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칼럼]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를 이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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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칼럼]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를 이기려면
  • 정영선 칼럼
  • 승인 2016.11.2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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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팔아 단골 만들기

정영선 / 브랜드스토리 기획이사 스토리텔링 마케팅 전문가

ⓒ정영선

‘단골’이라는 말은 재미있다. 상인과 고객이 함께 쓰는 말이다. 원래 이 ‘단골’은 ‘무당’이라는 뜻이다. 옛날 좁은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은 섣불리 이웃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마을무당을 찾아갔다. 그 무당을 ‘당골’이라고 불렀고, 그것이 변해 ‘단골’이 되었다. 즉 ‘단골’은 단순히 상품과 돈을 거래하는 사이가 아니라 가족에게도 말하기 힘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다.

문화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인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프로젝트’의 핵심은, 상인들이 살아 온 인생이력에서 그 상인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만들어 주어 ‘단골’을 확보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원 못골시장에서 20년간 잡곡 노점을 한 성은숙 씨. 그녀는 두 번 암과 싸워 이겨내면서, 아들을 수원시청 수퍼헤비급 챔피언으로 키웠다. 그 사이 지하 단칸방에서 번뜻한 2층 양옥집 주인이 됐다. 정말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이다. 사실은 아들이 아니라, 성은숙 씨 자신이 ‘인생의 진짜 챔피언’인 것이다.

우리는 이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권투 글러브를 메고 장사해 보시라고 권했다. 잡곡노점 아줌마가 권투 글러브를 메고 있으니, 사람들이 의아해서 ‘그건 왜 메고 있냐?’고 물어온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알렸고, 그 결과 그녀는 못골시장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물론, 단골도 늘었다.

이처럼 각 상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여 컨셉을 만들고, 그 컨셉에 알맞은 간판과 매대를 디자인을 해서, 실제로 수원 못골시장은 최고 20%의 매출 신장효과를 거두었다.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주목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시설로 승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통해 경쟁력을 키웠다는 데 있다.

그동안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라면, 아케이드를 씌우고 주차장을 만드는 등 시설물 개선사업 위주였다. 그런데 문전성시는 시설 보다 사람(상인)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던 것이다.

동네 골목상점의 경쟁력은 시설개선이 아니라, 동네 골목상점만의 매력에서 찾아야 한다. 기업형 슈퍼마켓 (SSM) 이 가질 수 없는 동네 구멍가게 본연의 매력 말이다.

마을의 사랑방, 정자나무 아래로 오세요

옛날에는 동네마다 정자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아래에는 마을사람들이 장기를 두거나 한담을 나누면서 쉬었다. 사람들은 이 정자나무를 중심으로 모였고, 정자나무는 주민들에게 휴식처이자, 정보 교류처이자, 물품보관소이자, 동네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정자나무 아래 앉아 있는 마을 어른들은 집을 비우게 된 이웃 아이들이나 강아지를 대신 돌봐 주었다. 또, 집이 비어 전달되지 못한 우편물이나 소포를 대신 맡아 두었다가 주인에게 전달해 주기도 했다.

6, 70년대만 해도 도심지 골목상점이 실제로 이런 정자나무 역할을 했다. 행인이 길을 물을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건 파출소가 아니라 골목상점이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공중전화를 걸기도 했고, 전화를 걸기 위해 동전을 바꾸었으며, 동전을 바꾸면서 미안한 마음에 껌 한 통을 사기도 했다. 우표도 팔고, 가게 앞 야외평상에 걸터앉아 음료를 마시기도 하면서, 거기서 중매 이야기며 셋방 정보가 오갔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고, 정보가 오가고,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곳. 골목상점은 골목상점이 가진 이런 고유의 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골목상점을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 문화 조성

삭막한 도심지에 녹색 나무 그늘을 드리운 가게가 있다면 눈에 쏙 들어올 것이다. 진짜 나무라면 좋겠지만, 정자나무 그림이 있는 간판이라도 좋다. 입구엔 ‘정자나무 9호점’이라는 팻말을 달아준다.

상점 주인은 동네의 터줏대감이자, 일종의 수호신 역할을 하도록 역할교육을 받는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정자나무 상점은 동네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고, 상점주인은 마을의 주재자로서의 큰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

그러자면, 그 옛날 정자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택배나 우편물 보관 서비스 등, 마을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집을 비우는 일이 많은 현대인에게 이런 작은 편의를 줌으로써, 동네 골목상점에 드나들 수 있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택배물건이나 우편물 찾으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필요한 생필품을 사들고 나올 수 있게끔.

이처럼 택배사업과 연계한 골목상점이 ‘정자나무’ 역할을 한다면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것이며, 이는 골목상점의 매출신장과 더불어 따뜻하고 인간적인 도시문화 공동체의 확산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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