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한다 한들... 진통제로 연명하는 '주5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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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한다 한들... 진통제로 연명하는 '주52시간'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8.06.2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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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계도기간 요구에 "위반업체 처벌 6개월 유예"
산업계 "임시 처방 일 뿐"
사진=픽사베이

7월 1일부터 시행을 앞둔 주 52시간 근로제도가 6개월간 유예됐다. 어떠한 보완 없이 단속과 처벌만의 유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청와대(이하 당정청)는 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부터 실시하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6개월간 단속이나 처벌을 하지 않는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민주당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20일 고위 당·정·청 회의가 끝난 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고 제도 연착륙을 위해 6개월간 계도기간(3+3개월), 처벌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20일 "근로감독 또는 진정 등의 처리 과정에서 노동시간 위반이 확인되더라도 교대제 개편, 인력 충원 등 장시간 노동 원인 해소를 위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최장 6개월의 시정 기간을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근로감독관은 시정 기간에 사업주가 시정 지시를 이행하면 '내사 종결' 처리한다.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범죄로 인지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노동시간 위반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 혹은 2천만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경제‧산업계에서는 죽게 생겼는데, 잠시 진통제만 먹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금속기업 관계자는 “(주52시간과 관련해)뚜렷한 대책이 없는데, 6개월 처벌과 단속을 미루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실질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걸 반기지 않는다. 일을 더 하고 싶은 사람도 많다는 걸 무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은 “근로시간 단축은 특별유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인력난을 해결하는 방안이 근본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시간 단축에는 3교대, 4교대를 할 수 있는 대기업과 사람조차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뒤섞여 있다. 인위적으로 하다보면 납품기일을 못 맞추고, 이로 인한 손해는 모두 기업이 떠 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중앙회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최대 1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성명을 냈다.

정부가 갑자기 6개월 처벌 유예를 결정한 것은 노동계 입장에만 포커스를 맞춘, ‘졸속 입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8년 2월 국회를 통과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은 노동계 출신 의원들 주도로 급작스럽게 짜여졌다. 당시 여야 합의안을 마련한 국회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는 11명 의원 가운데 5명이 노조 간부 출신 의원이었다. 기업인은 없었다. 노동계의 입장만 반영되는 구조다. 당시 소위는 ‘근로시간 단축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2주·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재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탄력근로제 확대 요구는 개정법안 부칙에 규정된 2022년 시한 전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소극적으로 대했다. 반면 노동계 요구는 받아들여 연장 근로 제한을 받지 않는 특례 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축소했다.

이후 발생한 사태가 바로 노선버스와 정보통신기술(ICT) 등 특례 제외다. 이에 대한 대책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드는 우려와, 추가 채용 인건비 부담에 대한 실증 문제가 나타나자 기업·근로자에 대한 지원금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시간 단축 현장 안착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문제가 불거지면 땜질 대책을 내놓기를 되풀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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