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목 좋고 월세 싼 곳 있나요"... 시장에 둥지 튼 청년 사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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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목 좋고 월세 싼 곳 있나요"... 시장에 둥지 튼 청년 사장들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0.10.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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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 경영기법 무장... 젊은이들 잇단 창업
이웃가게서 가족처럼 도와주니 창업 수월"
20~30대 고객 늘어...구청서 입주 지원도

전통시장이 ‘젊은 피’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최근 서울 곳곳의 전통시장에 청년 사장들이 잇달아 둥지를 틀면서 젊은 고객들이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지난 해 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 상인들의 평균 연령은 50~60대.

상인의 고령화는 고객 고령화로 이어져 젊은 고객들을 확보하는 것이 전통시장의 큰 과제였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가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꿔 놓고 있다. 창업 전선에 나선 청년들이 전통시장 안이나 인근에 가게 터를 잡기 시작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비해 유동인구가 적지 않으면서도 임대료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이들은 저마다 새로운 경영기법을 들고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관악구 신사동 신사시장. 과일과 야채, 분식류가 즐비한 평범한 골목형 시장에 시장답지 않은 인테리어를 한 ‘동대찜닭’ 간판이 눈에 띈다. 시장 코너 땅을 활용해 한쪽 면은 테라스로 운영하는 집이다. 가게 안은 20~30대 손님들로 북적였다.

▲ 점포를 자랑하고 있는 동대찜닭 송승백(31) 사장 ⓒ시장경제신문

올해 초 창업한 송승백(31) 사장은 “시장에 유동인구가 많아 부지런히만 하면 장사가 잘될 것 같아서 들어왔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손님이 오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일부러 찾아오는 젊은 단골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들 입맛에 맞춘 찜닭과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손님이 하루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게 문을 연지 이제 겨우 2개월. 송 사장은 “시장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말을 수십 번 되풀이했다. 시장은 젊은 사장들이 장사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일반 상권은 ‘저 가게를 죽여야 내 가게가 산다’는 생각으로 서로 죽이려 해요. 시장은 ‘같이 장사가 잘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어요”라고 답한다.

상인회에서도 젊은 사장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 신사시장 유덕현 상인회장은 “시장에 20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면서 “동대찜닭이 더 유명해지면 자연스럽게 우리 시장에도 젊은이들이 북적이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상인회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돕고 있다고 귀뜸했다.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자양골목시장에도 유독 손님들이 북적이는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젊은 사장들이 함께 운영하는 ‘삼호축산’이다. 큰형 내외와 작은형 내외 그리고 막내 동생이 일을 하고 있다.

▲ 삼호축산 유병우(28) 사장이 세일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시장경제신문

세일 품목은 막내 동생 유병우(28) 사장이 맡아 판매한다. 유 사장이 “지금부터 딱 1시간만 600g에 7,800원짜리 국내산 암퇘지 목살을 4,800원에 팝니다”라고 하자 순식간에 수십명이 몰려들었다. 그는 “시장에 손님이 가장 많이 오는 오후 5시에 반짝 세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세일 품목은 일명 ‘전투품목’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유 사장에게 비결을 묻자 “옛날 장사 방식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기의 진열도 매일 바꾸고, 개별포장도 늘렸다. 고객관리도 철저하다. 구매고객에게 발급되는 고객카드는 현금 2%, 카드 1%씩 적립해준다. 유 사장은 “첫째는 좋은 고기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해요. 좋은 물건에 마케팅이 결합돼야 손님들을 끌어들일 수 있죠”라고 말했다.

삼호축산은 2010년 초 서울시가 지정하는 ‘안심식육판매점’으로 꼽힌 곳이다. 시에서 공무원들이 나와 고기의 품질과 위생 등을 꼼꼼히 심사해서 인증해준다. 광진구엔 안심식육판매점이 3곳 밖에 없다고 유 사장은 자랑을 한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젊은 청년들이 장사를 잘한다. 고기 살 때는 항상 시장에 오게 되고 시장에 오니 이것저것 장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공릉도깨비시장에도 청년 사장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10개월 전에 시장에 들어온 깨비강정 김지영(37) 사장은 “상권조사를 하다가 시장 안에 닭 강정 파는 곳이 없어 여기로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 노점상을 운영하고 있는 깨비강정 김지영(37) 사장 ⓒ시장경제신문

3평 남짓한 노점상이지만 번호표를 나눠줄 만큼 손님들이 많다. 김 사장은 “시장손님들의 연령층이 높아서 닭을 딱딱하지 않게 익혔는데, 지금은 어르신부터 학생들까지 다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시장 속 청년창업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시장과 고객의 특성을 파악해 적합한 업종을 선택한다면 다른 곳보다 빨리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사장은 “시장에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연로해서 장사를 못하는 상인들 점포에 젊은이들이 입주하면서 시장이 젊어지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일자 서울시에서도 나서 청년 창업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첫 번째 사업 대상은 서대문구 인왕시장. 14개의 빈 점포를 젊은이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주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서대문구 경제발전기획단 박우동 계장은 “공모를 해서 청년창업자들 8명을 선발했다. 커피, 꽃집, 구제의류 등 가게 창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계장은 “서울시와 서대문구는 노후화된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청년 창업자를 끌어들이게 됐다. 오는 4월 공사를 시작해서 6월쯤 오픈할 계획이다. 빈 점포가 많아 시장 분위기가 처져있었는데 젊은이들의 유입으로 시장에 활기가 돌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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