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석수시장, 우리 이야기 담은 미술관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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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석수시장, 우리 이야기 담은 미술관 '변신'
  • 김진황 기자
  • 승인 2016.07.2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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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예술가 모여 벽화 그려
▲ (좌)다국적 작가들이 모여 한국 음식을 만들고 있다. (우) 시장 벽면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스톤앤 워터' 작가

시장통으로 예술가들이 몰려오고 있다.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이정도면 해외시장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이곳은 안양 석수시장 얘기다. 시장과 예술인들의 수상한 만남, 이를 파헤치기 위해 안양으로 떠나보자.

석수시장의 첫 이미지는 여느 전통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조금 단출한 모습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이 이런 평범한 시장을 왜 찾는 걸까?”라며 궁금증을 느낄 찰나, 시장 곳곳에서 숨은 보석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석수시장 아트 프로젝트(SAP, Seoksu Art Project)다. 예술가들이 시장의 빈 점포를 자신만의 창작 스튜디오로 바꾸는 것이다. 생명력을 잃어버린 공간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공간을 살리고 문화도 창출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1석 2조다.

특이한 사항은 외국인 작가들까지 참여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독일, 뉴질랜드 등 국적도 다양하다. 여기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국내 작가들까지 더해지니 ‘국제적 미술관’이 따로 없다.

다국적 예술가들은 서로 도와가면 케케묵은 먼지를 제거하고 버려진 가구들을 주어다 스튜디오를 꾸몄다. 마치 마술을 부린 듯 어두컴컴한 점포가 화사한 작업실로 변신했다. 작가들이 정착하면서 시장은 현장 미술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 시장 상인들의 초상화가 시장 곳곳에 걸려있다.

작가들은 상인들의 이야기를 시장에 표현해냈다.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그려 시장 벽면을 장식했다. 상인들의 표정 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사실감을 자아낸 그림이다. 상인들도 오며가며 그림을 보고 ‘빵빵’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상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작가들의 노력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벽면에는 ‘석수시장 기쁜 소식’이라는 포스터가 있다. 손 글씨로 써내려간 글에는 시장 상인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떡집 엄희녀씨는 석수시장에서 13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석수동 럭키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엄희녀씨의 아들이 12월에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결혼식은 안양에서 하고 결혼사진촬영은 서울 청담동에서 하기로 예정되어 있답니다.”

포스터의 문구들은 상인들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소식지를 통해 옆 가게 근황을 알 수 있어 상인들끼리 유대감을 다지기에 좋다. 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상인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다가갈 수 있는 잠정이 있다.

시장은 작가들과 상인들이 주축이 돼 조금씩 변해갔다. 예술이 시장에 버무려지는 생생한 현장이 연출된 것이다.

▲ 안양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시장 입구를 꾸미고 있다.

그러다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작가들과 나이 지긋한 상인들이 서로를 챙겨주며 의지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현소영 프로젝트 매니저는 “상인분들은 처음 외국작가들을 보고 낯설어했어요. 심지어 가게에 찾아오면 창피해서 도망가시는 어머니도 있었죠”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50~60대 어르신들에게 높은 코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작가들이 어눌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상인들이 어깨를 두들겨주기도 응원을 해준다고 현 매니저는 말했다. 작가들과 상인들이 누구보다도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심지어 작가들과 상인들이 만나 상생을 모색하는 희한한 장면도 연출됐다. 작품들을 구경하러 오는 손님들이 생겨나면서 상인들도 석수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게 된 것이다.

상인들도 “우리시장이 멋있어지니 손님들이 좋아한다”며 흐뭇해했다. 특히 작가들에게 떡을 갖다 주며 “포스터에 들어갈 내 얼굴도 예쁘게 좀 그려죠~”라고 부탁하는 어르신들도 생겨났다.

시장 사람들이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발 벗고 나서자 석수시장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됐다. 장보러 오거나 구경하러 온 손님들도 즐겁고, 상인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한 해 한 해 거듭될수록 시장은 특별한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 사진 전시를 구경 중인 안양시 주민들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석수 프로젝트는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다양한 예술프로그램은 시장 중심에 위치한 스톤앤 워터(Stone&Water) 사무실에서 이뤄진다. 스톤앤 워터 사무실은 석수 시장을 영어로 직역한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여기는 문화 행사와 교육 등을 기획하는 석수시장의 핵심 장소이기도 하다. 

석수 프로젝트는 지난해까지는 안양시와 경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등의 후원을 받아 진행됐다. 올해부터는 문화관광부에서 주관하는 '문전성시'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 받게 된다. 석수 시장은 문화와 어우러져 더욱 활발한 문화 놀이터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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