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5> 광평대군 창진과 천연두 처방 - 시장경제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5> 광평대군 창진과 천연두 처방
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사진 = SBS 뿌리깊은나무)

여(璵)가 창진(瘡疹)을 앓았다. 임금이 심히 근심하여 여러 방법으로 치료하게 했다. 그러나 끝내 낳지 못하고 죽었다. 임금과 중궁이 몹시 슬퍼하여 3일 동안 조회를 거두었다. (---) 여가 병이 중해 위독할 때 임금은 밤을 지새웠으나 끝내 죽으매 종일 수라를 들지 아니하셨다. <광평대군 졸기>

여(璵)는 세종대왕의 5남인 광평대군이다. 그는 꽃 미남에 공부 잘하고, 운동 신경 좋고, 예의바른 왕실의 엄친아다. 그의 졸기에는 ‘성품이 너그럽고, 도량이 넓으며, 용모와 자태가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총명 효제(孝悌)하고, 아랫사람도 꾸짖지 아니하매, 사람들이 모두 좋아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힘쓴 그는 효경(孝經) 소학(小學)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능했고, 이태백 구양수 소동파 등 역대 문장가들의 문집도 두루 열람했다. 음률(音律)과 산수(算數)에도 정통하고, 활쏘기와 격구(擊毬)에도 뛰어났고, 행정력에서도 인정 받았다. 

빼어난 능력의 광평대군은 불행하게도 20세에 요절한다. 엄친아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 사이에게는 여러 스토리가 피어났다. 당시 저술가인 성현은 흥미로운 이야기 모음집 용재총화에 ‘관상가의 풀이대로 광평대군이 목에 가시가 걸려 죽었다’고 적었다. 이 글이 원본이 돼 연려실기술 지봉유설 대동기문 등의 개인 문집에는 광평대군의 죽음을 목에 걸린 생선가시로 인한 아사(爲魚骨梗喉 不食而卒)로 설명한다. 

그러나 광평대군은 온 몸에 물집이 생기는 호환마마인 창진으로 숨졌다. 세종은 창진에 걸린 아들의 치료를 위해 여러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효험을 얻지 못했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급성 발진성 질환인 창진은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도 높다. 전통시대에는 사망률이 30% 전후에 이르렀다. 특히 출혈성 두창은 대부분 사망했다. 한 사회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위력이다. 실제로 인디언 아즈텍 문명의 파멸 원인 중 하나는 스페인군이 옮긴 창진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세종은 창진으로 줄곧 마음을 졸였다. 동생인 성녕대군이 불과 12세에 창진으로 숨졌고, 세종 6년에는 왕자가 창진에 걸려 대궐에 비상이 걸렸다. 13년에는 수양대군이, 22년에는 금성대군이 심히 위독한 상태에 이르렀다. 26년에는 대궐에 창진이 발생해 안맹담의 집으로 이어(移御)하였다. 29년에는 7살 손자인 원손(단종)이 빈사(瀕死) 상태에 빠졌다.

세종은 창진에 걸린 왕자와 백성의 완쾌를 위해 탕약 치료, 위생 점검, 산천 제사의 방법을 택했다. 탕약 치료는 대궐에서는 내의원들이 왕자 치료에 전념했고, 도성 백성들에게는 의원 지정과 증세에 따라 약을 내렸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환경정비는 대궐의 동물 사육 금지, 백성의 공공근로사업 중단, 사망자 매장을 지시했다. 하지만 전염병을 완전히 물리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정성을 다해 하늘에 호소했다. 영추문(迎秋門)을 밤에도 열어 창진이 물러나기를 빌었고, 산천의 신(神)에게 마음을 다하여 기도(祈禱)하였다.

세종 때의 창진 치료는 조선 후기 순조에게 한 처방에서 유추할 수 있다. 17세에 창진을 앓은 순조에게 처방된 약은 가미활혈음과 가미귀룡탕이다. 가미활혈음으로 응급조치를 한 뒤 귀룡탕으로 원기를 회복하게 했다. 그 결과 순조는 10일 만에 병석에서 일어났다. 순조는 수두와 홍역을 앓을 때는 해기음과 승마갈근탕을 복용했다.

창진은 동의보감과 연관이 있다. 허준은 광해군이 왕자일 때 창진을 치료한 게 인연이 돼 중용됐다. 훗날 한의학의 집대성인 동의보감을 집필할 수 있었다. 동의보감에서는 창진 증상을 ‘안면 건조, 뺨과 눈의 홍조, 하품, 가슴 답답, 오한과 발열, 기침, 재채기, 가위눌림, 발끝냉증, 수면 중 놀람, 다면(瘡疹候者, 面燥腮赤, 目胞亦赤, 呵欠煩悶, 乍凉乍熱, 咳嗽噴嚔, 足梢冷, 夜臥驚悸, 多睡)으로 설명했다. 

또 두창 예방법으로 12월에 채취한 매화(花) 복용을 들었다. 매화를 응달에 말려 만든 환(丸)을 매일 한 알씩 좋은 술로 녹여서 먹도록 한 것이다.

한의학에서 창진을 비롯한 전염성 질환에 많이 쓰는 처방은 다음과 같다. 승마갈근탕, 연교승마탕A(連翹升麻湯), 연생제일방(延生第一方), 삼소음(蔘蘇飮), 삼사단(三蛇丹), 신수환골단(神授換骨丹), 감로음자(甘露飮子), 우황고(牛黃膏), 소풍청영탕(消風淸營湯), 인삼강활산(人蔘羌活散), 당귀질려전(當歸蒺藜煎), 쌍해산(雙解散), 비전희두탕(秘傳稀痘湯), 작약질려전(芍藥蒺藜煎), 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 백수산(百壽散) 등이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최주리 한의사  subhuti@hanmail.net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meconomynews.com
<저작권자 © 시장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