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항소심, 이재용 1심과 닮은꼴... "증거재판주의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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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항소심, 이재용 1심과 닮은꼴... "증거재판주의 훼손"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8.08.2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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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우호적' 업무처리가 유죄 판단 주요 근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2월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353일 만에 걸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시장경제DB

24일 오전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혐의 사건 항소심 주요 판시사항이, 이재용 부회장 사건 1심 판결과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두 사건 핵심 쟁점에 대한 재판부 판단의 적절성이 다시 논란을 빚고 있다.

이날 판결은 사건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나 법리 구성이, 지난해 8월 선고된 이 부회장 1심 재판부의 그것과 흡사하다. 반면 박 전 대통령 1심, 비선실세 최순실씨 사건 1심,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과는 크게 다르다.

이재용 부회장 1심은 형사 재판의 대원칙인 '증거재판주의'에 반해, 재판부의 심증과 자의적 판단이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가 비슷한 태도를 취하면서 같은 비판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가 삼성 승계작업의 존재,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 청탁의 인정 여부 등 이 사건 핵심 쟁점을 두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리면서,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 부회장 상고심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러나 24일 판결의 기본 틀이 이 부회장 1심과 거의 비슷하고, 특기할만한 새로운 논거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이 이 부회장 상고심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이재용 부회장 상고심에 영향 미칠 가능성 낮아

이 부회장 사건 상고심 진행 상황을 봐도, 24일 판결이 대법원 심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부회장 사건 변호인단과 박영수 특별검사는 올해 2월13일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뒤 지금까지, 매달 평균 2건 이상의 반박-재반박 문건을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이고 있다. 

상고이유서를 제외하고 박영수 특검이 이날까지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 및 의견보충서는 모두 9건에 이른다. 변론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같은 기간 법원에 낸 답변서, 답변보충서, 상고이유보충서는 모두 17건이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박영수 특검과 변호인단이 이처럼 자주 의견을 냈다는 사실은, 이 사건 1심 및 항소심 주요 판시사항에 대한 법리적 논쟁이 상당 수준 진행됐음을 반증한다. 여기에는 이날 문제된 삼성 승계작업의 존재 여부, 이 부회장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명시적 혹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박 전 대통령 항소심 판결이 이 부회장 상고심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은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이날 판결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사건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과 법리구성이, '증거재판주의 위반' 논란을 초래한 이 부회장 사건 1심과 비슷하다는 데 있다.

◆승계작업 및 묵시적 청탁, 재판부마다 판단 달라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김문석 부장판사)는, 비선 실세 최순실 모녀에 대한 삼성전자의 승마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후원을 모두 뇌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전제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작업과 이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존재했다고 봤다.

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사안이 존재했는지 여부, 이를 위한 명시적 혹은 묵시적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는 박 전 대통령 뇌물 혐의 공판은 물론이고, 이재용 부회장 사건의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쟁점이다.

두 가지 쟁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관련 사건 및 심급마다 다르게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1심과 최순실 사건 1심, 이재용 부회장 뇌물 혐의 공판 항소심 재판부는 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나아가 이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여지도 없다고 덧붙였다.

◆뇌물 인정 액수도 제각각

기본 시각의 차이 만큼이나 이재용 부회장 관련 뇌물 인정액수도 재판부마다 다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혐의 사건 1심재판부와 최순실 사건 1심 재판부는, 정유라 승마지원 부분(마필구입비, 코어스포츠 컨설팅 비용, 보험료 등) 72억원을 뇌물로 봤다. 두 재판부는 “포괄적 현한으로서 승계작업이 존재했다고 볼 수 없고, 명시적은 물론 묵시적 청탁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의 뇌물성을 부정했다.

이 부회장 사건 항소심은 마필의 소유권은 삼성에서 최순실에게로 이전된 사실이 없다며 코어스포츠 컨설팅 비용과 보험료 등 36억원만을 뇌물로 인정했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에 대한 판단은 위 두 재판부와 같았다.

반면 이 부회장 1심 재판부는 정유라 승마지원 및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전액을 뇌물로 인정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보험료 2억원 부분을 빼고 이 부회장 1심과 같았다. 이 부회장 사건 1심과 다른 점은, 정유라 승마지원과 관련된 뇌물액수 산정에서 삼성 측이 지급한 2억원 상당의 보험료를 제외했다는 정도다.

◆이재용 부회장 1심과 닮은 꼴....'증거재판주의 훼손' 논란 재현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판단의 근거로 “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과 관련해 '우호적인' 조치가 있었다”는 점을 적시했다. 이 문구는 지난해 8월 이 부회장 사건 1심 재판부의 아래 판시사항을 연상시킨다.

“대통령과 피고인 이재용 사이에는 피고인의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취하거나 부정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상호 묵시적 인식과 양해가 있었고.”

박 전 대통령 항소심과 이 부회장 1심 재판부는 '정부가 우호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모호한 표현을 빌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삼성 승계작업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있었고, 이를 위한 묵시적 청탁도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이재용 부회장 1심, 박 전 대통령 항소심...유죄 판단 주요 근거 '심증'

승계작업 및 묵시적 청탁의 존재에 대한 두 재판부의 판단 근거를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다. 
24일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 판시사항 중 일부.

“2015년 7월25일 단독 면담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 이재용의 승계작업 현안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고, 핵심 승계작업으로 평가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우호적 조치가 직후에 실시됐으며, 단독 면담 후 승계작업 관련 정부는 우호적인 업무처리를 했는데 여기에는 피고인(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에 대한 '정의'도 내렸다. 이 부분 재판부의 판시 사항은 이렇다.

“승계작업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 핵심 계열사인 전자와 생명에 대해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재판부는 '승계작업'의 특성상 청탁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다음은 이 부분 판시사항. 
“승계작업은 경제, 사회, 제도, 정치 환경 변화에 따라 유동적일 수 밖에 없다. 승계작업 존재만 인정된다면 지배구조 개편 내용이 청탁 당시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는 없다.”

같은 사안에 대한 지난해 8월 이재용 부회장 재판부의 판시사항은 아래와 같다.

“다른 정치세력과 비교해 친(親)대기업 성향으로 평가되는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 승계작업을 최대한 진행하기로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됐다.”
“피고인 이재용은 대통령의 입장이 승계작업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는 것인지 여부에 따라 작업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인식했다.”
“대통령은 피고인 이재용이 자신의 승계작업을 위해 대통령과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알고, 이를 이용해 피고인 이재용을 도와주는 대가로, 피고인에게 '정유라의 승마훈련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기로 마음먹고.”

◆심리 및 재판의 공정성·신뢰도 의문

두 재판부의 판시사항을 보면, 판결문인지 아니면 검찰 공소장인지 헷갈릴 만큼 심증 혹은 자의적 판단에 의지한 표현이 자주 나온다.

두 판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우호적'이란 지극히 불명확한 표현이 핵심 쟁점 판단의 근거가 된 사실은, 심리의 공정성은 물론이고 재판의 신뢰도에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승계작업 존재만 인정된다면 지배구조 개편 내용이 청탁 당시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는 없다”고 한 부분은, 자의적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법리가 긍정된다면, '증거재판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증거재판주의는 '범죄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하며,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에 이를 것'을 요구한다(형사소송법 307조).

이재용 부회장 1심 판결문 역시 유죄판단의 주요 근거가 재판부의 '심증'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을 다수 담고 있다.

“(이재용 피고인은)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 승계작업을 최대한 진행키로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피고인 이재용은 승계작업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고 인식했다”등이 대표적이다.

마치 옆에서 누군가 듣고 그 내용을 기록한 것처럼, 재판부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으나, 그 근거는 판결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이 부회장 1심 판결에 대해 “증거재판주의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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