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보복지시 파문②] 하청업체 '생사여탈권' 쥔 구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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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보복지시 파문②] 하청업체 '생사여탈권' 쥔 구매본부장
  • 양원석, 정규호 기자
  • 승인 2018.09.1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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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협력사 간 계약관계, 조건 변경 등 전권 행사
시민단체 "원청-하청 협의회 있지만 유명무실, 형식상 존재"
"불공정 구태 근절하려면 해편 수준의 공정위 물갈이 불가피”
▲2017년 열린 R&D 협력사 테크 페스티벌의 한 장면.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현대·기아자동차 제공

“대기업 구매부장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입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대표가 사석에서 지인에게 건넨 말이다. 이 말을 전한 이는 “대기업 갑질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이런 말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현대차 고위 임원이 협력업체에 대한 '보복'을 지시한 정황이 담긴 공정위 내부 문건이 <시장경제> 단독 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보복지시 당사자인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위상과 역할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앞서 <시장경제>는 5, 6일 이틀에 걸쳐 관련 보도를 잇따라 내보냈다.

본지는 현대차 1차 협력업체 A사 OO팀 부장 B씨가 소속 회사 임직원들에게 보낸 2010년도 작성 이메일을 입수한 뒤 추가 취재를 통해, 현대차가 협력업체를 상대로 보복행위를 한 정황을 확인하고 이를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본지는 공정위 전 조사관, 현대차 전현직 협력업체 대표 및 임직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의 진술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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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2010년 당시 현대차 협력업체들은 납품대금 및 권한 남용 등의 문제와 관련돼 공정위에 '투서'를 했고, 공정위는 현대차 협력업체에 대한 현장 실태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현대차 구매본부장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받게 된다면, 책임이 있는 2·3차 협력사에 지급할 대금에서 그 금액 만큼을 공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B에게 내렸다. B는 소속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지시'임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공정위 실태조사 계획 '사전 유출' 의혹도

'책임이 있는 협력업체에 대한 금액 공제'와 같이 구매본부장의 지시는 구체적이었다. B가 작성한 이메일은 공정위와 현대차 사이 '커넥션' 의혹도 던지고 있다. 당시 구매본부장은 A사에 대한 공정위의 실태조사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 '긴급성'이 생명인 하도급 현장 실태조사 계획이, 이해당사자에게 사전 유출됐다는 의심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런 내용이 기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대기업 갑질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보복지시 파문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일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기업 재취업 특혜 의혹으로 이미 구설에 휘말린 공정위도, 이번 사건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하도급업체에 대한 실태조사 정보가 심사 대상 기업에 유출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적극적으로 사안을 해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보복지시한 구매본부장은 어떤 자리?

이번 사건은 협력업체에 대한 대기업 구매본부장의 보복지시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구매본부장은 취재 결과 이미 고인이 돼 있었다. <시장경제>는 고인을 대신해 당시 결재 선상에 있던 임직원들에 대한 취재를 회사 측에 요청했으나 답변을 얻지 못했다.

본지는 현대차 협력업체와 업계 관계자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현대차 구매본부장이란 자리가 갖는 권한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구매본부장은 통상 전무~부사장급이 임명된다.

현대기아차(본사)와 베이징 현대기아차로 체계가 나뉜 현재와 보복지시 이메일이 작성된 시점인 2010년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부품 개발 및 구매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고위 임원이 구매본부장을 맡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다. 통상 구매본부장 아래에는 다수의 '구매부장'이 배치돼 실무업무를 수행한다.

중요한 것은 구매본부장이 가진 권한이다. 협력업체 입장에서 본다면 이 자리는 현대차 내부의 그 어떤 임원보다 영향력이 높다.

현대차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공정위 전 조사관 C씨는 구매본부장을 “협력업체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적 존재”라고 표현했다.

협력업체의 지정, 퇴출, 계약조건 변경 등 모든 것이 전적으로 구매본부장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어느 업체에 특혜를 줄 것인지, 어느 업체에 패널티를 줄 것인지도 구매본부장의 재량 사항이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구매본부장은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힌다. 협력업체 관리 뿐만 아니라 계열사들과 주요 현안을 조율하고, 그룹의 핵심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핵심 보직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전문성은 물론이고 업계 전반의 동향 정보, 기술 개발 흐름에도 밝아야 한다. 정의선 부회장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동시에 그룹 전체의 컨트롤타워와 같은 역할도 맡아야 하는 자리로, 오너 일가의 확실한 신임을 받은 인사만이 오를 수 있다. 

◆”1차 벤더 협의회, 협력업체 지시·하달 창구로 변질”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현대차도 협력업체와의 '상생' 모색을 위해 협의기구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협력업체 대표로 구성된 협의회가 실질적인 협상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기업 갑질 피해를 고발한 시민단체 '공정거래회복 국민운동본부'(이하 공정본부) 관계자는 “1차 벤더 협의회가 있지만 형식상으로만 존재한다. 대부분 본사가 협력사에 무언가를 지시·하달하는 창구로 기능할 뿐, 협상 이런 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 해편이 정답, 기업과의 유착관계 끊으려면 불가피”

공정본부 이선근 대표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의 불공정 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제 역할 찾기'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정위의 '해편'을 요구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이선근 대표의 설명.

'공정위와 기업 간 오랫동안 지속돼 온 유착의 뿌리가 너무 깊다. 이를 해소하려면 해편 수준의 인적 물갈이가 불가피하다.”

현대차 보복지시 파문과 관련해서도 이선근 대표는 “공정위가 외면해 버리니 그런 상황이 나타나도 해결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한다고 했지만 여기서 빠진 부분이 하도급 관련 사안”이라며, “하도급 부분에 대해서도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서 검찰과 경찰이 함께 위법행위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대차 협력업체 전 대표 “하청업체를 부품만 만드는 노비처럼 인식”

6일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실 주최로 열린,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모색 공청회’에서는 협력업체에 대한 현대차의 갑질 행위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손정우 '한국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피해자 협의회' 대표는 현대차 2차 협력업체 대표를 지냈다.

손 대표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직 서열 방식’(JIS: Just In Sequence)이 안고 있는 모순이며, 다른 하나는 협력업체를 원가 절감을 위한 도구 내지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비뚤어진 인식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직 서열 방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주문 후 생산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미리 제품을 생산해 재고를 쌓아 놓지 않고, 그때 그때 고객이 주문을 하면 생산에 들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재고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반면 협력사는 죽을 맛이다. 원청이 언제 부품 주문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불안에 떨어야 한다.

만약 원청이 내린 주문을 '제때' 납품하지 못하면 협력사는 그에 따른 패널티도 부담해야 한다. 다음은 손 대표의 발언.

“사출기 고장, 금형 사고, 제품 불량, 원재료 및 부자재 불량, 기상 악화 등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발생하면 과도한 패널티를 떠안는다.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오더를 위해 우리는 1~2일 이상의 안전재고를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손 대표는 “이 방식은 현대차가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손 대표는 “현대차는 하청업체를 오로지 생산만 하는 현대판 노비로 여긴다”며, 현대차의 부품 공급 정책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현대차는 원가 절감을 위해 하나의 부품을 한 곳의 업체에만 맡긴다. 하청업체를 부품 생산만 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회사가 제시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하청업체들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다음에 올려줄게’, ‘다음에 올려줄게’라며 계속 단가를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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