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론만 돼도 낙인"... 국민연금에 떠는 '오너리스크' 기업들 -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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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론만 돼도 낙인"... 국민연금에 떠는 '오너리스크' 기업들국민연금 5% 이상 10% 미만 지분 보유기업 215곳
오너 갑질, 환경 문제...배당 이슈 못지않게 부각
“시장이 판단할 사안을 연기금이 나서 단죄”, 부작용 우려 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을 비난하는 시위대 모습. 사진=시장경제DB

재계와 금융권 전반에 걸쳐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 대부분이 스튜어드십코드(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지침)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3월 주총을 앞둔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 및 주식 정보 전문기관 애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293곳이다.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확보한 기업은 78곳이며, 5% 이상 10% 미만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215곳에 이른다.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보유지분 비율은 10.01%로 자본시장법 상 ‘10%룰’의 적용을 받는다. 현대글로비스(10.19), 삼성증권(10.09) 현대건설(10.58) 포스코(10.72) 삼성SDI(11.85) 호텔신라(11.28) KT(12.19) CJ제일제당(12.48) GS건설(12.66) 한화에어로스페이스(12.92) LG상사(13.00) SKC(13.48) 신세계(13.49) 등도 10%룰 적용 대상이다.

반면 이마트 미래에셋(이상 9.99) 롯데칠성 LG유플러스(이상 9.95) CJ CGV(9.93) 한미약품(9.90) 등은 한진칼과 같이 스튜어드십코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금융지주(9.68) SK이노베이션(9.66) KB금융(9.50) 신한지주(9.38) 현대자동차(8.27) CJ대한통운(8.17) 삼성화재(8.10) 효성화학(7.61) 두산(7.50) 삼성생명(6.11) 남양유업(6.03) 삼성물산(5.96) 카카오(5.81) 셀트리온(5.04) 넷마블 롯데쇼핑 CJ E&M(이상 5.00) 등의 기업도 보유지분 비율만 놓고 본다면,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 보유지분이 5% 이상인 293개 기업의 결산 법인은 모두 12월이다. 주요기업 주주총회가 매년 3월 몰려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해도 주총 통과 가능성 낮아 

국민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지 않다.

국민연금이 10%룰을 의식해 5% 이상 10% 미만 지분을 보유한 기업으로 행사 대상 기업을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기업 오너와 특수관계인, 이들의 우호지분을 합쳐 과반이 넘는 기업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그 주주제안이 주총을 통과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진칼에 이어 두 번째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으로 지목된 남양유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오너 보유 지분이 51%에 달해 국민연금이 주주제안권을 행사해도 그 안건이 주총에서 받아들여질 확률은 극히 낮다.

오너와 우호세력을 합한 보유지분이 과반에 미치지 않더라도 정관변경 등의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사안이기 때문에, 경영진은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만 확보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스튜어드십코드가 재계와 금융권을 불안케 만드는 이유는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스튜어드십코드 ‘낙인효과’에 떠는 기업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발동을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당 기업의 주식은 시장에서 크게 요동친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해 기업의 이미지와 신뢰도는 크게 하락할 수 있다.

해당 기업이 만약 일시적 자금난을 겪거나 차입금 상환을 앞두고 있거나 채권 발행을 준비 중이거나 신규 전략 상품 출시를 목전에 앞두고 있다면 그 영향은 더 극적일 수 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갖는 ‘낙인효과’를 고려한다면, 국민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는 기업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국민연금도 이런 사정을 의식해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요건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지난달 16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스튜어드십코드 발동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본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요건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이라고 이름 붙은 이 문건은 스튜어드십코드 발동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투자대상 기업 관련 중점관리사안 및 예상하지 못한 우려에 대한 수탁자 책임 활동을 통하여 주주가치 제고 및 기금의 장기적인 수익성을 제고한다.’

위 목적은 주주가치와 기금의 장기수익성이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 조건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크게 ‘중점관리사안’과 ‘예상하지 못한 우려’의 두 가지 항목으로 구분된다.

◆4가지 요건...배당-임원보수-횡령·배임-개선 여지

‘중점관리사안’의 기본 대상은 지분율 5% 이상 또는 보유 비중 1% 이상 투자기업이며 선정 기준은 아래와 같다.

①국민연금이 과거 배당 관련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기업, 배당성향 하위 기업, 지분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 중 합리적 배당정책을 수립·공개하지 않거나 정책이 있는 경우에도 그에 따라 배당을 실시하지 않은 기업.

이 경우 국민연금은 배당정책의 투명성과 구체성 일관성을 검토해 대상 기업을 선정한다. 합리적 배당정책 여부는 국민연금이 작성한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판단한다. 

위 요건은 충분한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배당에 인색한 기업들이 ‘우선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②임원보수한도가 과다한 기업, 보수한도가 경영성과와 관계없는 기업, 최근 주총에서 임원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반대한 기업 중 보수한도 대비 실지급액 비율을 고려해 대상 기업 선정.

③검경의 수사 등 공신력 있는 국기기관을 통해 임직원 횡령·배임, 부당지원, 경영진 사익편취 등의 우려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기업가치 훼손, 주주권익 침해 위험이 있는 기업.

④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없는 기업.

구체적으로 최근 5년 이내 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이 같은 이유로 2회 이상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기업 중 반대의결권 행사 횟수, 안건의 중요도, 개선 여지, 지분 보유 비중 등을 고려해 대상 기업 선정.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고 해서 바로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1단계(기업과의 비공개 대화) 2단계(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절차를 경유해 ‘공개 중점관리기업’을 선별한다.

중점관리기업 선정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공개기업으로의 전환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판단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당해 기업의 개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공개 중점관리 기업’ 가운데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을 최종 결정한다.

◆오너 갑질에 심각한 제품 하자까지...스튜어드십코드 요건 확대 
 

‘예상하지 못한 우려’는 이른바 ‘오너 갑질’과 직결된다.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는 사건 혹은 쟁점을 뜻하는 ‘컨트러버셜 이슈’(controversial Issues), 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의 건전성 지표인 ESG 평가 등급을 기준으로 대상 기업을 선정한다.

‘컨트러버셜 이슈’를 기준의 하나로 삼았다는 것은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큰 오너 갑질이나 사내 성폭력 사건 등을 주주가치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적극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제품 하자로 인한 소비자 피해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라돈 침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국민 생활에 직접적 피해를 주는 중대한 제품 하자가 발생하는 경우, 해당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ESG 평가 역시 기업이 주의해야 할 항목이다. 기업의 환경경영(E), 사회적 책임(S), 지배구조(G) 건전성을 평가하는 이 지표는 2011년부터 시행 중이다. 평가 주체는 의결권자문사인 한국지배구조원이며, 평가등급은 A부터 D까지 4단계로 나뉜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에 해당하는 기업에도 자발적 개선 기회를 부여한다. 국민연금은 1단계(비공개 대화)를 거쳐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 공개서한을 발송한다.

◆주주대표소송, 법무법인 외부자문 거쳐 실행 여부 결정
 

스튜어드십코드 가운데 가장 강력한 수단인 주주대표소송, 손해배상소송은 법무법인의 외부자문을 거쳐 제소요건, 승소가능성, 소송 실익, 위반행위의 정도, 손해액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한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회사의 투자 자산과 관련해 법령 및 규정을 위반하고, 그 결과 기금에 손해를 끼친 법인 또는 임직원이 대상이다.

◆국민연금,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방점 

이들 요건을 기준으로 대상 기업을 예측하면, △국민연금 보유지분이 5% 이상 10% 미만에 해당하는 기업 △배당성향이 지나치게 인색하고 과거부터 문제를 지적받았음에도 개선이 미흡한 기업 △오너 갑질로 물의를 빚었거나 임직원의 사내 성폭력 등이 문제가 된 기업 △심각한 제품 하자로 환경 문제를 일으킨 기업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민간 기업 길들이기용으로 제도 악용” 비판 나와

국민연금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스튜어드십코드 발동 요건을 엄격히 정해놨지만, 정부가 연기금을 앞세워 민간 기업의 경영에 개입한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된 배당성향이나 컨트러버설 이슈는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이전 시장이 먼저 판단할 사안이다. 이들 이슈가 불거진다면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시장의 냉정한 반응은 곧 경영진에 대한 문책이나 다름이 없다. 제도의 실효성과 관련해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가 스튜어드십코드를 민간 기업에 대한 길들이기용으로 악용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양원석 기자  wonseok@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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