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오너一家’ 운명 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행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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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오너一家’ 운명 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행사할까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1.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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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위 산하 수탁위, 29일 예정에 없던 비공개회의
조양호 회장 대표이사 재선임 반대...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여부는 미정
스튜어드십 코드..“정부가 연기금 앞세워 기업 경영에 개입” 우려도
사진=시장경제DB

대표적인 국내 기관투자자로 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대주주 지위를 보유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행보가 심상찮다.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에 관한 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9일 오후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회의 안건은 비공개로 알려줄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일각의 추론처럼 이날 회의에서 스튜어드십 코드(투자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경영참여 지침) 관련 사안은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와 국민연금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회의의 주요 안건은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관련 논의가 아니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연임 반대 의결권 행사다. 3월 열리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는 임기가 끝나는 조양호 대표이사에 대한 재선임 안건이 상정될 가능성이 높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수탁위 한 위원은 “조 회장의 재선임 안건이 주총에 상정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먼저 회사와 대화를 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번 회의는 그 결과를 듣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비공개회의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논의가 추가로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위 관계자도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와 관련해 기금운용위가 수탁위에 검토를 요구한 사항을 살피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에게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지침이다.

구체적으로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투자기업의 임원 선임·해임·직무 정지, 정관 변경, 자본금의 변경, 회사의 합병·분할·기업 인수,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하는 신규 사업 추진 등 당해 기업의 핵심 경영 현안에 대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직접 언급하면서 화제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 전략회의’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투자 기업의 경영에 적극 참여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대기업과 대주주의 중대한 위법·탈법 행위에 대해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밝혀,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연기금의 적극적인 기업 경영 참여를 독려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속칭 진보를 표방하는 집권 여당의 뿌리 깊은 반기업 정서가 반영된 ‘준비된 실언’이란 관측에서부터, ‘대통령이 연기금을 동원해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 한다’는 날 선 비판도 나왔다.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는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범위와 방식 등에 대해서는 수탁위의 논의를 거쳐 기금운용위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직접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강조한 이상, 당사자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의 자율성 훼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29일 비공개회의가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 반대 방침을 재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여부를 재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조양호 회장 이사 연임 반대 방침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즉 스튜어드십 코드와는 관련이 없다. 국민연금은 과거에도 지나친 연임이라는 이유로 조 회장의 대표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진 사례가 있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및 한진칼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결정한다면, 국내 경제에 미칠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대주주로 등재돼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기업과 금융기관은 주요 경영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연금 뒤에 있는 정부의 눈치부터 살필 수밖에 없다.

앞서 지난 16일 국민연금 기금위는 수탁위에 대한항공 및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여부 검토를 지시했다. 기금위는 주주가치 훼손의 정의, 주주가치 상승 및 하락의 측정 방법, 주주가치의 시기적 변동 가능성 등을 깊이 있게 논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수탁위는 23일 첫 회의를 열고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의 범위와 방식을 논의했다. 이와 별개로 수탁위는 조양호 회장의 대표이사 재선임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에서 과반 이상의 위원은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한진칼의 경우는 수탁위 위원 9명 중 5명이 반대 의견을 냈고,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7명에 달했다. 수탁위 위원들은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하면 당장 국민연금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 공시해야 한다. 이 경우 주식을 매수한 뒤 6개월 안에 되팔아 챙긴 ‘단기차익’을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 이 경우 국민연금이 반환해야 하는 단기차익은 수 백억원 대에 이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현행 법령상 국민연금에만 단기차익 반환 예외의 특혜를 인정할 수도 없다.

기금위는 다음 달 1일, 수탁위 회의 결과를 보고 받은 뒤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여부, 범위와 방식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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