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3> 왕들의 이질과 백성의 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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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3> 왕들의 이질과 백성의 역리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6.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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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SBS '뿌리깊은 나무'

"임금이 우부대언 김자를 개성으로 보내셨다. 이질(痢疾)로 고생하는 사신을 문병하게 하고, 약품을 내리셨다" <세종 5년 4월 1일>

세종 5년에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입국한 뒤 이질에 걸렸다. 세종은 개성에서 치료중인 사신에게 이질 약품을 보낸다. 이질은 급성 감염성 질환이다. 시겔라(Shigella) 균이 대장과 소장에 침범해 복통, 설사, 혈성 설사, 점성 설사, 발열, 잔변감 등을 일으킨다. 주로 날씨가 따뜻한 계절에 시작돼 가을까지 영유아와 성인에게 발생한다. 여느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비위생적 환경이 큰 원인이다. 식수, 음식, 오물 등을 다루는 손발의 위생이 미흡하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조선을 비롯한 옛 시대에는 공중위생과 개인위생이 열악했다. 이로 인해 효종 6년 10월에는 함경도 북청에서 150여 명, 현종 9년 8월에는 충청도 덕산에서 100여 명이 죽기도 했다. 이질은 왕족과 고관들도 피하지 못했다. 정종은 등극 첫 해에 3개월 동안 이질을 앓았고, 태종은 11년 7월 2일 조회 때 신하들의 보고를 받지 않았다. 신하들에게 이질이 전염될까 염려한 까닭이다. 15년 6월 24일에는 이질이 심해 종친들과 대신들이 부랴부랴 입궐해 문병도 했다.

세종도 실록에 몇 차례 이질로 고생한 기록이 보인다. 세종은 7년 윤 7월 10일에는 이질로 인해 명나라 사신 접견을 연기한다. 여러 날 이질로 힘들어한 임금이 사신에게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했다. 임금은 보름 뒤에 사신을 따라 온 요동의 의원 하양으로부터 진찰을 받는다. 진단은 ’상부(上部)는 성하고, 하부는 허(虛)하다‘고 나왔다.

성종은 약한 이질 증세를 꾹 참고 버텼다. 밤에 목이 마르고, 기침도 했지만 어의를 부르지 않았다. 이에 승정원에서 아뢴다. 

"성상의 이질이 낫지 아니하고, 후설(喉舌)이 건조합니다. 전교를 듣고 약을 쓰는 것과 진찰한 뒤 처방하는 것은 정밀함에 차이가 있습니다. 자주 의원을 인견(引見)해서 기맥(氣脈)을 자세히 진찰 받으시옵소서" <성종 25년 12월 2일>

이질의 예방을 위한 1차 방법은 손의 위생이다. 음식 섭취, 용변 전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게 효과적이다. 또 감염된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게 좋다. 옛 사람도 격리를 생각했다. 태종은 이질이 걸렸을 때 신하들과의 만남을 피했고, 세종도 외부인과의 접촉을 삼갔다. 담대한 성격의 태종은 이질을 석전을 보면서 잊기도 했다. 신하들이 피로를 우려하자, 태종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 병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세조 때 정난공신인 홍윤성은 이질을 소주로 다스렸다. 성종이 이질을 앓는 그에게 소주를 내리고, 약과 함께 조금씩 마시도록 했다. 여름철 설사는 찬 것과 날 것을 많이 섭취한 것임을 감안한 조치다. 소주로 장(腸)의 온도를 높이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킨 것이다. 단종 때의 효자인 김극일은 이질에 걸린 아버지의 곱똥의 달고 씀(嘗其甛苦)을 혀로 맛보며 간호했다.

한의학에서는 이질 원인을 외적인 요인을 일컫는 감수외사(感受外邪), 정신적 충격인 내상칠정(內傷七情), 음식으로 인한 식음소상(飮食所傷), 비(脾)와 신(腎)의 허약 등으로 본다. 허준은 신찬벽온방(新纂辟溫方)에서 ‘도랑의 물이 빠지지 않아 더러운 오물이 씻겨나가지 못하면 훈증(薰蒸)되어 온역이 생긴다’고 하였다. 한의서에는 이질을 적리(赤痢) 혈리(血痢) 적백리(赤白痢) 농혈리(膿血痢) 기리(氣痢) 역리(疫痢) 등으로 표기했다. 동의보감 대변조(大便條)에서는 역리(疫痢)를 ‘일방일가(一方一家)안의 상하(上下)에 전염된다. 어른이나 아이 구분 없이 증상이 비슷하다’고 했다.

치료는 침습된 장의 해로운 내용물 제거, 기운의 조절, 화혈(和血)을 해야 한다. 처방약에는 도적지유탕(導赤地楡湯), 가감평위산(加減平胃散), 지유산(地楡散), 고장환(固腸丸), 온육환(溫六丸), 수자목향원(水煮木香元), 사백안위음(瀉白安胃飮), 강묵환(薑墨丸), 수련환(茱連丸), 소주거원(小駐車元), 황련아교원(黃連阿膠元)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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