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국회 움직인 '을'의 절규... 생계형법제화 농성 49일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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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국회 움직인 '을'의 절규... 생계형법제화 농성 49일 발자취
  • 김흥수 기자
  • 승인 2018.06.0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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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천막농성 49일간의 기록

지난 4월 10일 소상공인연합회는 국회 앞 가로공원 중앙에 천막을 설치했다. 소상공인생계형 적합업종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노숙 농성을 하기 위해서다. 생계형 적합업종이란 상시근로자 5~10인 미만 소상공인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생계영위에 적합한 업종을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73개 품목을 지정해 권고사항으로 관리·운영해 왔다. 그러나 지난 해 49개 품목의 권고기간이 만료되면서 제과점업 등 서비스업 19개 품목을 포함한 24개 품목만 유지되고 있었다. 이 업종들 또한 올해 안으로 기한이 속속 만료될 예정이다. 민간자율 합의에 기반하고 법적 강제성이 없어 영세 소상공인 보호에 한계가 있어 적합업종에 대한 법제화가 꾸준히 요구됐다.

천막농성을 지휘한 소상공회 최승재회장은 “720만 소상공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들이 사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달라”고 호소해 왔다. 이러한 농성의 결과물로 지난 25일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천막농성이 이어졌던 49일동안 릴레이농성 참여 인원은 수백명에 달했다. 천막을 설치한 첫 날에는 세찬 비바람으로 인해 천막이 주저앉아 버렸다. 천막에 이부자리를 깔고 노숙을 하면서도 농성기간 내에는 단 한 시간도 천막을 비우지 않았다. 40대 중년부터 70대를 훌쩍 넘긴 고령의 자영업자들도 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다. 720만 소상공인과 가족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농성기간동안 천막을 찾았던 거물급 정치인만 해도 10여명에 달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비롯해 20대 국회 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장병완 위원장과 소상공인연합회의 마스코트라 불리우는 바른미래당의 이언주 의원, 자유한국당의 이완영의원 등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지켜주기 위한 선량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외에도 서울 금천구청장에 도전했던 더불어 민주당의 최규엽 예비후보를 비롯해 서울 한국외식업중앙회 마포지회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의원에 도전하는 자유한국당의 소영철 후보 등 지방선거를 앞 둔 정치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처음 천막을 설치할 때만 해도 법제화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드루킹 댓글사건으로 인한 특검을 놓고 여·야가 정쟁을 벌이면서 민생법안 처리가 하염없이 뒤로 밀려났다. 기능부전에 빠진 식물국회가 재현된 것이다. 

천막농성과 함께 국회 앞에서는 민생 목소리를 전달하는 행사가 수차례 이뤄졌다. 산자위 법안소위 파행을 규탄하고 적합업종 법제화의 당론화 채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가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국회는 정쟁에 몰입하며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비대위는 긴급회의를 갖고 대규모 집회를 추진했다. 소상공인 수천명이 집결해 여의도 공원에서 집회를 하고 국회 앞으로 행진한 후 밥숟가락을 집어던지는 퍼포먼스를 행동에 옮겼다. 지난 14일 벌어진 대규모 집회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국회에 전달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국회 앞에 내동댕이 쳐진 수천개의 숟가락은 소상공인들의 절규가 담긴 외침이었다.

지난 25일 여야가 드루킹 특검법 출구전략을 찾으며 실타레가 풀리기 시작했다. 결국 국회는 적합업종 만료를 한 달여 앞두고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49일간 릴레이 농성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비록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원 제도의 취지는 대기업으로부터 소상공인을 위한 '보호막‘을 두르겠다는 것이지만 오히려 전문화된 중견기업이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최승재 회장도 "오히려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성장사다리를 저해하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질 수도 있다"며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고, 이런 많은 부분에서 (소상공인 단체가) 더 책임감을 강요받을 수 있는 소지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특별법상 소상공인 회원수가 90% 이상인 단체로 적합업종 신청자격을 한정해야 할 것“이라며 ”그래야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이름에 걸맞은 명실상부한 특별법으로 거듭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까지 천막을 지킨 한 소상공회 관계자는 “민초들의 목소리를 국회에 전달하는 과정이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 몰랐다”고 토로하며 “법제화는 이뤄졌지만 현행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도록 시행령을 제대로 만들어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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