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보복지시 파문①] 현행법 비웃듯... 하청사에 재갈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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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보복지시 파문①] 현행법 비웃듯... 하청사에 재갈 물렸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8.09.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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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단독보도, 보복행위 정황 구체적으로 드러나
하도급법 위반, '징벌적 손해배상'에도 해당... 죄질 무거워
현대차 구매본부장이 공정위 '현장조사 정보' 미리 파악
2010년 6월 경기 화성 롤링힐스 호텔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제2차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 선포식. 현대차그룹 계열사 대표와 협력사 대표가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가 현행법을 정면으로 위반해 협력사에 '보복조치'를 취한 정황이 본지 단독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시장경제>는 현대차 전 구매본부장이 1차 협력사 A에게 2·3차 협력업체에 대한 보복을 지시한 사실을 보여주는 문건을 입수, 지난 5일 <[단독] "투서하면 하도급비 삭감"... 현대차, 하청사에 보복지시 파문>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시장경제>가 입수해 보도한 공정위 내부 문건은 '공정거래위원회 A사 방문 관련'이라는 이메일 출력본이다. 이메일의 작성 시기는 2010년 4월15일 오전. 발신인은 현대차 1차 협력업체 A사의 OO팀 B부장이며, 수신인은 A사 임직원들이다.

B는 이메일을 통해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 공정위 조사를 받기 위해 현대차 (측이) 1차 협력사 중 규모가 큰 업체를 추천한 결과 A사가 포함된 사실, 조만간 공정위가 A사에 대한 현지 실사에 나설 것이란 사실 등을 직원들에게 알렸다.

이어 B는, 현대차 2·3차 협력사가 납품대금 및 권위 남용 등과 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의 투서를 공정위에 많이 보냈고 공정위가 실태조사 차원에서 협력업체를 방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지시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다음은 B가 작성한 이메일 중 일부.

“상기 관련 과징금이 부여될 경우 책임과 연계된 (2·3차) 협력사는 해당 금액 만큼을 (납품 대금에서) 공제하라는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지시가 있었다.”

이메일에 따르면, 현대차 구매본부장은 1차 협력업체에게 '공정위에 투서를 한' 2·3차 협력업체에 대한 보복조치를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현대차는 공정위가 협력사 현장 실태조사를 위해 A사를 방문한다는 정보도 미리 알고 있었다.

본지는 이들 내용에 대한 회사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현대차에 질의를 했으나, 열흘이 넘도록 답변을 받지 못했다.

위 이메일의 내용이 사실과 부합한다면 현대차 구매본부장이 하위 협력업체에 대한 '보복'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현대차가 공정위 현장 실사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이를 해당 협력업체 간부에게 알려주며 대비토록 당부한 정황도 마찬가지다.

공정위로부터 부과 받는 과징금 상당액을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정산대금에서 공제하라는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지시는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수급사업자(하청)가 원사업자(원청)의 법률 위반 사실을 관계기관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원사업자가 당해 수급사업자의 수주기회를 제한하거나 거래를 정지하거나 기타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19조 1호). 이 조항을 위반한 경우 하도급법이 정한 벌칙은 3억원 이하의 벌금이다(30조 2항 1호).

제19조(보복조치의 금지)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 또는 조합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것을 이유로, 그 수급사업자에 대하여 수주기회를 제한하거나 거래의 정지, 그 밖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원사업자가 이 법을 위반하였음을 관계 기관 등에 신고한 행위
 
-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만약 보복조치가 실제로 이뤄졌고 이로 인해 2·3차 협력업체가 하도급대금을 삭감당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면 현대차와 구매본부장은 형사 처벌과 별도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하도급법은 원청이 하청을 상대로 보복조치를 행한 경우 피해금액의 최대 3배에 해당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다(35조 2항). 법률이 원청사업자의 보복행위를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행위의 죄질이 무겁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도급법상 '보복행위 금지'의 법정형은 최대 3억원, 해당 조항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형사소송법 249조 1항 5호). 위 행위가 있었던 시기는 2010년이므로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공소시효 만료가 '갑질'에 대한 면죄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행법 위반 여부를 떠나 약자인 협력업체를 상대로 상식 밖의 보복행위까지 지시한 행태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실태조사 정보를 현대차 전 구매본부장이 사전에 파악한 정황도 진상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공정위 전 조사관 C씨는 이에 대해 “사전에 조사 비밀이 샌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청업체에 대한 현장 조사는 갑작스럽고 긴급하게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C씨는 '사전에 정보가 새는 경우가 자주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끔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보는 주로 위에서 간부들 사이에서 샌다. 현장 조사를 나갔는데 (정보가 유출돼) 깨끗하게 비워 놓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은 “공정위의 실태조사 사전 정보유출 의혹은 조사 당국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공직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의 부패로 연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국정감사를 통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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