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임대아파트에 외제차... 분양전환가 논란 속 따가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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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임대아파트에 외제차... 분양전환가 논란 속 따가운 시선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8.05.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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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차 주차장에 즐비… 대부분 소나타급 이상
경기도 한 임대 아파트, 페라리 마세라티까지...
전문가들 "억대 시세차액 노리는 위장전입자 색출해야"

“부자로 보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1억이 넘는 외제차도 많이 보이고요. 입주자격 유지를 위해 위장 이혼까지 한다는 얘기도 있더라구요.”(서울 성북구 임대아파트 입주민 L씨)

최근 임대주택 입주민들을 중심으로 ‘분양전환가’ 논란이 일고 있다. 주변 아파트들의 분양가격이 급상승하자 기존에 살던 임대주택의 감정평가액이 너무 높아졌다며 분양가격을 낮춰 달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10년 임대주택의 분양가는 감정평가 금액이하로 책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난 8일 서울 교대법원 앞에서 '10년 임대주택 분양전환가' 개선을 촉구하기 위한 입주민들 집회가 있었다. 구체적인 개선방안 요구는 나오지 않았으나 ‘10년 임대주택 분양전환가’를 '5년 임대주택 계산방식'으로 바꿔달라는 주장이다. 일부 다른 입주민들은 협상가(입주민, 건설사 협상), 공사원가 등으로 바꿔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5년 임대 주택 분양전환가로 계산법을 바꿀 경우 입주민들은 기존에 살던 임대 아파트를 주변 시세 보다 30% 가량 싸게 분양받을 수 있다. 10년 임대 주택 분양전환가는 ‘감정가 이하’로만 정하도록 법에 나와 있어 주변 시세와 거의 비슷하게 책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30% 싸게 분양 받는다는 것은 30%의 시세 차익을 입주민들이 얻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LH와 민간건설사들은 이 차익에 대해 “법에 나온대로 집행해야 한다”, “법을 바꾸더라도 소급 적용은 안 되고, 신규 건설 주택부터 적용해야 평등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입주민들은 "소급적용이 되도록 법을 고쳐서라도 생존권을 보장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논란이 가장 거세게 발생하는 곳은 ‘판교’다. 이곳은 10년 임대주택의 분양전환 시기가 임박한 지역이다. 3.3㎡당 1200만원 선이던 분양가는 최근 2700만~3000만원까지 올랐다. 내년에만 4천여 가구가 쏟아질 전망이다. 여러 언론에서도 대표적인 논란 지역으로 꼽는다.

좀 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판교로 찾아가봤다. 8일 20시30분 판교의 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자 분양전환가를 낮춰달라는 의미의 새빨간색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이들은 주변시세가 너무 올라 분양권을 받아도 기존에 살던 집을 구입하지 못하고, 내쫓겨나야 하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분양전환가 개선에 대한 입주민들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판교에 위치한 한 임대 아파트 지하주차장 모습.

그런데 현수막 옆으로 주차된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니쿠페, BMW, 벤츠 등 외제차였다. SM5와 소나타도 주차돼 있었다. 차들이 많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일부 입주민의 차량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외제차들이 너무 다양하고, 대수도 많았다.

BMW부터 디스커버리, 포드 익스플로러, 폭스바겐, 닛산, 볼보, 닛산, 아우디, 푸조, 도요타, 벤츠, 레인지로버, 지프 등 외제차들이 즐비했다. 세단급인 알페온, K9, 그렌져, 제네시스 등도 많았다. 차들만 놓고 보면 서민이 사는 아파트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판교 임대아파트에 앞서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만나러 찾아가 봤다. 이곳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BMW, 벤츠 등의 외제차는 물론 페라리, 마세라티 등 고가의 차들도 주차돼 있었다. 차라리 소나타급 이하의 차종을 파악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였다.

경기도에 위치한 임대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모습.

판교 등은 요즘 뜨고 있는 도시로 아파트 가격이 매우 높은 곳 중 한 곳이다. 특정지역의 문제로만 볼 수 있다. 때문에 서울 성북구에 있는 임대아파트도 찾아가봤다. 판교 만큼은 아니지만 벤츠와 BMW가 주차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남‧서초 지역의 임대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대부분이 외제차들로 주차장을 채우고 있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임대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모습.

주변 부동산 업계의 반응을 살펴봤다. 운중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 집 마련보다는 시세차익이 목적이신 분들도 많죠. 이야기 나눠 보면 금새 알 수 있어요. 현재 주변 시세만 놓고 보면 실제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 건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임대아파트 입주민은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문제가 없을까. ‘공공주택 입주자 보유 부동산 및 자동차 관련 업무처리기준’에 따르면 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소득과 자산 요건 등을 충족해야 한다. 이중 자동차의 가격은 2850만원 이하여야 한다. 2018년도 기준으로 10년 전인 2000만원 초반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마디로 이런 차를 가지고 있으면 입주가 불가능하다. 또 재계약 시에도 자격은 박탈된다.

그래픽 디자인=조현준

하지만 LH는 외제차를 타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LH 관계자는 “현재로선 우리 인력으로 고재산가들을 색출해 낼 수 없다. 렌트나 회사명의 차량 등은 걸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임대 주택 성격과 입주자 유형에 따라 (자동차 액수를)따로 정하지 않는 주택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민’에 대한 국민 정서는 알겠지만 벤츠를 타는 위장 서민을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는 것이다. 또, 입주 유형에 따라 외제차 보유 유무는 상관없다는 의미다.

광교에 10년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A씨는 "서민들은 그럼 외제차를 타지 말라는 것이냐. 일부 주민의 사례를 전체화해서는 안 된다. 이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일부다. 다들 서민이고,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A씨 말이 맞다. 임대 주택은 입주할 때 까다로운 재산, 소득 심사를 통해 입주한다. 대부분이 서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외제차가 이렇게 많다면 임대 주택을 바탕으로 경제적 여건이 좋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분명한 것은 일부 주민이 억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이를 임대아파트 주민모두 서민이 아니라고 확대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억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임대주택 주민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 서민들의 시선 그리고 제도를 만드는 정부의 시선이다.

지난해 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주거부문 재정지출 현황과 저소득층 주거지원정책의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에 월 소득 430만원 넘는 중산층이 22%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민들은 ‘임대사업자 돈놀이에 애꿎은 서민 쪽박찬다’, ‘서민들 등쳐먹는 공공임대주택 필요없다’, ‘서민들 등친 돈으로 해외기부가 웬말이냐’, ‘건설사 대표 무기징역, 기업 해체’ 등 피켓을 들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급외제차 몰고 다니는 위장 서민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고울 리 없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서민임대아파트의 고급외제차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나 부정입주 색출 등 방지논의가 있어 왔지만 현 상황을 보면 개선된 것 같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산을 감추고 위장이혼까지 일삼는 불법입주자에 대해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며 “진짜 서민입장에서 보자면 복장 터질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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