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포항지진 10개월] "지원 특별법 낮잠... 빨리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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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포항지진 10개월] "지원 특별법 낮잠... 빨리 집에 가고 싶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8.08.2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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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 "발 빠른 거주지 무상지원이 가장 큰 도움"
현지 택시기사 "지진 후유증... 작은 흔들림에도 깜짝"
이재민들 경제적보상 절실... 지진피해 대책 특별법 통과 기대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지난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과 4.6의 여진이 포항을 강타했다. 땅과 건물이 파도를 탄 것 마냥 마구 흔들렸다. 깜짝 놀란 시민들은 집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지진이 끝나자 수많은 주택들에 거주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거주자들은 한 순간에 집이 없는 난민이 됐다. 건강하게 겨울을 나야 하는 아기부터 학교를 가야하는 학생, 당장 내일 아침부터 출근을 해야 하는 어른까지 한 숨을 쉬는 것 빼곤 할 게 없었다.

정부와 포항시도 상황은 마찬가지. 한반도에서 지진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을 했을까. 시민도 정부도 ‘멘붕’(멘탈 붕괴)인 상황에서 10개월이 흘렀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포항을 찾아가 봤다.

◇ “땅 울리면 깜짝” 아물지 않은 '11월15일'의 기억

오전 9시, KTX로 포항에 도착하자 행정안전부로부터 ‘폭염 경보’ 문자가 날라 왔다. 경북 포항의 기온이 최고 35도 이상으로 올라가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내용이었다. 포항 지진 이재민들이 ‘지진 후유증에 폭염까지 더해져 제대로 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서 취재는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 택시 기사는 포항 주민들이 아직 ‘지진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땅의 작은 흔들림에도 깜짝 깜짝 놀라는 거죠. 기차나 화물차가 빠르게 지나가면 땅이 흔들리잖아요. 그런 작은 흔들림에도 그때 기억(2017년 11월 포항지진) 떠올라 놀라죠. 서울 사람들은 ‘차가 지나가나 보다’, ‘그런 갑다’ 하잖아요. 저희는 안 그래요. 계속 천장에 매달린 전구 같은 거를 쳐다보게 되요. 흔들리나 안 흔들리나 보는 거죠. 초긴장상태에서요. 지진은 마치 파도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저희 아버지 연세가 아흔이 넘는데, 이런 지진 경험은 난생 처음이라네요.”(경북 개인택시 기사 A씨)

◇ 지원 법안 통과돼야 본래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포항 남구 원동에는 ‘원동 부영 사랑으로’ 아파트가 있다. 이곳에는 포항 지진으로 살 곳을 잃은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 주민 27가구와 흥해지역 주민들이 이주해 살고 있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후 부영이 그룹 보유분 52가구를 2년간 무료로 살 수 있도록 제공하자 이곳으로 잠시 이주하게 됐다. 대동빌라는 포항 지진과 관련해 현재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다. 지난 달부터 철거에 들어갔고, 포항시에서 재건축 계획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이재민들을 대표하는 김대명 포항 지진 대책위원장에게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포항 지진 이재민들이 잠시 거주하고 있는 포항 원동 부영 사랑으로 아파트.

-주민들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지진 발생 후 살 곳이 없었는데, 부영의 발 빠른 대처로 모두가 이곳(포항 원동 부영 사랑으로)으로 입주해 잘 살고 있다. 별다른 문제 없이 만족도 있게 지내고 있다.”

-대책위를 운영하는 동안 정부나 포항시와 소통상 문제는 없었나?

“소통상 문제는 크게 없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다만 현재 본질적인 피해구제 대책이 담겨 있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루 빨리 통과돼 지진 피해주민들이 본래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길 기대한다”

현재 국회에는 지진피해 지원금액 국비 부담률을 현행 30%에서 80%로 끌어올려 최대 3억 원까지 지원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이 상정돼 있다. 포항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법안들은 파손된 주택 수리 및 개축, 내진보강 비용지원 상한선, 국가부담률 등이 커 지금까지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 대동빌라 주민들은 지진 피해 당시 이곳(부영 사랑으로) 입주 말고 다른 계획은 가지고 있었나?

“지진피해 초기 단계라 임시 거주지 확보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영주택에서 사회 공익적 차원에서 이재민들에게 임시 거주지를 발 빠르게 제공해 주었다. 당시에 정말로 ‘멘붕’이었다. 지진이라는 것을 처음 느껴 당황했고, 포항시나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교육부터 직장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영 지원 발표에 이곳으로 오게 됐다”

-기존에 살던 집과 현재 집(부영)의 거리가 꽤 멀다. 아파트 만족도나 생활에 불편함은 없나?

“개인적으로는 하자도 없고,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교육 문제와 출퇴근이 멀다는 것 말고는 크게 불편함이 없다. 대책위에서도 공식적으로 부영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수차례 전달했다”

-폭염으로 국민 모두가 힘든 상황이다. 이곳에 입주하지 못한 지진 피해자들은 만나 봤는가?

“여기(부영 입주 이재민)에는 상당수 대동빌라에 있었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다른 지진 피해자들은 만나보지 못했다. 만일 부영이나 LH에 입주하지 못한 지진 피해자들이 있다면 정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지난달 26일부터 철거와 발 바빠르게 재건축 논의가 진행 중인 대동빌라 단지의 모습.

-자녀 교육은 다들 어떻게 하는가?

“주민들 마다 계획이 달라 어떻게 결정했는지는 정확히는 나도 잘 모른다. 내 자녀들은 중고생이다.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등하교를 시킨다. 어린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은 ‘부영 사랑으로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다.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은 그나마 좀 수월할 수 있지만 초중고교 자녀를 키우는 이재민들은 애로사항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포항시에서 대동빌라 재건축을 위해 건설사와 접촉 중에 있다. 협의가 잘 되길 기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행전안전부가 지진 피해자 지원을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루 빨리 지진 피해 대책 특별법이 통과되고, 정부도 법안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걸고 있다.

◇ 아이들 뛰놀던 대성아파트 지진 이후 ‘슬럼화’

포항 북구 흥해읍에 있는 대성아파트 단지 역시 지진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곳이다. 보상 대책을 놓고 정부 및 포항시와 가장 격렬하게 대치 중인 곳이기도 하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 이곳은 나름 지역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였다. 주변 상권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모두가 떠나고 텅텅빈 폐가가 됐다. 현장에 직접 본 대상아파트는 육안으로도 기울고, 내려앉은 것이 확인된다. 한 때 이곳 주민들은 지진 후 집을 재건축해 거주하려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희망 때문에 오히려 이곳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이들이 한 때 뛰놀던 포항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포항시는 언제 붕괴할 지 모르는 위험에 지진이 발생한 날 거주 폐쇄 조치를 내렸다.

근처 공인중개사 C씨는 “재건축 분단금이 무려 1억 원을 넘어요. 하다 보면 몇 천만원 순식간에 인상되겠죠. 그런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돈이 없으니... 거래량 완전 죽었구요. 주변 상가들 급매로 내놓고 있어요.”라고 밝혔다.

제과점 주인 K씨 “매출이 정확히 3분의 1로 줄었어요. 지금 같이 더운 여름에는 팥빙수가 잘나가는데, 올해 여름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안 팔렸어요. 이곳 아파트 주민들이 다 떠나야 하는 상황이니깐 저희 같은 매장들은 어쩔 수가 없죠.”라고 하소연했다.

포항시가 최근 주민들에게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재건축 주민분담금은 가구당 1억6천만 원. 지진이 일어나기 전 아파트 시세(5천~6천만 원)를 감안하면 사실상 삶의 터전을 포기해야 상황이다.

이곳 주민들은 정부를 크게 원망하고 있다. 지진 후 그동안 총리, 장관, 국회의원들이 잔뜩 다녀갔는데, 제대로 된 지원하나 없다는 것이다. 주민 L씨는 “장관, 총리 고위 공무원들 와서는 뭔가 잔뜩 해줄 것처럼 하더니 피해 지원 법 다 반대하는 거잖아요. 도대체 무슨 쇼를 하는 건지. 나 원...”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민, 법이 없으면 지원해 줄 수 없다는 정부와 포항시,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재민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터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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