여영 주주권 행사 결과 회사 가치가 떨어지거나 일반 주주가 피해를 입을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비판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황 박사의 견해.

“기업의 이사는 업무집행지시자로서 법적 책임이 있지만 기관투자자는 스튜어드십코드가 정한 대로 행동했다고 면죄부를 줘야 하는가?

경영 관여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스튜어드십코드는 기회추구와 자기 이익 실현에 재빠른 기관투자자에 의해 오·남용될 우려가 높다.”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지배구조 상 문제점도 조속히 개선해야 할 현안으로 지목됐다.

황 박사는 “국민연금이 자체의 지배구조 문제는 방치한 채 ‘국민의 집사’라는 완장을 차고 상장기업 경영에 관여한다면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이라며, 연기금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가 기금을 사실상 직접 운용하고 통제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연기금의 ‘정치적 독립’이 민간개입에 대한 경영관여보다 먼저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황 박사는 지난달 국민연금이 작성한 ‘수탁자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의 문제점도 언급했다.

무엇보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당해 기업 지배구조의 건전성 등 비재무적 요소를 스튜어드십코드 발동 요건으로 삼은 사실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달 16일 국민연금 수택자책임전문위원회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기업의 ESG 평가 등급을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의 요건 중 하나로 명시했다.

ESG는 국내 의결권자문사인 한국지배구조원이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평가 중 하나다. 환경 경영(E), 사회적책임(S), 지배구조(G)를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해 A~D까지 등급을 매긴다.

문제는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요건으로 ESG를 포함시킨 것이 적절한지 여부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ESG는 상당 부분 비재무적 지표를 기준으로 한다.

기업의 환경책임, 사회적책임, 지배구조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이들 비재무적 요소를 스튜어드십코드 발동 여건으로 삼는다면 정부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하기 위해 제도를 악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황인학 박사는 ESG 평가 등급과 관련해 이런 견해를 내놨다.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국민연금기금은 ESG의 비재무적 요소에까지 적극 관여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연기금 행동주의가 회사 가치, 연금 수익성, 국민경제적 파급효과 면에서 순기능(득)보다 역기능(실)이 많을 가능성은 한층 더 높다.

ESG는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판단해야 할 사안이며, 국민연금기금이 ESG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당해 기업의 가치는 물론이고 연기금 수익성과 안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황 박사는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고, 제도의 순기능을 살리려면 “국민연금 자체의 지배구조부터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안으로 스위스 연기금협회가 자율 제정한 스튜어드십코드를 예로 들면서 “그 어떤 정치적 개입 및 제3자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학 박사는 국민연금의 고배당 요구 관행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폈다.

“‘주식의 장기 보유에 기초해 회사의 중장기 가치를 지향한다’는 스튜어드십 책임론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

전삼현 “국민연금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헌법 위반 소지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사진=시장경제DB

전삼현 교수는 국민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둘러싼 쟁점을 4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정부 의지와 상반된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국민연금 민간기업 경영참여의 정당성 여부.

두 번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가 경영참여형 의결권 행사에 부정적인 잠정결정을 내린 직후, 대통령이 경영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듯한 발언을 한 이유(국가기관의 민간기업 경영통제).

세 번째 국민연금 경영참여의 실제 영향력.

네 번째 현행 이사가 형사소송의 피의자가 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으면 현행법상 피선임권을 상실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국민연금이 추진하는 한진칼 정관변경 내용의 적절성). 

전 교수는 “국민연금의 역할은 국민 노후를 위한 마중물이 되는 것”이라며, 수익성 재고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국민연금이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문제 삼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전 교수도 정치에 종속된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부 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제도 개혁을 주문했다. 덧붙여 그는 “국민연금기금이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투자 관련 법 위반 사실이 있어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가 불명확해진다”고 했다.

전 교수는 국민연금 독립성 확보를 위한 대안으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기금운용업무를 민간에 위탁하고, 그 성과를 정책감사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기금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 공사화하거나 민영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민연금의 경영참여가 헌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연금이 대통령의 적극적 경영참여 발언 직후 태도를 바꾼 건 위법성 판단에 앞서 위헌성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한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는 구체적으로 과잉금지원칙을 규정한 우리 헌법 제37조 2항, 국가의 민간기업의 통제를 금지한 같은 법 제126조에 반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전삼현 교수는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요구하기로 한 정관변경의 내용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다음은 이에 대한 전 교수의 견해.

“정관에 형사범에 대한 이사자격제한을 두는 순간 대주주가 이사가 되는 것을 회피하는 사태를 촉발시킬 수 있다. 이는 대주주 책임경영 정책 기조와 모순된다. 적극적인 신규 투자 및 신사업 추진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박진식 변호사 “문형표 전 장관 직권남용 유죄라면, 박능후 장관도 마찬가지” 

박진식 변호사. 사진=시장경제DB

박진식 변호사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를 적극 지지한 한겨레 기사를 인용하면서,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찬성하는 이들은 법리적 사실적 논거를 제시하기보다 ‘오너의 갑질 등 일탈행위→기업가치 훼손→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라는 비약적 논리를 취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오너 갑질 등의 일탈행위(문재인 대통령은 탈법행위로 지칭)가 국민연금이 당해 기업의 경영에 참여할 근거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의 태생적 한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적 연기금은 그 뒤에 인사 예산권을 쥔 정부가 있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중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정책 목표(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를 강제하는 또 다른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박 변호사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항소심 판결문을 근거로, 박능후 복지부장관의 행태를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결의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유도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1, 2심 모두 문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박 변호사는 문 전 장관 사건의 진행 결과를 소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가 수탁자책임전문위의 의결을 뒤집고, 단순 찬반 결의도 아닌 적극적 주주권 행사(주주제안)를 의결한 것은 문형표 전 장관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문형표 전 장관 사건을 심리한 법원의 판단이 옳다면, 박능후 장관도 직권남용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박 변호사 주장의 요지다.

[편집자 주]

앞서 올해 1월 초 국민연금 기금위 민간위원 중 한명인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안건을 전체회의에 상정할 것을 요청했다.

같은 달 16일, 기금운용위원회는 이 안건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넘기고, 행사 여부와 범위, 방법 등에 대한 논의를 지시했다.

같은 달 23일, 수탁자책임전문위 산하 주주권행사위원회는 논의결과 해당 안건을 부결됐다. 당시 회의 결과 대한항공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안건은 분과위원 9명 중 반대 7명, 찬성 2명으로 부결됐다. 한진칼에 대해서는 반대 5명, 찬성 4명으로 과반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다. 기금운용위는 이같은 결과를 보고받은 직후 관련 내용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에 배포했다.

당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에 참석해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1일 2차 전체회의를 열고,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결정했다

박 변호사의 ‘박능후 장관 직권남용’ 주장은, 대통령 발언 이후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위의 결정을 뒤집고 입장을 바꾼 행태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 변호사는 “박능후 장관의 행위는 현재 법원의 기준 상 직권남용에 해당할 여지가 너무나 커 보인다”며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받은 박능후 장관은 의결권행사 기준과 무관한 사유(대기업 대주주 탈법행위)를 앞세워, 위원들의 독립적 판단을 무시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검찰이 한진그룹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구속영장 청구를 반복한 행태까지 고려한다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선의로 읽히지만은 않는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그는 “국내 상장기업 특히 대기업의 경우 ‘오너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전지현 변호사 “나라마다 제도 도입 목적 달라...국민연금, 전문성 독립성 확보해야” 

전지현 변호사. 사진=시장경제DB

전지현 변호사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정부가 시장에 관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 변호사는 “땅콩 갑질 등을 대표적인 예로 기재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연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요건으로 삼은 것은 잘못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 변호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가 기금운용본부와 위원회를 사실상 통제하는 현재 사정을 고려한다면 스튜어드십코드가 있건 없건 정부가 하자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 기금 운용 역시 정부정책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스튜어드십코드 정당성 여부에 대한 논의를 떠나 정부에 종속돼 있는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

전 변호사는 “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제도는 개선의 필요성이 있지만 강행규정으로 일률 규제하는 것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방법론에 있다는 것.

전 변호사가 꼽은 선결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달 공개된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컨트러버셜 이슈와 ESG등급을 스튜어드십코드 발동 요건으로 삼은 것은 정권 입맛에 따라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면피성 도구로 악용될 소지는 없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전 변호사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둘러싼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국민연금기금의 의사결정이 독립성과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제도 보완을 당부했다.

그는 “한국이 이 제도를 도입한 배경을 살펴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전문적인 역량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