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법논란㊦] "이해당사자가 건물주, 자기 불리한 法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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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법논란㊦] "이해당사자가 건물주, 자기 불리한 法 만들까"
  • 김흥수 기자
  • 승인 2018.02.2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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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관료·외식업회 임원도 건물주 수두룩... 법개정 소극적
상가임대차법 10여 차례 개정 거쳐도 여전히 피해자 양산
맘상모(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페이스북 커버사진.

2003년 1월, 당시 민주노동당 중앙당은 새롭게 시행되는 상가임대차법에 대한 전화문의가 폭주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당이 주도했던 상가임대차법이 제정되고 이에 대한 해설서를 발간하자 한 언론이 해설서를 기사화하면서 기사를 본 임차인들의 문의전화가 폭주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에서 상가임대차를 담당했던 당직자는 “빗발치는 상가임대차 문의전화에 두려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상가임대차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01년 가을, 시행은 2003년 1월부터였다. 상가임대차법 필요성은 그 이전에도 간간이 제기되었으나 1997년 IMF사태 이 후 구조조정에서 내 쫓긴 사람들이 자영업 시장에 뛰어 든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자영업자 폭증으로 인해 임대시장에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다 보니 갑(건물주)의 횡포가 심해지는 ‘시장 불균형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곧 '젠트리피케이션'(임대인의 상권내몰림 현상)이란 부작용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상가임대차법 이전에도 민법에서는 ‘차임증감청구권’ 조항을 두어 임대료에 대한 적절한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으나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민법에 그런 조항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법조인들이 태반이던 시절이었다. 법안 제정 당시에 민주노동당 현역 국회의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당시 여당의원과 함께 입법청원 절차를 거쳐 상가임대차법을 제정했으나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내용 때문에 임차인들을 더 괴롭히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당시 법안 제정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민노당 당직자에 따르면 “건물주 신분인 국회의원들이 많아 상가임대차법이 왜곡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왜곡된 법조항이 환산보증금(월임차료×100+보증금) 조항이다. 환산보증금 규정(제정 당시 2억원)은 법의 적용범위를 정하는 것으로 적용범위를 벗어난 임대차 계약은 상가임대차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법 제정 당시 법무부 관료들은 ‘서민보호’가 목적인 상가임대차법에서 환산보증금 규정을 높게 하면 부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환산보증금 규모가 2억원을 넘어선 임차인이라면 서민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법무부의 논리에 밀려 상가임대차법을 ‘쥐 못 잡는 고양이’로 전락한 환산보증금 조항이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임차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어떤 법안이든 목적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으면 내용이 왜곡될 수 밖에 없으며 법안 개정을 반대하는 편에 반론의 여지를 제공하게 된다. 상가임대차법이 ‘서민보호’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한 제 역할을 해내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헌법에 명시된 재산권 보호라는 명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이나 독일은 세입자 동의 없이 세입자를 내쫓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두 나라는 헌법에 건물주 뿐만 아니라 세입자의 재산권(장사할 권리)도 인정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가임대차법은 지난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세입자의 재산권(권리금)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상가임대차와 관련된 이해관계자 대다수는 상가임대차법을 ‘서민보호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상가임대차의 피해당사자인 ‘맘상모’ 조차도 서민보호를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제정 이후 10여 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피해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건물 가진 국회의원들 때문에 법안이 변질되었다고 비난하는 당시 민노당 당직자의 주장이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상가임대차 피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외식업계 지도부 또한 같은 비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최대의 이해단체인 한국외식업중앙회(이하 외식업회)도 회장과 임원을 비롯한 지회·지부장들 거의 대부분이 건물주이기 때문이다. 

외식업회도 상가임대차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시위 때 국회앞에서 밥숟가락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잠실경기장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하는 것과는 달리, 상가임대차법 개정 요구 때는 달랑 성명서 한 장이나 짤막한 논평에 그치고 만다. '외식업회 집행부 대다수가 건물주이기에 법 개정에 역시 소극적'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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