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29> 황희 정승과 어지러움증인 현훈 - 시장경제신문 | 메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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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29> 황희 정승과 어지러움증인 현훈
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허훈증의 치료는 원인에 따라 한약치료, 침구치료, 물리치료 등 다양하다. 한의학의 탕약치료는 몸의 균형을 잡는 기운의 보충, 소화기 강화, 정서적 안정 등과 기의 흐름을 강화하는 침구요법을 등이 있다. ⓒ픽사베이

“신의 나이가 90에 가깝습니다. 공이 없이 녹을 받고 있습니다. 신을 파직하시어 하늘의 꾸지람에 답하시옵소서.” <세종 31년 5월 27일>

세종 31년은 가뭄이 무척 심했다. 물이 귀해 농사는 물론이고 생활용수 확보도 쉽지 않았다. 당시 천재지변은 정치를 잘못한 데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임금은 하늘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기우제, 사면령 조치 등과 함께 근신을 한다. 이때 영의정 황희가 파직을 청했다. 임금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행동이다. 영의정 파직으로 정치쇄신 의지를 하늘에 고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황희에게는 다른 뜻도 있었다. 이 참에 정계은퇴를 하고 싶어 했다. 세종은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4시면 일어난다. 부지런하고, 철두철미한 임금을 모시는 신하들은 동이 트기 전에 입궐해야 한다. 세종은 일을 맡기면 끝까지 책임지게 한다. 능력 있는 신하들은 면직하지 않는다. 평생 일을 하게 한다. 노년을 편안히 보내려는 신하는 병과 나이를 핑계로 사직을 청한다. 

그러나 사표 수리는 로또복권 당첨처럼 확률이 낮았다. 임금은 “몸을 조리하면서 일을 하라”며 사표를 반려했다. 변계량, 조말생, 황희, 최윤덕, 반안신, 남간, 이직, 곽존중, 유관, 권제, 허조 등은 수차례 사직이 거절된다. 결국 조말생 등은 은퇴하지 못하고 공직자 신분으로 죽음을 맞는다.

황희도 가뭄 핑계를 포함해 10번 이상 사직을 청했지만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나마 87세에 조건부 치사(致仕)가 허락된 게 다행이었다. 치사는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세종은 황희의 치사를 윤허하며 국정자문에는 임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황희는 무려 24년 동안 정승으로 재직했다. 영의정으로는 18년 5개월, 근무일로는 6천 562일을 일했다. 조선시대 영의정 평균 재직일수는 2년 7개월(926일)이다. 

일을 몰고 다니는 임금을 보필하는 신하, 특히 노대신이 많이 앓은 게 현훈(眩暈)이다. 정신이 흐려지고 어지러운 증상이다. 현(眩)을 파자하면 눈 목(目)과 검을 현(玄)의 조합이다. 훈(暈)은 해달 무리가 떠 있어 어지럽다는 의미다. 머리가 핑핑 돌아가면서 어지럽고 심하면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이다.

이는 귀속의 내이나, 혈압을 유발하는 뇌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속귀인 내이 이상은 머리가 빙빙 도는 회전성 증상, 고혈압이나 저혈압은 앞이 캄캄하며 쓰러질 듯한 비회전성의 증상 가능성이 있다. 

황희를 비롯한 몇 대신이 현훈을 이유로 파직을 요청한다. 

"신 황희는 근일에는 귀가 어둡고, 노병(老病)이 심해지고, 오랜 종기가 낫지 아니하고, 현훈증이 더합니다. 생각이 흐려 정사를 밝게 하는 바가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신의 직(職)을 파(罷)하여 주옵소서.“ <세종 18년 6월 2일>

판중추원사 안순은 세종 19년 7월 22일 상소에서 “잘 먹지 못하고, 어지럼증이 심하고, 다리와 무릎이 약해 잘 걷지 못하는 중증”이라며 “ 한직에 보내어 남은 생을 보전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소연한다. 개성부 유수 권맹손도 “현훈증, 편두통, 관절통, 요통 등이 수시로 발작하지만 출근하느라 병을 치료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사직을 청한다.

세종시대 노 대신들의 현훈증은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다. 현운은 선천적인 귀나 뇌의 기질적 이상 외에 몇 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상성하허(上盛下虛)다. 한의학에서는 수승화강(水升火降) 관점이 있다. 물처럼 찬 기운은 올리고, 불처럼 뜨거운 기운은 내리라는 뜻이다. 오장육부에서 심(心)은 불, 신(腎)은 물로 여겨진다. 각 장기는 보완하면 건강하고, 같은 성질이면 병이 된다. 심에 뜨거운 기운은 독이 되고, 신에 찬 기운은 병이 된다.

인체는 자연스럽게 몸의 위쪽에 열이 몰리고, 아래쪽에는 찬 기운이 많게 된다. 이때 위쪽에는 찬 기운을 보내고, 아래쪽에는 따뜻한 기운을 내리면 몸의 조화가 이뤄진다. 이 같은 균형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운, 이명을 비롯하여 안구충혈, 건망, 가슴이 화끈하고 답답한 심번, 불안한 꿈을 꾸는 다몽 등이 발생한다.

둘째, 스트레스다. 현훈은 단순한 어지러움 보다는 불면, 구토, 두통, 이명, 가슴 두근거림, 안구통증 등이 복합적으로 올 때가 많다. 이는 정신적 부담이 몸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실제로 걱정이 많은 사람은 현훈이 더욱 심해진다. 정신을 주관하는 심장이 부담을 받은 탓이다. 신경을 많이 쓰면, 불면이 되고, 면역력 저하가 나타난다.

다혈질의 숙종대왕은 세자시절부터 화증(火症)이 있었다. 등극 후에는 국정으로 더욱 스트레스를 받아 분노, 불안, 불면, 안면홍조와 함께 어지럼증으로 고생했다.

셋째 노화다. 나이가 들면 모든 기능이 떨어진다. 오장육부의 능력이 저하되면서 평형감각도 쇠퇴한다. 판중추원사 안순이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걷기 힘든 증세와 함께 이명을 이야기 한 것이 노화로 인한 현훈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체력이 약해지는데 상성하허를 다스리지 못하고 스트레스도 가중되면 허훈증이 나타날 수 있다. 세종시대의 노대신이 허훈증에 시달린 것은 과도한 업무, 정신적 부담, 노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허훈증의 치료는 원인에 따라 한약치료, 침구치료, 물리치료 등 다양하다. 한의학의 탕약치료는 몸의 균형을 잡는 기운의 보충, 소화기 강화, 정서적 안정 등과 기의 흐름을 강화하는 침구요법을 등이 있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최주리 한의사  subhut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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