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해석의 오류가 부른 증선위 '삼바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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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해석의 오류가 부른 증선위 '삼바 무리수'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8.11.2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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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통상적인 분식회계 사건과 '사실관계' 달라
“회계기준 해석의 차이” vs ”회계기준 고의로 위반”
대우조선해양, 대한전선 분식회계 사건... 증선위 패소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증권선물위원회가 20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의혹' 사건의 실체 규명은 법정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사진=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고발한 혐의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 위반이다. 앞서 지난 7월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공시의무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맡고 있다.

이번 고발 건은 금융·증권 범죄 전담 수사청인 서울남부지검에 배당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사안이 중대하고 동일한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를 이미 파악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중앙지검 특수2부에 추가 배당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사건을 둘러싼 법정공방은 형사 공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증선위 의결 직후 행정소송 방침을 분명하게 밝혔다. 형사 공판 못지 않게 행정소송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증선위 처분의 당부 판단은 실제로 행정소송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분식회계 사건에서 형사 공판 절차의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회사의 대주주나 임원이 분식회계를 지시했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인회계사나 감정인 또는 신용평가를 하는 자가 분식회계에 동조했는지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외부감사법을, 후자의 경우는 자본시장법과 공인회계사법을 각각 적용한다.

당해 기업의 경우,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해도 대주주 혹은 임원의 책임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반면 외부감사인 혹은 감사법인의 책임은 더 가중되는 측면이 있다. 분식회계를 알고 동조한 경우는 물론이고, 회사가 기준에 반하는 회계처리를 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하거나, 회사가 자료의 제출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인으로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경우에도 처벌을 받는다.

형사 절차가 분식회계 가담자들을 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행정소송의 본질은 행정청 처분의 위법성을 다투는 데 있다.

◆행정소송, 재판부 '직권' 폭넓게 인정

이 사건 행정소송은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의 형식을 띨 것으로 보인다. 
증선위는 14일 의결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년 회계처리를 고의 분식회계로 판단하면서, 삼성바이오에 대해서는 대표이사 해임을 권고하고 8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행정소송은 행정청 처분의 당부를 다투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일반적인 민·상사 사건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일반 민사소송보다 재판부의 '직권'이 더 폭넓게 인정되며, 특히 피고(행정청)의 승소율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민사나 가사 사건의 원·피고 별 승소율은 대개 50:50으로 수렴된다. 다시 말해 당사자 지위에 따른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행정소송은 유독 원고 패소 비중이 매우 높다.

행정소송에서 원고의 승소율은 30%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소송 경험이 풍부한 A변호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행정청이 처분을 내릴 때는 법률과 규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충분한 심리를 거치고 당사자의 입장을 들은 것으로 일응 판단한다. 이런 절차의 공신력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행정청 처분이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는 변수가 몇 가지 있다.

◆대한전선 분식회계, 대우조선 분식회계... 행정소송서 증선위 패소 

첫 번째 변수는 분식회계 관련 금융위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만큼은 다른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대한전선 분식회계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증선위는 대한전선과 이 회사 대표 및 담당 임원, 회계법인과 소속 회계사 등을 검찰에 고발하고, 대한전선에 대해서는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별도로 당해 회사에 대한 감사 제한, 소속 회계사 직무정지 등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 형사 1심 재판부는 대한전선에 벌금 3천만원,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담당인원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내렸다. 항소심은 1심을 파기하면서 대한전선과 대표이사, 담당 임원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죄 선고의 이유로 “구체적인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회계법인이 증선위를 상대로 낸 제재 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1심 재판부는 증선위 처분의 취소를 명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제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올해 3월27일, 안진회계법인과 소속 회계사들이 증선위를 상대로 낸 감리 관련 제재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대한전선 재무제표 감사와 관련 “2011년의 경우 감사인이 주의의무를 게을리하거나 잘못 판단한 사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2012년 감사에 대해서는 부실 매출채권에 대한 손상처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이 부족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행정처분의 기초가 된 사실 오인으로 재량권을 일탈한 위법이 있다”며, “증선위 처분 전부를 취소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관련, 안진회계법인이 증선위를 상대로 낸 업무정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법원은 회계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달 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박성규 부장판사)는, 안진회계법인이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증선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했다는 이유로, 증선위로부터 1년 간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재판부는 회계법인의 '과실'은 인정하면서도, “분식회계를 조직적으로 묵인하거나 동조했다”는 증선위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 ”분식회계 아닌 회계기준 해석의 차이”  

이번 사건의 경우, 일반적인 분식회계 사건과는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점도 변수다.

대부분의 분식회계는 매출이나 자산, 영업이익을 허위로 늘리거나 부채를 적게 올리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공의 재무제표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거나 사채 발행, 사업자 선정, 공사 수주 등을 위한 기초자료로 사용된다.

가공의 재무제표를 만들기 위해 회사는 회계법인과 공모하거나, 회계법인에 허위의 자료를 제출하는 방법을 쓴다.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는 증선위 의결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가, 오히려 삼성바이오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삼성바이오가 매출을 부풀리거나 영업손익을 허위로 조작하는 등의 위법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금감원 감리 절차를 통해 확인됐다.

대우조선 사례와 가장 다른 점은, 실사를 받는 삼성바이오가 회계법인에 먼저 자문을 구한 뒤 회계를 변경했다는 사실이다.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이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먼저 회계법인에 자문을 구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다.

취재 중 만난 회계사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증선위 결정에 의문을 나타냈다.

“통상적인 분식회계라면 재무제표를 고쳐서 이익을 봐야 하는데, (삼성바이오가) 회계를 변경해서 이익을 본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기업가치 평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우조선과는 성격이 다른 것 같다.”

또 다른 회계사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국제회계기준 상 해석의 차이”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분식회계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에피스를 관계사로 볼 것인지 종속회사로 볼 것인지는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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