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27> 세종과 유밀과 사연, 식약동원 음식 약반
상태바
[세종실록과 왕실의학] <27> 세종과 유밀과 사연, 식약동원 음식 약반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5.06 1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년은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방언으로 약(藥)은 꿀(蜜)이다. 그러므로 밀밥(蜜飯)을 약밥(藥飯)이라 하고, 밀주(蜜酒)를 약주(藥酒)라 하며, 밀과(蜜果)를 약과(藥果)라 한다. =유튜브 캡쳐

"양녕대군이 매사냥을 위해 과천과 수원에 이르니, 두 고을 수령이 대체(大體)는 돌아보지도 않고 유밀과(油蜜果)를 성대히 준비했고, 혹은 창기(娼妓)로 하여금 풍악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유밀과(油蜜果)는 이미 금령(禁令)이 있는데, 관리가 국법을 감히 어기었습니다.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종 24년 10월 15일>

장령 이겸지가 양녕대군에게 유밀과를 접대한 과천과 수원 수령을 탄핵한 글이다. 유밀과는 약이 되는 과자라는 의미다. 곡물, 꿀, 기름을 많이 쓰는 고급 음식이다. 왕실의 연회와 왕실의 제사, 재력 있는 집안의 혼인 등에 사용됐다. 그러나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 물가가 오르는 문제도 발생했다. 이에 고려 명종 22년(1192)과 공민왕 2년(1353)에 제조금지령이 내려진다. 

조선도 태조 때부터 유밀과 사용처를 제한한다. 세종도 왕실의 연회와 제향 외의 신하의 잔치나 사대부의 혼례에 유밀과 쓰는 것을 금했다. 그런데 수원과 과천 수령은 국법을 어기고 양녕대군에게 유밀과를 접대한 것이다. 

유밀과는 약반(藥飯), 약식(藥食)으로도 불린다. 왕실에서 인기를 끈 유밀과는 임금 시해 음식 의심도 받는다. 광해군의 사랑을 받은 김상궁이 선조 승하 당시 약밥에다 독약을 넣었다는 설이다. 연려실기술에는 김상궁과 함께 선조 시해 의심을 받는 이이첨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이첨은 귀양 명령이 내려졌으나 즉시 배소로 떠나지 않은 채 머뭇거렸다. 오래지 않아서 임금이 승하하자 곧 불려 돌아왔다. 멀리 귀양 갈 죄인으로서 어떻게 감히 버젓이 누워 길을 떠나지 않고 무언가 바랐던가. 또 어떻게 임금이 멀지 않아 승하하고 장차 부르는 명이 있을 것을 알았겠는가. 당시에 약밥(藥飯)의 의혹이 있었다.”

조선 중후기에는 많은 사람의 기호식품이 되었다. 유밀과의 맛은 특히 중국에까지 소문이 났다. 인조 때는 수원의 유밀과가 중국에서 인기였다. 목민심서의 공납(貢納)에 수원 유밀과가 소개돼 있다.

조계원이 수원부사가 되었다. 그 고을의 밀면(蜜麪)은 중국에서도 유명했다. 밀면은 약과(藥果)다. 인조가 병중에 있을 때 어주(御廚)에는 입에 맞는 것이 없었다. 환관이 사람을 시켜 그 약과를 구하니, 조계원은 대답했다. “주부(州府)에서 사사로이 헌납하는 것은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는 체모가 아니니, 조정의 명령이 아니면 안 되겠습니다.” 인조가 이 말을 듣고 웃으면서, “군신 사이지만 인척 관계다. 인정으로 생각하다.”

방언으로 약(藥)은 꿀(蜜)이다. 그러므로 밀밥(蜜飯)을 약밥(藥飯)이라 하고, 밀주(蜜酒)를 약주(藥酒)라 하며, 밀과(蜜果)를 약과(藥果)라 한다. 

조선의 대표적인 기호식품이 된 유밀과, 즉 약반의 재료 중 하나가 밀이다. 밀에 대해 지봉유설에서는 춘하추동을 거쳐 익는다. 사계절의 기운을 받아 널리 정(精)이 되고 꿀은 백약(百藥)의 으뜸이다. 기름은 살충(殺蟲)하고 해독(解毒)한다’고 설명했다.

유밀과인 약식(藥食)은 찹쌀로 밥을 지은 뒤 꿀, 참기름, 밤, 대추, 잣 등을 섞어서 쪄낸 음식이다. 이 재료들은 고려시대에 정착되었다 이색이 쓴 시에 약식의 원료로 꿀, 기름, 밤, 잣, 대추가 열거돼 있다. 조선후기의 음식책인 규합총서에는 제조 설명이 있다. 

“재료는 찹쌀 한 말에 잘 익은 대추 한 말, 밤 한 말 한 되다. 씨를 제거한 대추는 서너 조각, 밤은 세 쪽씩 낸다. 쌀은 반나절을 담근다. 너무 오래 담그면 불기 때문이다. 찜솥에서 쌀알이 익으면 바로 꺼낸다. 대추와 밤을 섞고, 꿀 한 주발과 참기름 한 되, 진한 간장 한 종지를 쳐 고루 섞는다. 시루에 안치하고, 밤과 대추를 사이사이 뿌리고, 찹쌀가루를 위에 덮어 찐다.” 

조선 말기에 편찬된 저자 미상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는 시루에 안친 다음 메밀이나 깨를 물에 버무려 그 위에 덮는 방법도 소개돼 있다. 맛이 달고 영양가가 높은 유밀과는 삼국유사 소지왕 10년 사금갑조에도 등장한다. 정월 보름에 까마귀에게 유밀과를 주는 경주의 옛 풍속의 시작점을 알려주는 일화다. 

식약동원(食藥同原)은 음식이 약의 뿌리라는 의미다. 세종시대는 물론 우리역사 전반에 걸쳐 유밀과는 식약동원 개념으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