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웨스트엔드 데뷔 박영주 "서울대 간판? 오로지 실력" -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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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웨스트엔드 데뷔 박영주 "서울대 간판? 오로지 실력"뮤지컬 '미스 사이공' 英 투어 '투이' 역의 첫 번째 커버 배우로 활약
[소소+]는 ‘소확행’(小確幸: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찾기가 화두인 트렌드를 반영한 코너입니다. 소소한 밥상이나 구경거리, 거창하지는 않지만 가슴을 울리는 스토리, 이름 없는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뉴스와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맨 왼쪽이 '투이' 역의 박영주 배우. 사진=박영주 제공

[꿈의 대화 - 뮤지컬 배우 박영주] 미친 짓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25살의 늦은 나이에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는 선택에 주위의 질책과 걱정도 샀다. 그럴수록 더 매달리고 공부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던 그에게 뮤지컬의 신은 미소를 지었다.

"주위에서 서울대 나온 게 아깝다고 후회되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디션에 가면 회사 마케팅 팀에 들어올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종종 받죠. 이런 식상한 질문들을 그만 듣고 저를 배우로 봐주길 바라요."

뮤지컬 배우 박영주(34)가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박영주는 '미스 사이공'에서 베트남 장교 '투이' 역의 첫 번째 커버를 맡아 지난 2일(현지시간)부터 12일까지 맨체스터 팰리스 극장 무대에 섰다. 무명배우로 출발한 그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실력과 노력으로 일궈낸 당당한 결과였다.

공연계에서 '커버(cover)'란 대타를 의미한다. 주역이 부득이하게 공연 출연이 어려운 경우 이들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다. 구멍난 배역을 메운다는 의미에서 '커버'로 불리며, 노래와 대사, 춤 등 모두 완벽하게 갖췄지만 언제 무대에 설지 모른다.

박영주는 지난해 제작사 캐머런 매킨토시 컴퍼니의 까다로운 감식안을 통과하고 '투이' 역의 두 번째 커버 배우로 발탁됐으며, 그해 11월 첫 번째 커버 재계약을 제안받았다. 기존에 첫 번째 커버가 공연을 그만둬서 자동적으로 두 번째 커버가 첫 번째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두 번째 커버에서 첫 번째로 승격하는 경우는 드물다.

박영주는 최근 이메일 인터뷰에서 "당시 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거의 1년을 기다리면서 영어 발음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캐릭터 연구, 발성 적인 부분 등 다양하게 시도해 보면서 저만의 투이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죠"라며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특히 킴 역할을 하고 있는 김수하 배우와 같이 영국 무대에서 주연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많이 벅찼습니다"라며 "2019년 3월까지 이어지는 투어 기간에는 주역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 무대에 오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12일 낮 공연 무대에 함께 오른 김수하와 박영주 배우. 사진=박영주 제공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미스 사이공'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모티브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미국인 병사 크리스와 현지여인 킴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투이'는 킴의 정혼자로 사랑과 집착의 경계선상에 있는 인물이다.

크리스와 사랑에 빠진 킴에게 거절당한 후 베트남 장교가 됐지만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진성으로 3옥타브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뛰어난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배역이기도 하다. 2014년 홍광호(36)에 이어 2015년 조상웅(35)이 웨스트엔드에 진출해 '투이' 역을 연기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투이를 공포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등 너무 서양인의 시각으로 해석된 인물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요. 커튼콜에서 유일하게 야유를 받는 캐릭터에요. 저도 받아 봤고요. 투이가 공연 전체에서 12분 등장하는데, 인물에 대한 설명이 관객들에게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악역이지만 누구보다 외롭고 킴을 사랑하는 방식이 서툴다고 생각해요. 킴에 대한 순애보를 가진 절절한 남자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장교라는 군인 신분에서 오는 딱딱하고 단편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투이를 만들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영주는 2008년 교환학생으로 독일에서 공부할 당시 런던에서 라민 카림루(40)가 나오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웠으며, 2009년 '모차르트'의 앙상블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뮤지컬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움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이에 2016년 2월 비엔나 콘저바토리움의 뮤지컬과에 오디션을 보고 입학했다.

같은 해 9월 뮤지컬 '미스사이공' 영국 투어 오디션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서를 넣었다. 9월 말 첫 오디션을 보러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유럽에서 동양인인 할 수 있는 뮤지컬은 '미스 사이공', '왕과 나'와 같은 작품으로 한정돼있기 때문에 기회를 꼭 잡고 싶었다.

박영주 배우의 만화가 동생이 그려준 그림. 사진=박영주 제공

1차 오디션은 가창 시험으로 자유곡 2곡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중 '갓세마네(Gethsemane)'와 '오페라의 유령'의 '뮤직 오브 더 나이트(Music of the Night)'를 준비해 불렀다. 이어 11월 2차 오디션을 봤고, 2017년 3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최종 오디션 합격은 제작자 카메론 맥킨토시가 직접 영상을 보고 결정해요. 마지막까지 그 배역을 뽑는다기보다 '찾는다'는 개념으로 거의 1년에 걸쳐 오디션과 캐스팅이 이뤄진다고 들었어요. 오디션을 본 후 기다림이 워낙 길어서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감사하고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한 가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박영주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의 노랫말처럼 '희망조차 없고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멈추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겠다'는 진정한 용기를 보인다.

"학교생활 중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 씨가 특강을 한 적이 있어요.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일화를 말씀하시면서 누군가가 여러분들에게 왜 이 일을 하냐고 물어봤을 때 '이 일이 내 심장을 뛰게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대학생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제 가슴에 꽂혔고, 그게 뮤지컬이더라고요."

"서울대 출신, 가정이 있는 늦깎이 뮤지컬 배우 등의 이슈보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제 신념이 '그 일에 절실한 만큼 노력하면 언젠가 반드시 이뤄진다'에요. 이 신념대로 남은 11개월을 보낼 생각이고요. 관객들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배우, 스태프들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겠습니다."

신성아 기자  mistery37@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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