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실록과 왕실의학] <24> 왕실의 약치 정향포, 식치 전약(煎藥)
상태바
[세종대왕실록과 왕실의학] <24> 왕실의 약치 정향포, 식치 전약(煎藥)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4.24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전약. = 다음블로그 캡쳐

세종시대의 평안도 공물은 주로 산에서 나는 것이었다. 표범가죽 같은 짐승 가죽과 석밀(石蜜), 버섯 등의 농산물이다. 또 해산물인 숭어, 큰새우 등도 진상됐다. 이중 관심을 끄는 게 정향포(丁香脯)다. 조선 초의 어선(御饍)인 정향포는 왕실의 제사와 왕족의 음식으로 활용됐다. 정향포는 물고기와 짐승 고기를 특별히 건조하여 만든 포(脯)다. 정향포는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정향(丁香)의 기름에 저며서 생산한다. 그렇기에 귀한 음식이었다.

정향은 남쪽 나라인 중국, 일본, 유구에서 수입했다. 명나라는 태종 1년에 조선의 말 1만 필 구매 조건으로 여러 물품 중에 정향을 제시했다. 세종 때는 일본에서 거듭 정향을 바친다. 이토록 귀한 정향으로 만드는 정향포는 계속 수요가 늘었고, 백성의 부담은 가중됐다.

태종 때는 정향포 생산에 따른 고을의 어려움이 어전회의에서 제기돼 진상의 양을 줄이기에 이른다. 정향포 생산은 불상사로도 이어졌다. 태종 15년 5월 17일 금산군수 송희경이 장(杖) 1백 대를 맞는다. 송희경은 나라에 올릴 정향포를 만들기 위해 사냥꾼에게 사냥을 시켰다. 그런데 아전 두 사람이 잡은 짐승을 차지하고 바치지 아니했다. 크게 노한 송희경은 두 사람에게 곤장을 치다가 인사사고가 났다. 이로 인해 송희경이 처벌받은 것이다.

원산지가 몰루카섬으로 알려진 정향은 남아시아에서 재배된다. 약재, 향신료로 쓰이는 데 상쾌하고 달콤한 향이 특징이다. 정향의 꽃봉우리를 말린 게 계설향으로 항염, 항균, 구충 작용이 있다. 명나라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계설향은 곤륜산, 광동, 광서에서 나는 백가지 꽃(百花)을 빚어 만든다. 입에 물면 꽃향기를 풍긴다’고 설명했다. 아로마 테라피에서는 정향을 클로브라고 칭하는데 서양허브 중 항산화작용이 가장 강해서 살균, 진통효과에 탁월하다.

조선에서는 약용과 왕실 식치로 주로 활용했다. 왕의 몸을 보하는 간식인 전약(煎藥)의 재료가 되었다. 전약은 고려왕실과 조선왕실의 보양간식이다. 동국세시기에는 ‘전약은 동지에 내의원에서 만들어 진상한다. 각 관청에서도 이를 만들어 나누어 갖는다’고 기록돼 있다. 창덕궁에 전약을 고던 은(銀)솥이 있었다. 왕은 전약을 왕족과 신하들에게 나누어준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정조가 16년 12월 19일에 검교제학 오재순에게 전약을 고풍(古風)으로 내려준 문서가 있다. 고풍은 국왕이 활쏘기를 할 때 수행 신하에게 내리는 물품이나, 새로 부임한 관원이 관청의 인사 담당자에게 금품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정조는 왕의 활쏘기를 수행한 오재순에게 동지에 먹을 전약을 하사했다. 진상하는 전약에는 수입품인 정향과 계피가 필히 들어갔다. 계피는 소화를 촉진하고 몸에 열을 내는 효과가 있다. 진상용 계피는 베트남 원산지인 육계(肉桂)가 쓰였다. 

내의원에서 관장하던 전약제조법은 민간에 전해지면서 보양음식으로 바뀐다. 다양한 재료가 가감되면서 겨울철 원기를 돋우는 음식이 된다. 동지에 먹는 민속이 된 전약은 소가죽을 고아서 만든 아교를 비롯하여 꿀, 대추고, 생강, 계피, 후추, 정향 등이 들어간다.

많은 사람이 즐기는 전약은 조선 후기에는 구하기 어려운 정향과 후추의 비중이 낮아진다. 대신 아교와 꿀이 많아진다. 조선에서 사랑받은 전약은 당초 왕실의 약치에서 식치로 전환되고, 민간에서는 식치로 일반화된 것이다. 전약의 약재이자 향료제인 정향은 높은 가격으로 인해 점차 사용 비중이 낮아졌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