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민낯②] 깜깜이 심사·보고서 미공개... 不信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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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민낯②] 깜깜이 심사·보고서 미공개... 不信만 키웠다
  • 김흥수, 오창균 기자
  • 승인 2018.07.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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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조사보고서 비공개... 두손 모아 기다린 결과는 '무혐의'
피눈물 흘리는 乙,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공정위 맹비난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시장경제신문 DB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시민운동을 하던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냈다고 자평할진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경제민주화가 얼마나 진척 됐느냐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김상조의 공정위는 현실과 이론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혹평도 자자하다. <시장경제>가 공정위의 현 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공정위에 쏠리는 시선

신고사건에 대한 조사과정이 불투명 하면 민원인들의 원성(怨聲)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원사업자인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입은 하청업체들이 대표적이다. 갑질 사건이 흐지부지되면 민원인들은 공정위의 조사보고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명정대한 조사가 이뤄졌다면 결코 심의종결될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위 조사를 의심하는 민원인들은 자신의 사건에 대한 조사보고서 정보공개를 요구한다. 그러나 공정위는 조사결과만 민원인에게 건네줄 뿐 조사보고서를 일체 공개를 하지 않는다. 대기업 갑질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공정위로부터 이렇다 할 답을 얻지 못한 을(乙)들은 또 다시 피눈물을 흘린다.

참여정부 시절까지는 조사보고서 공개가 이뤄졌지만 이후 창구는 굳게 닫혀버렸다. 공정위로부터 조사보고서를 받아내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제기한 하청업체 관계자도 있다. 롯데갑질피해자연합회의 안동권 아하엠텍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공정위를 향해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 공정위는 각종 이유를 들어 조사보고서 공개를 꺼리고 있다. 만약 개인정보나 기업비밀이 문제라면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공개하면 되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안동권 대표가 롯데건설을 상대로 소송하는 과정에서 재판부는 공정위 측에 조사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여러차례 내렸다. 그러나 공정위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답답한 담당 판사는 "만약 조사보고서에 기업비밀 등이 담겨 있다면 그 부분은 삭제하고 제출하라"고 했다. 공정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참다못한 재판부는 "그러면 롯데건설 측에서 자료를 제출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롯데건설 측은 "공기관에서도 제출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제출할 의무가 없다"고 맞장구를 쳤다.

#. 무마시킨 사건의 면죄부 '재신고 심사제'

공정위에 불공정행위 피해 신고를 한 민원인은 사건 처리에 기대를 걸게 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공정위가 심의종결(무혐의)이라는 결과를 내놓으면 그만큼 실망이 커진다. 결과를 믿을 수 없는 민원인은 재차 피해신고를 하게 된다. 공정위의 심결이 불공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를 재신고사건으로 분류한다. 일부 민원인은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심결이 나와도 담당조사관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러한 경우는 대부분 재신고를 하지는 않는다. 담당조사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민원인이 납득하지 못한 사건의 상당수는 다시 재신고 절차를 밟게 된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재신고사건의 상당수는 (공정위가) 무마시킨 깜깜이 케이스"라고 귀띔했다. 공정위가 재신고를 모두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껄끄러운 문제의 경우 재신고사건 심사에서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재신고사건 심사를 통해 문제의 사건을 재조사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게 된다. 해당 심사가 도입된 이후부터 재신고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대폭 줄었다는 후문이다. 심사위원회에서 대부분 기각을 시켜버리기 때문에 재조사할 사건이 줄어든 까닭이다. 과연 공정위의 이러한 판단이 옳은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한라그룹의 주력 계열사 (주)만도의 갑질 의혹은 한 하청업체 관계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세차례 재재신고를 한 끝에 드러나게 됐다. (주)만도가 하청업체들에게 줄 대금을 부당하게 깎은 규모가 무려 500억원에 달한다는 정황을 공정위가 심사보고서를 통해 파악했음에도 축소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3월 (주)만도가 11개 하도급업체에 3억여원의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8,0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갑질 규모가 500억원에서 3억원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주)만도에게 피해를 입은 하청업체 관계자들도 "공정위가 하도급대금 부당결정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법(法) 위반금액과 과징금을 대폭 축소하는 등 사실상 만도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시장경제신문 DB

#.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정위의 도덕적 해이

재신고사건 심사제의 가장 큰 폐해(弊害)는 공정위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조장이라는 지적이 많다. 첫번째 신고에서 엉터리 조사가 이뤄져 재신고가 들어오더라도 심의위에서 기각되면 사건은 묻혀버리게 된다. 사건 조사를 엉터리로 진행했던 담당 조사관에게 면죄부(免罪符)를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심의종결된 사건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이전 조사관에 대한 페널티가 전혀 부과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공정위 조사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물론 실수에 의해 사건이 무마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수차례 반복된다면 더이상 실수가 아니게 된다. 대기업 갑질에 피해를 입은 민원인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사건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공정위는 반드시 새겨야 한다.

매년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국회 안팎에선 "공정위가 무마하는 사건의 대부분은 재벌과 유착된 정·관계 고위직 압력에 의해 이뤄진다"는 말이 반복된다. "재벌 사건을 잡고 꼼꼼하게 조사하는 조사관은 다른 부서로 발령나는 일이 다반사"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대기업 관련 사건을 파고들면 갑작스레 다른 자리로 전보(轉補)되고, 이후 후임자가 와서 사건을 무마시켜버린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가 상부의 무마 압력을 견디다 못해 병가를 내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설(說)은 기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1970~1980년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들이 묵묵히 정권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희망을 노래했다. 결과는 비참할 지경이다. 국민들은 과거 정권보다 더욱 절망하고 있다. 대기업 갑질에 하청업체 을(乙)은 허리띠를 한칸 더 졸라매는 실정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제대로 일하고 제값 받는 새 시대"를 외치지만 이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공정위를 향해 국민들은 여전히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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