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민낯④] 갑질 물타기, 대기업 면죄부 주는 강제 합의서 -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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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민낯④] 갑질 물타기, 대기업 면죄부 주는 강제 합의서불공정 합의서, 하도급 후려치기 사건 무마에 단골 등장
합의서 이유로 乙 아닌 대기업 두둔... 공정위 존립 '위태'
  • 김흥수, 오창균 기자
  • 승인 2018.07.3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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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전경 @시장경제 DB

지난 30일 밤 공정거래위원회 정재찬 전 위원장과 김학현 전 부위원장이 전격 구속됐다. 이들은 명단을 관리하며 4급 이상 퇴직 간부들의 민간 기업 불법 재취업을 도운 혐의(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2014~2017년 재직한 정재찬 전 위원장과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각각 16명과 14명의 재취업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관경유착(官經癒着)' 의혹이다.

검찰은 공정위가 내부 관계자들을 기업에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재취업 시킬 퇴직자를 특정한 자리에 보내거나, 퇴직자가 있던 자리를 다른 간부에게 물려주는 식으로 기업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 안팎에서는 이들이 단순 압력만으로 퇴직 간부들을 거대 기업에 내리 꽂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가 감시 대상인 민간 기업과 짬짜미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후문이다. 커튼 뒤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사건 무마(撫摩) 이면합의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공정위 출신 관계자는 3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내부에서 사건 조사를 하다 보면 재취업을 둘러싼 '대기업 편의 봐주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언급했다. 불법 하도급 행위와 같은 대기업 갑질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도 공정위 핵심 간부와 같은 윗선의 지시로 인해 사건 처리를 적법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증언이다. 그리고 사건 무마의 끝에는 공정위가 자기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원청·하청업체 합의서(合意書)가 남게 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흔히 갑질을 일삼는 대기업은 불법 하도급 행위를 자행한 뒤 하청업체로부터 합의서를 받아낸다. 부당 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강제 합의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청업체가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합의서 작성을 종용하는 셈이다. 공정위의 입맛에 따라 판단이 갈리지만 그렇게 받아낸 합의서는 적발 시 부당 단가 후려치기의 증거물이 되기도 한다. 원청업체에 대한 매출의존도가 높은 하청업체의 합의서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법률행위로써 공정성을 잃기 때문이다.

예컨대 갑(甲)이라는 원청업체와 을(乙)이라는 하청업체가 있다. 을의 매출액 가운데 갑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라고 가정해보자. 워낙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갑이 거래를 끊어버리면 을은 바로 폐업을 할 수 밖에 없다. 관계가 이렇다면 을이 갑에게 철저하게 예속되는 수직적인 구조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형성된 구조 속에서 이뤄진 계약이라면 우리나라 민법 104조가 규정하고 있는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

헌법상 명문규정은 없지만 '사적자치(私的自治)의 원칙'은 때로는 사적자치권이라는 기본권의 하나로, 또는 시장경제질서의 선언에서 유출되는 당연한 원칙으로서 인정되고 있고, 헌법재판에서도 빈번하게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법상의 거래 관계는 개인의 의사에 맡긴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제한적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 민법 104조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계약은 무효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불리한 계약을 본의 아니게 체결당하기 쉬운 금전의 차용인, 근로자, 하청업체 등은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 사적자치는 이러한 경우에 각각 그 제한을 받게 된다. 아울러 공정위는 사적자치를 무시하더라도 사건의 실체를 찾아 공정한 상거래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태어난 기구가 바로 공정위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시장경제 DB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서가 있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갑질을 일삼는 원청업체, 대기업의 손을 들어준다면 공정위의 존립(存立)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물론 모든 합의서를 무효화할 수는 없다. 합의서의 유효성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갑에 대한 을의 매출의존도다. 매출의존도가 10% 남짓이라고 한다면 합의서는 유효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을이 입을 수 있는 피해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출의존도가 30% 이상 높게는 70~80%에 달하게 되면 을은 갑에게 철저하게 예속당할 수 밖에 없고 이런 관계에서 작성된 계약관계라고 한다면 '사적자치의 원칙'은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 출신 관계자는 "부당단가 후려치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공정위에 신고를 했으나 상호 간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심의종결 처리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우 피해자들의 매출의존도는 고려 사항이 되지 못한다. 비단 공정위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정위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감사원도 대기업 갑질에 피눈물을 흘리는 을(乙)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하청업체 대표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땀의 대가를 대기업에게 박탈 당하고 있다.

재취업 특혜 의혹으로 지난 30일 구속된 A씨는 공정위 재직 시절 대기업의 갑질을 두둔하며 내부 직원들에게 거센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에서 하도급 대금을 달러화로 지급한 일이 있었다. 당시 달러화가 폭락하고 있던 상황이다. 하청업체들은 눈 뜨고 코를 베이는 갑질을 당한 셈이다. 그러나 A씨는 국제 달러 시세를 조사해가며 사건을 심의종결 처리했다. 하청업체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대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약방의 감초인 '합의서'가 존재했다. 공정위 내부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이 사건은 한 때 '출세를 하려면 사건무마를 잘 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교훈을 남기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온갖 갑질을 하면서 하청업체에게 합의서를 받아 내는데 그런 얼토당토 않은 문서를 인정해 준다면 진정 공정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재의 공정위를 바라보는 퇴직자들이 한숨을 내뱉으며 하는 말이다. '경제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위가 구체적인 연봉 액수까지 정해주며 불법 재취업을 대가로 대기업들에 대한 봐주기 조사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하청업체 사이에선 "김상조 위원장이 이끄는 공정위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공정위의 체면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다. 공정(公正)을 최우선 기치로 내건 공정위가 퇴직한 선배의 충고를 되새겨야 할 시기다. 공정위가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했다는 여론의 비판은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김흥수, 오창균 기자  hskim@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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