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4> 세종이 양녕에 선물한 만병통치약 청심원
상태바
[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4> 세종이 양녕에 선물한 만병통치약 청심원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7.31 15: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픽사베이. 청심원

"어째서 청심원(淸心元)을 올리지 않는가?" 문종 2년 5월 14일

수양대군이 화급하게 어의를 채근하며 외친 말이다. 어의 전순의가 바로 청심원을 올리려고 했으나 이미 시기를 놓쳤다. 문종은 이날 강녕전에서 승하했다. 춘추는 39세였다. 

세종의 장남인 문종은 등의 종기(腫氣)인 등창으로 오랜 기간 고생했다. 종기는 박테리아에 의한 염증반응이다. 전통시대에 종기는 지극히 위험했고, 통증도 심했다. 문종의 등창은 무려 한 자(약 30cm)에 이르렀다. 

문종은 등창의 호전과 악화 반복 속에서 정무를 수행했다. 승하 며칠 전까지도 사신을 접견하고, 활쏘기 구경도 했다. 정무 수행 중에 종기의 화농이 터졌다. 어의 전순의 등은 은침(銀針)으로 종기를 따 농즙(濃汁)을 두서너 홉쯤 짜냈다. 통증이 조금 잦아졌고, 어의들은 3,4일 후에는 완쾌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5월 14일 아침에 갑자기 위중해진 것이다. 이 다급한 상황에서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이 청심원을 쓰라고 울부짖은 것이다. 응급 구급약인 청심원은 조선의 건국주인 태조가 승하할 때도 올려졌다. 태조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태종이 청심원을 쓰게 했다. 그러나 기력이 쇠한 태조는 삼키지 못하고 눈을 들어 두 번 쳐다보고 승하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왕에게 올려진 청심원은 혼수상태, 발작, 간질, 뇌질환, 심장질환 등 비상 상황에서 쓰인다. 동의보감에서는 갑작스런 중풍으로 혼절한 경우, 담연(가래) 옹색, 입과 눈의 비뚤어짐, 전신불수, 수족장애, 심기(心氣) 부족, 정서불안, 전광증(癲狂症), 발작, 정신착란, 신병(神病) 등에 두루 쓰는 처방으로 설명한다. 고종 때 황필수가 쓴 방약합편에는 언어장애, 혼절, 의식불명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청심원은 우황, 사향, 산약, 서각, 대두황권, 감초, 인삼, 육계 등 약 30 종 내외의 한약재로 구성된다. 우황이 들어갔기에 여러 서적에서는 우황청심원으로도 많이 표기돼 있다. 우황은 소의 담낭이나 담관에 생긴 결석을 건조시켜 만든 약재다. 진정, 경련 예방에 좋다. 

조선 초에는 궁궐에서만 사용되던 귀한 약이었다.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명나라 등에서도 인기가 크게 높았다. 이에 따라 명나라나 청나라에 가는 사신은 필수품처럼 챙겼다. 임금은 섣달에 만든 청심원을 근신(近臣)들에게 선물한다. 왕이 선물하는 약은 청심원, 소합원, 안신원이다.

왕은 가까운 신하 외에도 다양하게 약을 선물로 활용한다. 태종은 말에 다친 백성에게 청심원을 주게 하고, 여진과 대치하고 있는 국경수비대장에게도 응급약으로 하사한다. 대마도를 관리하기 위해 도주 종정무에게도 보낸다. 세종은 유배 중인 양녕대군에게 청심원, 소주를 보내 위로하기도 한다.

청심원이 만병통치약으로 소문나자 의료기관 외에서도 제조하게 된다. 혜민국과 전의감뿐만 아니라 의정부, 육조, 승정원, 의금부 등 각 관청에서 너도 나도 만든 것이다. 약은 알음알음 인연을 따라 환자에게 전해졌다. 무면허 제조는 약효를 보증할 수 없고, 부작용 우려도 있다. 세종 22년 11월 22일 승정원이 의약품 불법 유통 문제를 제기한다. 청심원은 풍증을 주로 구급하는 용도로 오랜 복용은 피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병의 원인과 상관없이 급한 상황에서 청심원을 쓰는 현실을 비판한다. 세종은 의료기관만 청심원 제조를 허락한다. 

귀한 청심원은 소합원, 보명단과 함께 조선에서 비싼 3대약에 속했다. 이로 인해 대중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가의 이유는 재료인 사향, 용뇌, 소합유 등 상당수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연산군 무렵부터는 국내산 약재를 쓰는 신선태을자금단이 관심을 끈다. 이종준이 쓴 이 책은 신비로운 환약의 제조와 효험 사례 등을 싣고 있다. 신선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환약 자금단의 약효는 풍병, 학질, 옹저, 약 중독, 놀람 등 60여종에 이른다. 다만 각 질환에 대한 약효는 검증할 부분이 남아 있다.

이에 비해 청심원은 현대까지도 주요한 약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한의원에서 처방은 물론이고 약국에서도 시판되고 있다. 풍증, 언어장애 등은 물론이고 시험이나 면접을 앞둔 수험생 등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청심원은 체질, 질환에 따라 효과가 차이가 나고 맞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날 수 있다. 따라서 한의사와 상담한 뒤 증상에 맞는 처방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